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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재기발랄 한글서예가 순원 윤영미씨

오감으로 표현한 한 글 한 글
어릴 적부터 붓과 교감한 인연
대학서 서예 전공하며 발전시켜

  • 기사입력 : 2019-12-12 21: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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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글사랑에 온몸을 던지고 있는 재기발랄한 서예가. 한글의 아름다움을 좇아 글과 전각에 몰두하다 마침내 한글서예를 종합 입체예술로 승화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하고 있는 실험예술가.

    사천에서 의욕적인 한글사랑 활동을 하고 있는 서예가 순원(筍園) 윤영미(49)씨에게 붙일 수 있는 수식어다.

    한글서예가 순원(筍園) 윤영미씨가 자신의 서실에서 경남신문 창간 73주년을 축하하며 휘호하고 있다.
    한글서예가 순원(筍園) 윤영미씨가 자신의 서실에서 경남신문 창간 73주년을 축하하며 휘호하고 있다.

    어릴 적부터 붓과 교감한 인연으로 대학에서 서예를 전공한 윤씨는 지역사회와 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자신의 예술영역만을 개척하는 일반적 서예가와는 많은 점에서 차별된다. 한글서예를 주제로 한 강연과 공연, 퍼포먼스를 아울러 새로운 서예의 장르를 추구하는 그는 한마디로 바쁘게 사는 예술인이다.

    그에게서 볼 수 있는 또 다른 차별점은 사천시의 사무관 이상 간부공무원에게 수여하는 임명장을 중세 군주시대의 교지와 유사한 형식으로 휘호하는 데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천시는 지난 2014년 송도근 시장 취임 이후 사무관 이상 공무원들에게 교지 형식으로 휘호한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임명사항 휘호는 윤씨의 몫이다.

    임명장을 교지 형식으로 작성해 수여하는 것은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사천시가 유일하다. 윤씨는 여기에 한술 더 떠 자신의 필체로 휘호한 임명장을 담을 수 있는 오동나무함도 제작해 함께 제공한다. 임명사항이 적힌 지질도 대를 이어 전해도 변하지 않는 것으로 고급화했다.

    그간 휘호한 사무관과 서기관 임용장만 70여 장에 달한다. 교지 형식이다 보니 글 쓰는 방향이 일반적인 가로(횡서:橫書)가 아닌 세로(종서:縱書)다. 현대에서는 보기 드문 형식이지만 눈길은 간다. 임명장을 받는 이의 입장에서는 다소 고색창연한 느낌을 받을 수는 있지만 가치는 격상될 것으로 보인다. 형식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형식을 통해 내면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그는 자신의 글씨를 오감(五感)으로 표현했다. 30년째 서예를 하면서 스스로 ‘순원체’라는 나름의 서체를 만들고 그 서체를 통해 대중과 호흡하려고 한다. 그가 쓰는 글은 모두 한글이다. 다수의 공중파 TV에서 기획한 시사프로그램의 타이틀에서도 그의 한글체를 만날 수 있다.

    “한글은 한자로서는 할 수 없는 독특함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표현 방식도 말 그대로 무궁무진합니다.” 여기다 젊은 층이 한자보다 한글에 더 친밀감을 느끼고 있는 것도 한글을 택한 이유다.

    “우리 문화에서 한자가 중요하지만, 젊은 세대에게는 매력이 없습니다. 이제는 젊은 세대에게 서예를 요구할 게 아니라 서예가 젊은 세대와 함께 놀 수 있도록 탈바꿈해야 합니다.한글은 보면 볼수록 깊이가 있는 글이지요.”

    그에게서 활달함이 느껴지는 것은 아호인 순원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순(筍)은 ‘나뭇가지나 풀 등에 길게 돋아난 싹’이다. 언뜻 연약해 보여도 내면에 강력한 에너지를 품고 용틀임하는 게 싹이다. 생동하는 쑥이 있는 정원이니 생명의 기운이 꿈틀거린다는 공간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런 아호만큼 삶도 역동적이다.

    조용한 서실에 앉아 그저 글을 쓰는 정적인 서예가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글씨 콘서트라는 독특한 퍼포먼스를 추진한 것은 대표적인 동적 기질의 산물이다.

    지난 6월 사천문화예술회관에서 ‘서예를 공연으로, 글씨를 예술로, 한글을 디자인으로’라는 부제를 내세우고 연 한글콘서트는 서예를 대중의 공간으로 불러들인 화려한 퍼포먼스가 됐다. 화선지라는 2차원 평면에 머물던 서예를 3차원의 입체공간으로, 그것도 종합예술의 궤도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다.

    한글콘서트를 열게 된 계기는 함께 기타 동아리 활동을 하는 친구가 함께 공연을 해보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한 것이 발단이다. “어차피 할 거면 서예가로서 글씨로 공연하겠다”고 한 것이 이 실험적인 무대로 이어진 것이다.

    200여 개의 한글서체로 펼침예술을 구사하고 자신의 부친을 소재로 한 수필을 영상과 함께 표출함으로써 평면에 머물던 서예를 서예가와 무용가, 음악가, 관객들이 공감하는 용광로에 넣어 하나의 형태로 녹여냈다.

    윤영미씨가 한글콘서트에서 붓으로 글씨를 쓰고 있다.
    윤영미씨가 한글콘서트에서 붓으로 글씨를 쓰고 있다.

    콘서트 입장료는 모두 유료화했다. 각종 지원금은 받을 생각은 아예 접어두고 대신 관람료를 제대로 받아 예술에 대한 정당하게 대가를 치르는 문화풍토를 만들고 싶다는 그의 소신에서 비롯됐다.

    3만원으로 책정된 티켓은 발매 2주일 만에 매진됐다. 퍼포먼스 현장의 열기는 매진된 티켓의 온도만큼 뜨거웠다고 그는 회고한다.

    “600여명에 이르는 모든 관중의 이름을 미리 받아 공연 준비기간인 4개월 동안 날밤을 세워 각각의 도장과 도장함을 직접 쓰고 깎아 당일 현장에서 선물했는데 반향은 예상보다 더 엄청났어요.” 윤씨는 당시의 모습을 회상하듯 상기된 얼굴로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윤영미씨가 직접 쓰고 전각해 콘서트 관객들에게 선물한 개인 인장.
    윤영미씨가 직접 쓰고 전각해 콘서트 관객들에게 선물한 개인 인장.

    기타와 바이올린의 선율에 조명과 무용이 곁들여진 이 같은 서예 퍼포먼스 시도는 흔치 않은 일이다.

    지난해 8월부터는 매주 지역 신문사에 에세이도 기고한다. 글씨를 쓰는 서예가에 글을 쓰는 작가를 겸한 것이다. 그간의 기고를 눈여겨본 국내 한 유력 출판사가 에세이집 출간을 제의해와 원고 수정작업을 거쳐 조만간 단행본으로 독자를 만날 전망이다.

    “40대의 마지막 시기를 멋지게 장식하고 싶어 출판사의 제의에 기꺼이 응했습니다. 나름 멋진 일 아닌가요?” 그의 무한한 자신감에 공감이 간다. 책이 세상에 나오는 시기에 맞춰 서예를 곁들인 북 콘서트도 열 예정이다.

    윤영미씨는 붓을 들고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 한다. 일명 ‘세계로 버스킹(busking)’이다. 버스킹은 말 그대로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거리에서 여는 공연이다. 그는 매년 해외 버스킹을 통해 새로운 세상에서 붓의 향연을 벌이겠다고 의지를 다진다.

    그가 처음으로 서예 버스킹을 한 세계는 중국이다. 지난 7월 말 용정의 윤동주 생가를 찾아 현지 관광객들을 상대로 버스킹을 했다.

    윤영미씨가 지난 7월 중국 용정에 있는 윤동주 시인의 생가에서 ‘서예 버스킹’을 하고 있다.
    윤영미씨가 지난 7월 중국 용정에 있는 윤동주 시인의 생가에서 ‘서예 버스킹’을 하고 있다.

    다음 행선지는 내년 6월 5일부터 15일까지로 예정된 터키의 수도 앙카라다. 개인 초대전의 형식을 빌려 글씨 버스킹을 하기 위해 현재 한창 기획 중이다. 버스킹 당일 참석하는 터키인들의 이름을 한글로 새긴 도장을 선물하는 이벤트도 준비 중이라고 귀띔했다.

    “내가 부르는 노래들과 내가 읊조리는 흥을 한글이라는 모티브를 통해 서예적 요소로 표현하고 싶다”는 서예가 윤영미. 그에게서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의 글귀가 떠오른다.

    글·사진= 허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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