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6일 (금)
전체메뉴

진주성 중영(中營)터 발굴조사에서 조선시대 관아 건물 확인

진주성 중영 복원 탄력 받을 것으로 기대

  • 기사입력 : 2020-06-03 18:04:13
  •   
  • 진주시가 경남연구원에 의뢰해 진행한 진주성 중영(中營)터 학술발굴조사에서 조선시대에 축조한 건물 일부가 확인됐다.

    진주성 중영터 발굴조사현장./진주시/
    진주성 중영터 발굴조사현장./진주시/

    지난해 12월부터 5월까지 진행된 이번 조사는 일제강점기에 훼손된 진주성 내 주요 건물인 중영의 복원을 목적으로 중영과 그 부속 건물의 위치와 구조를 밝히기 위해 진행됐다.

    진주성은 임진왜란 3대 대첩 중의 하나인 진주대첩이 일어났던 곳으로, 특히 2차 진주성 전투에서는 민관군 7만명이 왜군과 싸우다 순절한 역사의 현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임진왜란 직후인 1603년에는 경상우병영이 진주성에 설치됨에 따라 진주성은 경상우도의 병무 중심지이자 영남 서부의 중점 방어기지로서 높은 위상을 지닌 곳이다. 이에 따라 진주성은 사적 제118호로 지정돼 보존과 정비가 이뤄지고 있다.

    진주성 중영터 발굴조사현장./진주시/
    진주성 중영터 발굴조사현장./진주시/

    중영은 경상우병영의 참모장인 우후(병마절도사를 보좌하는 종3품의 무반 관직)의 근무 공간이며, 우후는 진주성에서 병마절도사(종2품의 최고위 무반 관직) 다음으로 막중한 임무를 지닌 고위직 관리에 해당한다.

    조선후기에 그려진 여러 진주성도에 의하면, 중영은 영남포정사문루와 공북문 사이에 망일헌, 장청, 삼문, 배리청, 진무청 등의 부속 건물과 함께 조성돼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조선후기 진주성도에 표현된 벼랑 지형과 진무청(병영에 소속된 서리의 집무실)으로 파악되는 관아 건물 1동이 확인돼 향후 진주성 중영과 부속 건물 복원을 뒷받침하는 실증적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진주성 중영터 발굴조사현장./진주시/
    진주성 중영터 발굴조사현장./진주시/

    강진태 기자 kangjt@knnews.co.kr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강진태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