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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19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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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혼자 힘으로 성 쌓은 거제 ‘매미성주’ 백순삼씨

맨손으로 한땀 한땀… 18년간 땀으로 쌓은 성

  • 기사입력 : 2021-06-23 20:3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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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제시 장목면 복항마을에는 ‘매미성’이 있다. 마을 골목을 내려오면 바닷가와 맞닿은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옹벽용 사각 화강석을 하나하나 쌓아 올린 매미성은 오로지 한 남자의 순수한 근육의 힘으로 만들어진 성채다. 이곳 주인 백순삼(67)씨가 일주일에 화강석 30개씩, 18년 동안 근력으로 지었다.

    매미성은 원래 백씨의 밭이었다.

    ‘매미성주’ 백순삼씨가 18년 동안 이어진 매미성 작업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매미성주’ 백순삼씨가 18년 동안 이어진 매미성 작업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경북 영덕 출신인 백씨는 1981년 대우조선해양에 입사해 선박 설계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은퇴 후 가족들과 보낼 목적으로 이곳 부지를 구입했다.

    “2001년인가 지금 매미성 부지를 샀어요. 은퇴 후에 가족들과 바다 보이는 곳에 작은 집 짓고 사는 게 꿈이었거든요. 당시에는 거가대교가 생기기 전이라 인적도 드물었고 가격이 저렴했어요. 600여평 밭에 고구마와 콩, 깨를 심어 주말농장처럼 가꿨습니다.”

    백씨가 이곳 밭에 화강석을 쌓기 시작한 것은 2003년 태풍 매미가 지나간 이후부터다. 태풍으로 무너진 밭을 복구하기 위해 축대를 쌓은 것이 그 시작이었다.

    “태풍 매미가 온 게 추석 다음날이었을 겁니다. 부산 집에서 추석 연휴를 보내다 회사가 있는 거제로 내려왔어요. 회사에 와보니 크레인이 다 넘어지고 완전히 엉망이에요. 여기(매미성 부지)는 도로가 무너져서 아예 올 수가 없었어요.”

    태풍 매미는 전국적으로 132명의 인명 피해와 4조7800억원의 재산 피해를 냈다. 거제시 피해 역시 심각했다. 만조 시간대와 겹친 데다 초속 55m의 강풍이 불면서 39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백씨의 600여평 밭도 무사할 수 없었다.

    2001년 장목면 복항마을에
    은퇴 후 가족들과 보낼 땅 구입
    2003년 태풍 매미로  무너져
    널브러진 돌로 축대 쌓으며 시작

    일주일에 화강석 30개씩 손수 옮겨
    머릿속 조감도에 맞춰 맨손 작업
    주변 환경 최대한 살리려 애써
    처음 생각한 공정 70%도 구현못해

    매미성 알려지며 마을도 활기
    주민들과 소통하며 볼거리 고심
    “이 일대를 명품 마을로 만들어
    다 같이 살기 좋은 동네 꿈꿔요”

    거제시 장목면 복항마을 매미성의 모습. 매미성주 백순삼씨가 일주일에 30여개씩 18년간 2만개가 넘는 화강석을 근력으로 쌓아 지었다./김성호/
    거제시 장목면 복항마을 매미성의 모습. 매미성주 백순삼씨가 일주일에 30여개씩 18년간 2만개가 넘는 화강석을 근력으로 쌓아 지었다. /김성호 기자/
    거제시 장목면 복항마을 매미성의 모습. 매미성주 백순삼씨가 일주일에 30여개씩 18년간 2만개가 넘는 화강석을 근력으로 쌓아 지었다./김성호/
    거제시 장목면 복항마을 매미성의 모습. 매미성주 백순삼씨가 일주일에 30여개씩 18년간 2만개가 넘는 화강석을 근력으로 쌓아 지었다. /김성호 기자/

    “일주일쯤 지나 도로가 임시로 복구되자마자 밭으로 가 봤죠. 밭이 사라졌다는 표현이 정확할 정도였어요. 작물은 물론이고 땅에 있는 흙까지 다 쓸고 가서 바위가 다 드러났어요. 바위에 흙 붙은 자리만 겨우 남아있더군요.”

    무너진 축대며 쓸려간 흙이며, 처음엔 복구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여기까지 들어와서 복구할 업체가 없었어요. 지금은 관광객이 많이 찾으니 아스팔트도 깔렸고 길도 좀 넓어졌지만, 예전에는 마을 주민들만 겨우 다니는 작은 흙길밖에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백씨 스스로 여기저기 널브러진 돌을 주워 쌓기 시작했다. 주말마다 돌쌓기 작업에 매달렸다. 이왕 다시 쌓는 것 어떤 태풍에도 끄떡없이 쌓고 싶었고 주변 경치와 어울리도록 멋지게 쌓고 싶었다.

    “여기 경치가 너무 좋거든요. 조금씩 쌓다보니 튼튼하게도 쌓으면서도 주변 경관에 어울려야겠다 싶더라구요. 그래서 화강석을 구입해 쌓기 시작했죠.”

    구입한 화강석을 밭 인근으로 옮기는 것까지는 차로 했지만 돌 쌓기 작업은 백씨의 순수한 근육의 힘으로 진행됐다.

    백씨는 “지형이 험하고 바위가 많아서 포클레인이 들어와도 한계가 있다”며 “인부를 부르고 싶어도 30~60㎏이나 나가는 돌을 아무도 나르려 하지 않는다”고 했다.

    백씨의 작업은 단순하다. 우선 돌을 쌓을 위치까지 화강석을 들어 나른다. 그리고 삽으로 시멘트를 이겨 돌 사이를 메운다. 다시 돌을 나른다. 그리고 시멘트를 바른다. 이 작업의 무한 반복이다.

    그러나 그 과정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높은 곳에 돌을 쌓기 위해서는 돌을 들고 나를 수 있는 계단부터 만들어야 했다. 모래와 시멘트를 섞을 물도 지게를 지고 일일이 날라야 했다. 삽과 물양동이, 시멘트 섞는데 사용하는 대야 등이 작업도구의 전부다.

    매미성주 백순삼씨가 지금도 작업할 때 사용하고 있는 도구들을 들어보이고 있다./김성호/
    매미성주 백순삼씨가 지금도 작업할 때 사용하고 있는 도구를 들어보이고 있다. /김성호 기자/
    거제시 장목면 복항마을 매미성의 모습. 매미성주 백순삼씨가 일주일에 30여개씩 18년간 2만개가 넘는 화강석을 근력으로 쌓아 지었다./김성호/
    거제시 장목면 복항마을 매미성의 모습. 매미성주 백순삼씨가 일주일에 30여개씩 18년간 2만개가 넘는 화강석을 근력으로 쌓아 지었다. /김성호 기자/

    구불구불 구부러진 매미성의 우아한 모양은 지형에 따라 쌓다보니 자연스럽게 생긴 것이다.

    “인위적으로 축대를 쌓더라도 주변 자연 환경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원래 있던 돌과 바위를 최대한 살리려고 애썼습니다. 나무도 주변에서 자라는 묘목을 이식해 심었구요. 여기서 자라던 나무라야 잘 자라겠다 싶었죠.”

    매미성을 자세히 살펴보면 화강석 사이사이에 밭에서 나왔거나 처음부터 밭 축대로 쓰던 돌들이 보인다. 성벽을 쌓는 자리에 바위가 있으면 그대로 드러내 쌓았다. 성벽 틈을 뚫고 자란 마삭줄 등 넝쿨식물들도 매미성이 쌓여가는 동안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것들이다.

    모든 것을 손으로 하다 보니 하나라도 허투루 쌓은 돌은 없다. 돌 하나를 쌓더라도 어디다 쌓을까 어떻게 놓을까 수십 번 고민을 거친다. 설계도는 따로 없지만, 머릿속에 그려 놓은 조감도는 있다고 했다.

    18년 동안 쌓아 온 매미성이 완공되려면 얼마나 남았을까.

    “제가 처음 생각한 설계의 70%도 아직 못 한 것 같아요. 바다에서 보이는 앞쪽이 이제 모습을 갖췄고 뒤쪽은 아직도 할 일이 많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면서 다시 해야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끝이 있겠나 싶어요.”

    매미성은 입장료가 없다. 백씨가 매미성 인근에 운영하는 카페나 가게도 없다. 매미성 쌓는데 돈이 들어갔을 뿐 경제적인 이익은 전혀 얻지 못했다.

    “돌이며 시멘트며 월급 상당부분이 들어갔습니다. 누구는 입장료 받으라는데 받을 생각도 없고 어떻게 하면 받을 수 있는지도 몰라요. 둘째 아들이 매미성 한 편에 아주 작은 카페를 생각하는 모양이더라구요. 그동안 제 월급 일부로 지었다면 이제부터는 거기서 나온 수익으로 매미성을 쌓아야죠.”

    매미성주 백순삼씨. 18년 동안 일주일에 30여개씩 2만개이 넘는 화강석을 쌓아 매미성을 짓고 있다. /김성호/
    매미성주 백순삼씨. 18년 동안 일주일에 30여개씩 2만개이 넘는 화강석을 쌓아 매미성을 짓고 있다. /김성호 기자/

    매미성이 알려지면서 복항마을도 활기를 더하고 있다. 마을 입구에는 커다란 주차장이 생겼고 할머니들만 살고 있던 마을도 자녀들이 들어와 카페나 가게를 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몰리면서 복항마을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주민들은 매미성으로 유명한 복항마을을 어떻게 가꿔 나갈 것인지 백씨와 함께 고심하고 있다. 매미성을 바다에서 볼 수 있도록 몽돌해변 앞바다에 구조물을 설치하자는 의견, 매미성으로 가는 마을길에 벽화를 그려 볼거리를 더하자는 의견 등을 주민들과 나누며 소통하고 있다.

    “제가 처음 땅을 샀을 때 할머니들이 10여 가구밖에 없었어요. ‘이모’라고 부르며 가족같이 지냈었죠. 지금 마을에서 가게하는 분들은 대부분 그 자녀들이에요. 매미성에 관광객이 많이 오니 고향에 돌아온 거죠. 이모님들이 좋아하십니다. 이 일대를 명품 마을로 만들어서 다 같이 살기 좋은 동네를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매미성 쌓는 일에 인생의 18년을 바쳤는데 후회는 없냐고 물었다.

    “땅은 제 것이지만 사람들이 찾으면서 매미성은 제 손을 떠났다 싶어요. 저는 매미성은 이미 이곳을 찾는 사람들 거라고 얘기합니다. 매미성을 둘러보며 용기를 얻고 갔다는 말을 들으면 뿌듯해요.”

    돌아보면 49살에 첫 돌을 쌓았다. 10년이 지나 직장에서 정년퇴직하고 다시 8년이 지났다. 땀을 적셔 쌓은 돌이 지금은 거대한 성으로 남았다. ‘매미성주’라는 직함을 얻었다.

    김성호 기자 ksh@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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