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04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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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동양화가 설파 안창수 화백

“그림은 예순에 만난 죽마고우”… 늦깎이 화백, 제2인생 그리다
은행 퇴직 후 환갑에 그림 입문
중국·일본 유학 각종 대회 입상

  • 기사입력 : 2020-10-21 20:5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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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양화가 설파(雪波) 안창수(75) 화백은 자타가 공인하는 인생 2모작에 성공한 인물이다. 그는 은행에서 전문금융인으로 정년퇴직한 뒤에 그림을 배워 화가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누구나 “그게 어떻게 가능하죠?”라고 물음표를 던지지만 그의 말을 듣다보면 자신의 잠재력을 스스로 발굴해 낸 도전과 노력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림 그리는 게 재미있고 즐겁다는 그는 양산신도시 석금산지구에 있는 화실에서 먹물과 물감 냄새 가득 배인 늦깎이 화백으로 그의 제2인생을 살고 있다.

    설파 안창수 화백이 자신의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설파 안창수 화백이 자신의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퇴직 후 귀향해 서예 배우다 그림에 빠져

    설파가 그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30년간 다닌 은행을 정년퇴직하고 서울 생활을 접고 귀향하면서부터다. 양산 상북면 소토리에서 태어난 그는 연세대 상대를 졸업 후 한국수출입은행에서 일하다 지난 2003년 만 58세로 퇴임해 이듬해 고향으로 왔다.

    취미생활도 없을 만큼 일에 묻혀 살아온 그에게 퇴직은 적잖은 허전함을 안겼다. 불교와 유교경전을 읽으며 무료한 일과를 보내던 그에게 서예를 배워보라는 친구의 권유가 화가의 길로 들어선 계기가 되었다. 경전을 베껴 쓰며 붓과 친해진 지 6개월쯤 됐을 때 부산에서 열린 닭 그림전을 접하고 나도 한 번 그려보자는 생각으로 붓을 잡았다. 자신이 닭띠이기도 하고 당시 새해가 닭띠 해이기도 해서 재미삼아 그려봤는데 반응이 예사롭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이 나도 한 장 그려달라고 부탁할 정도였다. 그때 ‘나에게 그림 그리는 소질이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제대로 그림공부를 해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주변 지인들의 권유도 만만찮았다. 그렇게 해서 떠난 중국 유학길이 그림 입문의 출발이다. 2005년 그의 나이 만 60세에 본격 그림수업을 시작했다.

    -환갑 때 배낭 하나 메고 그림 공부하러 중국으로

    환갑 나이지만 그래도 동양화 공부를 하려면 역사가 있는 중국에서 해보자는 생각에 배낭 하나 달랑 메고 나섰다. 중국 현지 미술학교에 무작정 찾아가 교수들의 연구실 문을 두드리고 다녔다. 그림을 배우고 싶어 한국에서 왔다는 머리 허연 그를 하나같이 이상하게 쳐다보았지만 그렇게 찾아다닌 지 일주일쯤 되었을 때 한 교수가 휴대폰에 담아간 자신의 그림을 보고 추천서를 써준 덕에 항저우에 있는 중국미술대학에서 본격적인 그림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중국 유학생활, 좁은 기숙사에서 지내며 삼시세끼를 학교식당에서 때우면서 그림과 씨름했다. 아침 8시에 등교해 낮 12시까지 수업을 듣고 밤늦게까지 그림에 매달렸다. 하루 종일 붓을 쥐고 그림을 그리다보면 엄지손가락에 쥐가 나고 뒤로 젖혀지지 않기도 했다.

    너무 늦은 것이 아닌가 싶어 포기할 생각도 했다. 그때 스승의 한 마디가 그를 바로잡아줬다. 스승은 “청나라의 대표적인 화가 금농은 쉰이 넘어 붓을 잡았고 예순 넘어 대나무를 그리기 시작했다. 미국의 최고 민속화가로 꼽히는 그랜드마 모제스는 일흔여섯까지 10남매를 키운 주부로 살다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101살에 타계할 때까지 1600여 작품을 남겼다” 며 끈기있는 그림을 공부를 채근했다.

    -중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주목받는 화가로

    늦게 시작한 만큼 더욱 절실했던 것일까? 그 마음이 불굴의 노력으로 이어졌고, 노력은 각종 수상의 성과를 안겼다. 그림 공부 6개월 만에 중국 호모배 전국서화대전에서 닭그림으로 입선한 것을 시작으로 이듬해 임백년배 전국서화대전 1등상(호랑이)과 중화배 전국서화예술대전 금상(독수리)을 수상했다. 중국 화단에 떠오르는 신예가 되고 있었다. 그런 사이 6개월 체류를 생각하고 떠난 중국 유학이 2년으로 늘었다. 비행기로 2시간도 채 안 걸리는 한국인데도 2년 동안 한 번도 다녀가지 않고 그림에만 전념했다. 가족의 지원과 믿음이 버팀목이었다.

    중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한 달 뒤 다시 일본 교토조형미술대학으로 두 번째 유학을 떠나 6개월간 일본화풍을 배웠다. 일본에서도 소화미술대전 입선(목련), 전국수묵화수작전 입선 3회(호랑이 등), 전일전(全日展) 예술상(붓꽃)과 준대상(호랑이) 등을 차지하며 주목을 받았다. 2011년 일본 수묵화 교육용 화집에 작품이 실렸을 만큼 인정받는 화가로 거듭났다.

    신사임당미술대전 특선(포도) 등 한국에서도 그의 그림은 빛이 났다. 2009년 서울 인사동에서 처음 연 개인전은 지난해까지 15회 이어졌다. 일본과 미국 등 단체전시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림은 늦게 만난 둘도 없는 죽마고우

    안 화백의 그림은 수묵 바탕에 채색을 입혀 화려하고 감각적인 것이 특징이다. 미술평론가들은 “전통적인 남종 문인화를 대체하는 새로운 표현으로 받아들인다.”며 ”농담의 변화가 풍부하고 색채의 화려함이 강조되어 나타나는 작업의 양태들은 전통적인 운필과 색채 운용방법에 더하여 서구적인 조형방법까지도 차용하고 있다고 평한다. 전통 방식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의 또 다른 특징은 다작(多作)으로 붓놀림이 빠르다. 공부할 때 남들 한 장 그리는 시간에 세 장이나 그릴 만큼 빨라 좀 천천히 그리라는 말을 듣기도 했으나 어느덧 자신의 스타일이 됐다. 작품세계가 폭 넓고, 한 해에 1~2회 개인전을 열 수 있었던 게 다작의 힘이다. 고향 양산을 위해 적잖은 작품을 기증해 오고 있는 것도 다작으로 가능한 일이란다.

    이른 아침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먹을 갈며 붓을 놀리는 것이 마냥 즐겁다는 설파. 그 원천이 무엇일까? “그림은 예순에 만난 죽마고우(竹馬故友)”라는 그의 말에 답이 있어 보인다. 그림을 그릴때면 필과 묵이 하나가 되어 흥이난다는 묵가필무(墨歌筆舞)가 가능한 이유일 것이다.

    -한국화 발전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고자 강좌 개설

    그는 영화에도 출연했다. 2017년 개봉한 이준익 감독의 ‘박열’에서 문무대신으로 열연한 이가 안 화백이다. TV 공익광고에서 ‘폐지 줍는 할아버지’역을 맡기도 했다. 여기저기 초청강연도 다닌다. 그림으로 시작한 퇴직 후의 삶이 인생 2모작, 3모작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그림이 제일 좋단다. 작품활동과 함께 후진양성에 매진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현재 부산대 양산캠퍼스 평생교육원 강좌를 맡고 있고, 개인교습도 하고 있다. 하고 싶은 일도 많다. 책을 낼 생각이고, 유럽 진출도 해보고 싶어 한다. 우리나라 수묵화가 사군자 위주로 정체된 감이 있어 안타깝다는 그는 한국화를 발전시키고 알리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단다. 그림을 통해 제2인생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을 찍고 있는 그의 열정이 아직도 뜨겁다.

    설파가 퇴직을 앞둔 이들에게 하는 당부는 ‘정사역천(精思力踐)’.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을 신중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생각이 정리되면 최선을 다해 실천하는 게 중요하다”며 “이것저것 따지고 재기만 하다보면 아무것도 못하고 만다”고 충고한다. 특히 그는 “도전에는 나이와 관계없다”며“ 누구나 알고 있는 ‘늦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는 말이 맞다”고 강조했다.

    △ 안창수 화백 약력

    ·경남 양산 상북 출생(1945. 7)

    ·양산 소토초, 양산중, 부산고,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일본 국립나고야대학 대학원 졸업(석사)

    ·중국미술대학 2년 수료

    ·일본 교토조형예술대학 수학

    ·한국수출입은행 정년퇴임

    ·한국서가협회 양산지부장 등 역임

    ·중국 임백년배 전국서화대전 1등상

    ·일본 전일전 준대상

    ·2018 한국을 빛낸 자랑스러운 한국인대상 등 수상 다수


    글·사진= 김석호 기자 shkim18@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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