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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19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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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과 떠나는 세계여행] 홍콩

추억이 반짝반짝 빛나는 곳

  • 기사입력 : 2019-09-04 20:3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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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콩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었을까. 경남신문에 글을 게재한 지도 오래되었다. 그 안에 홍콩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없었다.(적어도 내가 쓴 글들의 제목과 장소를 훑어본 결과 홍콩에 대한 글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했다.) 다른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언급한 적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내 홍콩여행은 운이 좋았다.


    마침 아주 친한 동생이 홍콩에서 모델 활동을 한참 하고 있던 터라 남들보다 용이하게 여행을 할 수 있었다. 그런 경우 여행 가이드 책보다도 더 정확하고, 광고로 점철되는 인터넷 정보들보다 몇 배는 더 알찬 정보들을 바로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여행 일정도 조금 길게 잡았다. 시간의 제약이 있어 마냥 홍콩에서 시간을 보낼 수 없지만 조금만이라도 길게 여행 시간을 잡으면 지인 찬스를 통해 마치 그곳에서 사는 사람인 것처럼 홍콩을 제대로 알게 되는 기회일 거라 생각했다.

    아마 여행가들 중에서도 홍콩이라는 곳에 일주일을 훌쩍 넘게 있었던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거다. 시간이 많이 남아서 빅토리아 피크를 밤낮으로 두 번 올라갔던 걸 생각하면 여행 이상의 여행 같은 홍콩은 성공적이었다. 볼거리, 먹을거리가 많았던 화려했던 홍콩 그리고 내 3번째 사진전의 소재가 됐던 홍콩이야기를 꺼내는 건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다름 아닌 그곳에서 만났던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화려한 불빛 사이로 홍콩의 밤거리를 걷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화려한 불빛 사이로 홍콩의 밤거리를 걷고 있다.

    장소는, 홍콩여행을 다녀왔다거나 홍콩여행을 계획하는 사람이라면 꼭 들렀거나 들러야 하는 곳인 란콰이펑(Lan Kwai Fong), 자세한 설명을 하기보단 직관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그 이전의 ‘홍대클럽거리’ 정도와 비슷한 장소라 설명하면 그 이미지가 쉽게 떠오를 장소이다. 개인적으로는 점점 더 어두운 곳으로 흘러가서 결국 커다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게 됐던 우리나라의 클럽문화에 비해서 더 선진적이고 ‘자유홍콩’의 밝고 건강한 유흥이 그대로 그 거리에 옮겨져 있는 곳, 또한 이미 유명한 명소가 되어 있어서 타지인들로 가득해 세상 어디를 가는 것보다 더 ‘여행 중’이라는 이름표가 사람들의 행동 근처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개방적인 장소이다.

    란콰이펑.
    란콰이펑.

    그곳에서 내 나름의 흥으로 시간을 보내던 때였다.(그 흥은 어느 곳을 가도 존재하는 것이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 있던 홍콩이라 란콰이펑을 몇 번이나 가서 놀았는지는 기억 안 나지만 어느 날 란콰이펑, 그날도 나는 흔들리는 밤 불빛들 사이에서 수많은 외국인들, 이국적인 언어와 분위기로 즐기고 있던 때.

    한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크지 않은 키에 작지만 예쁜 얼굴, 동양인이지만 분명히 입 밖으로는 다른 언어가 나올 것 같은 분위기, ‘Where are you from?’ 이라는 공식 첫 질문에 그녀는 ‘홍콩에서 태어난 홍콩시민’이라 대답했고 나는 ‘Korea’라고 답했다.

    여기서 참고할 점 하나, Too Much Information (줄여서 TMI)일지 모르지만 의외로 ‘코리아’에서 왔다고 대답하면 ‘북한’에서 왔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많다. 나중에 런던에 살면서 깨달았고 미국에서 뉴스를 보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TV를 틀면 ‘코리아’라는 단어는 사실 세계적으로도 국가 간의 관계가 중요하게 다뤄질 때나 외신으로서 역할을 할 때나 언급되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코리아라는 단어는 북한과 미국의 관계 혹은 북한과 세계와의 관계를 다룰 때 뉴스에 나올 뿐 ‘South Korea(남한)’라는 뉴스가 세계 뉴스에 나올 일이 잘 없기 때문에 세계인은 우리의 소식을 잘 다룰 일이 없다. 이를테면 박근혜 탄핵 때 세계적으로 유례 없는 국민들의 평화시위 정도가 외신에 뜨고 ‘South Korea’라는 단어가 그들에게 들렸을 것이다.

    ‘홍콩 여자’, 단어가 이상하지만 홍콩에서 자라서 어른이 된 여자라는 말이 더 매력적으로 들렸다. 뭔가 홍콩에서 그 현지인과의 로맨스라는 것은 장소가 다를 뿐 다 같은 클럽, 같은 장소에서 풋로맨스라 볼지도 모르지만 특별한 분위기를 서로에게 느껴지게 한 것은 역시나 ‘여행자’와 ‘현지인’이라는 정체성들이 만난다는 의외의 상황이 만들어주는 특별함이랄까.

    뭐 예상처럼 여행지에서 로맨스가 시작됐다는 이야기지만 그녀가 나의 국적 ‘한국’을 듣고 가장 먼저 꺼낸 말이 아직도 명확하게 기억이 난다. 유독 기억에 남는 그녀였기에 기억 나는 첫마디일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너희 괜찮아? 힘들지 않아?’였다. 아마도 당시 남북관계가 지금과는 달리 극으로 치닫던 시기의 정권이었기 때문에 연일 외신에서 이야기하는 북한의 도발 이야기가 그들에게 우리나라에 대한 첫 이미지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순간 뜬금없이 나는 ‘블루마블’이라는 옛날 보드게임 생각이 났다. 우리가 살면서 처음으로 어린 시절 접하는 본격 공인중개사 영재 발굴 부동산 구매 게임이랄까, 거기서 가장 비싸게 거래(?)되던 도시가 ‘싱가포르’와 ‘홍콩’이었던 기억. 발전한 대한민국에 살다가 처음으로 가본 홍콩이라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렇게 생각을 하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 우리가 지금 ‘마블 슈퍼히어로 영화’에 열광하기 한참 전에 ‘주윤발’과 ‘장국영’으로 대변되던 ‘홍콩영화’에 열광했던 적이 있지 않았던가, 맞다. 잊고 있었던 기억, ‘홍콩’은 선진한 도시였다.

    그리고 지금도 그랬다. 란콰이펑의 선진한 클럽문화, 개방적이고 자유롭지만 남들에게 피해주지 않으려 하는 시민의식, 시내 곳곳에 자리한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커다란 명품 매장(이것이 선진함의 기준인지는 모르겠지만)들, 지금은 아닐지라도 빅토리아 피크에서 바라보는 대명사로 자리했던 ‘홍콩의 마천루’들을 생각하면 홍콩은 원래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선진한 도시로 성장해왔다는 것. 나의 홍콩 로맨스 그녀에게 들었던 그 첫마디가 그래서인지 나는 기분 나쁘게 들리지 않았다.

    홍콩의 마천루.
    홍콩의 마천루.

    그리고 다시 로맨스로 돌아가서 첫마디의 그 강렬한 이야기를 뒤로하고 우리는 제한된 시간 속에서 몇 번을 홍콩에서 로맨스를 이어갔고, 그녀가 데려가 줬던 근사한 레스토랑, 그녀가 소개해준 그녀만의 사진 찍기 좋은 장소, 모든 곳이 로맨틱했고 그녀 자체는 홍콩에서 나고 자라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담백한 사람이었지만 우리 둘이 걷는 서로간의 그 간격 안의 감정의 공간만은 그 화려한 홍콩의 거리들처럼 반짝거리는 시간 그리고 여행이었다.

    그녀가 나를 보내면서 했던 말도 기억이 난다. ‘난, 원래 이런 여자가 아니란 걸 알아줘.’ 영어로 소통되는 대화라 여러 뉘앙스를 다 캐치하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그녀의 말은, 여행자와 이런 로맨스에 쉽게 빠지는 쉬운 여자가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그래, 그때 내 홍콩의 여러 요소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그녀였던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내 세 번째 사진전이 홍콩에서 찍은 작품들로 구성됐던 것은 그녀와의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그만큼 특별한 시간들이었기 때문이다.

    시간은 꽤 지났다. 수년이 흘렀고 어느 날 그녀의 SNS에는 그녀의 결혼 소식과 곧 그녀의 임신 소식도 알려왔다. 추억으로 고이, 쉽게 손이 닿지 않을 정도의 마음 어디 장소에 홍콩과 그녀를 이미 작은 함 같은 곳에 넣어놓고 지내다가 가끔 그녀의 SNS로 소식이 들릴 때마다 꺼내보지는 않았지만 그 작은 함 쪽을 쳐다보고는 했다. 행복해 보였고 아이는 마치 가장 화려한 시절, 화려한 장소에서 그녀를 마주했던 그 순박하지만 빛이 나던 그때의 그녀와 똑 닮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본 그녀의 페이스북에 그녀를 보고 바라만 보던 그 작은 함을 나는 오늘 열었다. 그리고 그녀에 관한 글을 쓰는 중이다.

    수많은 군중들 한가운데서 한쪽 눈을 가린 채 수많은 홍콩 사람들과 함께 화내는 것 같으면서 우는 것 같은 얼굴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SNS 라이브방송이 켜지고 나는 들어본 적 없는 소리 지르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그녀의 안녕과 그녀와 함께 모인 홍콩 사람들의 안녕을 진심으로 바라며, 걱정한다.

    나는 선진했던 자유홍콩시민들의 민주주의를 지지한다. 그리고 그들을 응원하는 이 글이 내 여행에세이 연재의 마지막 편이 된다는 점이야말로 비루한 ‘나의 글’을 읽었던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던 ‘나의 여행기’, 그 정점이라 생각한다. 글을 읽어준 모두들에게 영광이었고, 이런 기회를 줬고 2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 장을 마련해준 경남신문에 감사한 마음을 보내면서 글을 끝맺는다.

    나의 여행은 내 것이다. 나는 여러분들의 여행을 앞으로 읽기를 기대하겠다.

    메인이미지

    △김강(리버맨)

    △1983년 마산 출생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졸업

    △창원대 사회복지대학원 재학중

    △카페 '버스텀 이노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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