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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19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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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김현규 함안 낙화놀이 기능 보유자

“낙화봉에 불 잘 붙어야 아름다운 불꽃 흩날려”

  • 기사입력 : 2021-06-02 20:2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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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안 낙화놀이는 밤에 수천 개의 낙화봉을 실(요즘은 철사)로 공중에 매달아 불을 붙이면 타들어가는 숯가루가 빛을 발하고 떨어지면서 장관을 연출하는 전통 불놀이의 하나다. 조선시대인 16세기말부터 함안지역에서 전승된 것으로 전해진다.

    함안 낙화놀이는 매년 사월 초파일에 함안면 괴산리 괴항마을 앞 무진정에서 축제 형태로 열렸으나 지난해와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개최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4월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에서 낙화놀이를 재연하면서 낙화놀이를 체험하려는 관광객들이 몰려 다시 주목을 끌고 있다.

    김현규(88)옹은 함안 낙화놀이의 유일한 기능 보유자다. 함안 낙화놀이는 괴항마을 주민들과 보존회, 함안군 등의 노력으로 낙화놀이로는 전국 처음으로 지난 2008년 경남도 무형문화재 제33호로 지정됐다. 김현규 옹도 같은 해 함께 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1950년대 동네 어른들에게 배워
    수십년간 시행착오 끝에
    숯·광목 불에 잘 타는 방법 알아내

    2008년 무형문화재 지정 받아
    2013년엔 낙화봉 제조방법 특허
    비법 전수받으려 전국서 찾아와

    “무진정 낙화놀이줄 더 올려야
    흩날리는 불꽃 제대로 감상
    전국적 세시놀이로 발전한
    낙화놀이 잘 계승·보존되길”

    함안 낙화놀이 기능 보유자 김현규 옹이 낙화놀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함안 낙화놀이 기능 보유자 김현규 옹이 낙화놀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25개의 낙화놀이가 전래되었지만 현재 6개만이 전승되고 있다. 도지정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함안 낙화놀이와 무주 안성낙화놀이(2016년) 두개 뿐이다.

    김 옹은 2013년에는 낙화놀이용 낙화봉 제조방법으로 특허청 특허를 취득하기도 했다. 낙화봉은 한지 안에 숯가루와 광목심지를 넣고 만 다음 두개의 한지를 꼬아 만드는데 낙화놀이의 핵심 재료다. 그는 낙화봉에 들어가는 숯가루와 광목이 불에 잘 붙는 방법을 누구보다도 알고 있다.

    김현규 옹이 낙화놀이 이수자인 강순숙 괴항마을 이장과 함께 낙화봉을 만들고 있다.
    김현규 옹이 낙화놀이 이수자인 강순숙 괴항마을 이장과 함께 낙화봉을 만들고 있다.

    괴항마을 토박이인 김 옹은 어릴적 마을 어른들이 낙화놀이를 하기 위해 한지와 숯, 광목을 이용해 낙화봉을 만드는 과정을 지켜봤다. 그리고 1950년대 후반에는 20대 중반 나이로 직접 낙화봉을 만들었다고 한다.

    괴항마을 주민들은 1950년대 후반부터 함안지역에서 전해져오는 낙화놀이 풍습을 재미삼아 재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김 옹은 당시 놀이 재연에 소요되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주민들이 무진정 앞 연못의 고기를 잡아 팔았다고 회상했다.

    그 때 이후 지금까지 그는 60여년간 함안 낙화놀이에 사용되는 숯과 광목을 직접 만들거나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그가 낙화놀이 기능 보유자가 된 것은 마을 일에 관심이 많았고 항상 발벗고 나서면서 어른들에게 비법을 전수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도 낙화놀이 이수자 5명과 보존회 관계자들에게 낙화봉에 불이 잘 붙어 불꽃이 아름답게 흩날려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김 옹은 낙화 불꽃이 아름답게 흩날리려면 먼저 숯가루가 좋아야 하고 그 다음으로 심지역할을 하는 광목에 불이 잘 붙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초창기 재연 때에는 집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잡목들의 숯을 사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숯 전문가들에게 문의한 결과 참나무 숯가루의 불꽃이 좋다고 해 30년 전부터는 참나무 숯가루를 주로 사용한다고 한다.

    또 심지 역할을 하는 광목에 불이 잘 붙도록 하기 위해 맑은 물에 삶은 후 비닐에 덮어 이틀 정도 둔다고 한다. 그리고는 가마솥에 일정량의 물과 양잿물을 배합해 1시간 정도 삶아 낸다. 이 때 관건은 광목의 양과 양잿물의 비율이다.

    양잿물이 너무 많거나 너무 적을 경우 불이 제대로 붙지 않는다고 한다. 이 비율은 자신과 이수자 등 극히 일부만 안다고 한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얻어낸 경험의 산물이다.

    김 옹은 또 낙화놀이를 준비할 때 예전 방식을 고수해야 하는데 후배들이 그보다 쉬운 방식을 택하려고 하는 것이 아쉽다고 말한다.

    함안 낙화놀이는 현재 함안군의 재정적 지원을 받고 있지만 여전히 민간 주도의 전승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19세기 후반 함안읍성 주민 주도, 1943~1972년 봉암사 주지와 신도 주도, 1960년 이후 괴항마을 주민 주도 등 지역민들이 스스로 낙화놀이를 주도적으로 계승하고 있다.

    낙화볼이가 재연됐던 함안 봉암사
    낙화볼이가 재연됐던 함안 봉암사

    그는 낙화놀이용 낙화봉 비법을 전수받으려고 전국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고 말한다. 김 옹은 정성이 가륵한 사람에게는 일부 내용을 귀띔해 주기도 했다고 한다.

    김 옹은 현재 낙화놀이가 재연되는 무진정의 낙화봉줄 높이가 너무 낮아 흩날리는 아름다운 불꽃을 제대로 감상하기 어려운 것이 아쉽다. 때문에 함안군이나 보존회에서 낙화봉줄 높이를 지금보다 많이 높이면 더 아름다운 불꽃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김 옹은 “마을 청년들이 재미로 시작한 전통 계승이 이제는 번창해 전국에서 관심을 갖는 놀이가 된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며 “내가 사라지더라도 함안 낙화놀이가 더 잘 보존·계승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고 말했다.

    낙하놀이가 행해졌던 자이선
    낙하놀이가 행해졌던 자이선

    ▲함안 낙화놀이 역사= 함안지역 구전에 의하면 한강 정구(1543~1620)가 함안군수로 부임한 16세기말부터 전승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함안 낙화놀이는 19세기 후반 조선 고종 때인 1889년 4월부터 1893년 2월까지 함안군수로 근무한 오횡묵 군수가 일기체로 기록한 함안총쇄록에 구체적인 기록이 남아 있다. 낙화가 달린 형색으로 그 해 태평성대를 점친다는 기록으로 보아 불과 관련한 민간신앙 및 함안지역 불교 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892년 오횡묵 군수가 낙화놀이를 즐긴 자이선 공간은 관료 및 양반 집단의 풍류공간으로 분석된다. 당시 함안읍성 전체에 낙화놀이가 행해지고 산 위에서 구경할 정도로 대규모였다고 한다.

    하지만 20세기 초 일제 강점기에 민족정기 말살정책에 따라 함안초등학교, 함성중학교 건립으로 읍성이 사라지면서 낙화놀이는 30여년간 중단됐다.

    그러다 1943년 함안면 봉암사에서 4월 초파일에 연등과 연등 사이에 낙화봉을 달아 낙화놀이를 소규모로 재연하면서 다시 전승되기 시작했다. 봉암사에서는 1972년까지 낙화놀이를 재연했다.

    광복후인 1946년부터 1950년대에는 간헐적으로 무진정에서 소규모로 전승되기도 했다.

    1960년 사월초파일에 괴항마을 청년회에 의해 제대로 재연됐다고 한다. 이후에는 2~3년 간격으로 괴항마을에서 전승을 계속했다.

    1997년부터는 매년 재연되고 있고 2001년에는 낙화놀이 보존회를 만들면서 체계적인 보존 및 전승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1960년 괴항마을에서 본격적으로 재연된 함안 낙화놀이는 괴항마을만의 세시놀이였으나 전승주체인 함안 낙화놀이보존회와 함안군 등의 노력으로 이제는 전국적인 세시놀이로 발전하게 됐다.

    함안군은 경남도 무형문화재인 함안 낙화놀이를 중요무형문화재(예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글·사진= 김명현 기자 mh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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