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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4월 20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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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865) 봉폐강화(奉幣講和)

-선물을 바쳐서 평화를 구하다

  • 기사입력 : 2021-02-02 08: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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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송나라는 북송(北宋 : 960~1127)과 남송(南宋 : 1127~1279)으로 나누는데, 사실은 완전히 다른 나라인 셈이다. 북송이 완전히 망한 뒤, 남송이 새로 섰다.

    북쪽에 있던 요(遼)나라가 남침해 오자, 송나라는 매년 20만 필의 비단과 10만 냥의 은전을 바치기로 하고 평화를 유지했다.

    요나라 북쪽에서 1115년 여진족이 금(金)나라를 세웠다. 힘을 합쳐 요나라를 없애자고 송나라에 제의해 왔다. 요나라에 어마어마한 조공을 바치던 송나라는, 금나라가 제의하니 연합 작전으로 요나라를 멸망시켜 버렸다. 120년 동안의 부담이 없어지는 줄 알았다.

    금나라는 같이 작전을 하면서, 송나라 군대가 형편없고, 조정이 썩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여세를 몰아 동맹국이었던 송나라를 공격하였다. 1127년 송나라는 방어선이 무너져 서울 개봉(開封)이 금나라 군대에 포위되었다. 그러자 황제부터 모든 신하들이 항복하여 평화를 찾을 생각을 하였다. 요나라처럼 조공을 바쳐 달래면, 금나라 군대가 물러날 줄 알았다.

    금나라 군대가 순식간에 서울을 함락하고 궁궐을 점령하였다. 단숨에 황제 흠종(欽宗), 전임 황제 휘종(徽宗), 황후, 후궁, 황제의 아들 딸 등등 1천여 명을 묶어 끌고 갔다. 황궁의 금은보화, 비단 등등 모든 것을 약탈하여 금나라로 싣고 갔다.

    두 황제는 끌려가 온갖 수모를 당하고, 후궁과 공주들은 금나라 장수들의 첩, 노비로 분배되었다.

    유일하게 포로가 안 된 휘종의 아들 조구(趙構)는 항주(杭州)로 가서 송나라를 다시 세우니, 곧 남송의 고종(高宗)이다. 그러나 그 어머니는 끌려가 금나라 장수 완안현(完顔賢)에게 상으로 지급되어 아들 둘을 낳았다. 그의 원래 왕비도 끌려가 금나라 태종(太宗)의 후궁이 되어 아들 하나를 낳았다.

    남송은 금나라의 침공을 완화하기 위해서 해마다 천문학적인 조공을 바쳤다. 조공 액수가 모자랄 때는 여자를 바쳐 액수를 줄였다. 그리고 금나라의 비위를 건드린다 하여, 항전하려는 애국 명장 악비(岳飛) 같은 영웅을 죽였다. 고종은 황제 자리는 겨우 유지하지만, 죽는 것보다도 못한 치욕적인 생애를 살아야 했다. 이것이 주자가 살았던 남송의 실제 모습이었다. 왜 이랬을까? 국방이 안 되고, 외교가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우리나라 사정이 남송을 닮았다라고 진단하면, 지나친 걱정일까? 대통령부터 경제적 지원 등으로 북한에 잘해 주면 북한도 잘 대해 줄 것이란 순진한 집착에 빠져 있다. 많은 지식인들이 “설마 북한이 우리를 치겠는가?”, “핵무기는 우리를 공격하기 위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우리끼리 잘 지내려는데, 미국이 웬 간섭이냐?”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육이오전쟁을 일으키고, 연평도 포격, 우리 대통령에 대한 모욕적인 욕설 등등을 볼 적에 북한을 믿어도 될 것인가? 송나라가 금나라를 믿다가 비참하게 되었다. 자기 힘이 없이 적이 잘 봐 줄 거란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꼭 당해 봐야 알 것인가?

    *奉 : 받들 봉. *幣 : 폐백 폐. 예물 폐. 돈 폐. * 講 : 구할 강. 익힐 강. * 和 : 화합할 화. 평화 화

    동방한학연구소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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