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0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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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피를 입은 남자 - 김선향

  • 기사입력 : 2019-11-07 07:4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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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자는 손가락질 당하지 않는다

    설령 그가 모피를 입었더라도

    모피를 입은 여자처럼

    사치스럽다는 비난도

    음탕하다는 질책도 받을 리 없다

    모피를 두른 남자를 보라,

    늙은 남자의 피부는

    복숭앗빛보다도 더 탐스럽다

    윤이 차르르 흐르는 모피를 걸치고

    흐트러지지 않는 당당한 자태를

    꼿꼿이 유지하는 품위를

    보라, 눈이 달려 있거든

    모피를 입은 남자의 권력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자들을

    모피를 입은 여자는

    천박하다는 음란하다는

    구설에 시달린다

    여자는 모피를 벗어 던지고 알몸이 된다

    그래봐야 낙인을 지울 수 없다

    요지부동의 시선은 변함없다 영원하다

    -티치아노 베첼리오의 자화상(1560년경)에서


    ☞ 단지 여자라는 이름으로 겪게 되는 수많은 부당함에 대해 시인은 항변한다. 여자가 모피를 입으면 사치스럽다 천박하다 음란하다고 말하던 입으로 모피를 입고 있는 남자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며 끝없는 칭송을 바치고 선 자들의 아부를, 남자니까 그리고 권력자니까 모피를 입고 있어도 다 용인된다는 사고를 가진 사람들을 시인은 이 시를 통해 고발한다. 남자가 모피를 입고 있는 상황에만 적용되겠는가. 여자가 하면 이런 저런 이유를 가져다 붙이면서 트집을 잡으려던 자들은 차고 넘친다. ‘아니, 여자가 말이야’를 입에 달고 사는 남자들도 수두룩하다. 남자여서 여자여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어서 특별하다는 인식으로 바라봐줄 날은 언제 올까. - 이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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