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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4월 21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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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산청군 ‘봉사왕’ 이숙이 교동마을 이장

“40년간 한결같은 이웃사랑… 나에게 봉사는 보약이지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봉사계 큰언니
산청군 축제·행사장 등 단골손님

  • 기사입력 : 2021-02-24 20:4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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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인 스스로도 ‘어무이’라 불려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나이건만, 스스럼없이 만나는 사람마다 ‘어무이, 아버지’라 부르며 살갑게 다가가는 사람. 산청군의 거의 모든 축제와 행사는 물론 봉사활동 현장에 나타나는 사람. 작은 녹색 수첩안에 빼곡하게 자신이 챙겨야 할 봉사활동 행사를 꼼꼼히 적어 다니는 사람.

    보는 이의 기분마저 싱그럽게 해 주는 미소가 아름다운 그녀. 이숙이(72) 산청군 단성면 교동마을 이장을 만났다.

    지난 40여년간 그녀의 삶을 요약하자면 단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다. 바로 ‘봉사’다.

    40여년간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산청군 교동마을 이숙이 이장이 마을회관 방송센터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40여년간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산청군 교동마을 이숙이 이장이 마을회관 방송센터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그녀는 지난 1978년 고향이었던 함양군을 떠나 산청군 단성면 교동마을로 남편과 함께 이사를 왔다.

    낯선 타향이었지만 하루빨리 동네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 아픈 아들에게 조금이나마 좋은 일이 되리라는 믿음으로 1982년부터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이숙이 이장은 “아들이 많이 아팠다. 옛날엔 약도 없고 병원 갈 여력도 없고. 누가 아들 살리려면 고향을 떠나야 한다고 하더라. 그렇게 산청으로 이사를 왔다”며 “한번도 고향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새댁이 낯선 곳에 왔으니 주변에 마을 어른들이 얼른 적응하라고 여기저기 불러주신 덕에 봉사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금은 교동마을 이장과 경남도 여성리더봉사단 산청군지회장이라는 2가지 직함뿐이지만 지금 껏 그녀가 봉사활동을 하며 맡은 직책은 수도 없이 많다.

    첫 시작은 산청군새마을부녀회 활동이었다.

    이후 단성면 새마을부녀회 회장을 맡았다. 산청군생활개선회 회장에 이어 산청군여성팔각회 회장직도 수행했다. 단성면자원봉사회 회장까지 지냈다.

    얼마 전까지는 산청군자원봉사협의회 회장도 맡아 봉사했다. 이외에도 여러 봉사단체의 총무, 부회장까지 더하면 열 손가락이 모자라다.

    그간 봉사활동을 하며 받은 상도 그에 못지않다. 봉사활동을 시작한지 1년 만인 1983년에 새마을부녀회 활동으로 도지사상을 받았다. 1992년에는 생활개선회 봉사활동으로 내무부장관상을 수상했다.

    2005년에도 팔각회 활동으로 도지사상을 받은 뒤 대한적십자총재상도 잇따라 수상했다. 2008년 산청경찰서장상, 2012년 도지사상, 2014년 산청군수상 등 많은 표창을 받았다.

    수십년에 걸친 봉사활동은 지난 2017년 산청군자원봉사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던 그녀에게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하는 계기가 됐다. 이듬해에는 제10호 경남도 자원봉사왕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건강한 약초를 닮은 ‘친절 미소지기’로 추천돼 ‘산청군 올-스마일’ 군민에도 선정됐다. 산청군은 매년 공무원 2명과 군민 1명을 ‘올-스마일’로 선정해 감사를 표하고 있다.

    이처럼 40여년에 가까운 시간을 한결같이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비결이 뭘까.

    산청으로 이사 온 뒤부터 꾸준히 봉사활동을 해 온 그녀지만 봉사하는 삶과의 인연이 끊어질 뻔한 적이 있었다. 바로 남편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버리면서다.


    이숙이 이장은 “낯선 타향에서 남편 없이 어찌 살지 너무 막막하고 어려웠다. 삶의 모든 의욕을 잃었을 때, 나에게 끊임없이 도움과 위로의 손길을 건네준 게 마을 이웃들과 산청군 공무원들이었다”며 “내가 다시 사람답게 살 수 있게 손을 잡아주고 끌어준 동네 사람들에게 어떻게든 힘이 돼 드려야겠다 싶었다. 그렇게 털고 일어나니 진짜 가족이 돼 있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녀의 봉사활동에 대한 열정은 어지간한 젊은이들도 따라가기 힘들다.

    이미 70을 바라보는 나이였던 2018년, 경남도내 10번째 자원봉사왕에 선정됐을 당시에도 한달 평균 10여회, 50~60시간의 봉사활동 시간을 자랑했다.

    지난해부터는 코로나19 탓에 행사가 크게 줄어 많은 활동을 하지는 못했지만 지금도 갈 수 있는 곳에는 어디든지 달려간다고.

    홀로 어르신 생일상 차려드리기, 말벗 해드리기, 밑반찬 지원, 김장 나눔 활동 참여, 고추장 나눔 참여, 요양원 목욕봉사, 정리수납 자원봉사, 자원봉사 미니 박람회, 장애인·소년소녀 세대 돌보기 등 도움이 필요한 지역주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부분에 손을 보태고 있다.

    이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자원봉사계의 큰언니로 지내다 보니 지난 2017년에는 경남도 자원봉사자 대회에서 국무총리 표창을 받기도 했다.

    그녀는 “당시에 시상대에 올라서며 무척 가슴이 떨렸던 기억이 있다. 나는 이런 큰 상을 받을 만큼 대단한 일을 한 사람이 아닌데, 그저 내 눈앞에 보이는, 내 발길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는 어려운 분들에게 그냥 말 한마디 따뜻하게 보태드렸던 것 뿐인데 너무 과분한 상이었다”고 수줍게 말했다.

    그녀는 72세인 지금도 경남도 여성리더봉사단 활동에 참여하기 위해 산청은 물론 경남 도내 곳곳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산청군의 가장 중요한 축제 행사인 ‘산청한방약초축제’ 등을 비롯한 각종 행사에도 그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지금은 수년째 맡고 있는 교동마을 이장 역할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녀에게 봉사란 무엇일까. 이숙이 이장은 너무나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보약이지요’한다.

    그녀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여기저기 다 봉사활동을 하고 다닐 수 있느냐 물어볼 때마다 제가 ‘보약을 잘 챙겨먹고 다녀 그렇다’고 이야기 한다”며 “아직도 내가 쓸 만하다고 불러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 매일 보약을 먹으러 다니니 이렇게 건강한 것 같다. 앞으로도 신나게 보약 먹으러 다니고 싶다”고 호탕하게 웃었다.

    글·사진= 김윤식 기자 kimys@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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