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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1월 19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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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민주화 대부 김영식 신부, 잊지 않겠습니다”

고성서 선종 2주기 추모식 열려
종교계·정계·학계 등 40여명 참석

  • 기사입력 : 2021-10-20 08: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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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민주화운동의 대부 고 김영식 신부 선종 2주기 추모식이 19일 고성 이화공원묘원 성직자묘역에서 거행됐다.

    이날 추모식에는 천주교 불교 개신교 등 종교계와 정계, 학계, 가톨릭신자 등 관계자 40여명이 참석했다.

    국정감사로 김두관 의원 대신 추모식에 참석한 성연석 경남도의원은 “김영식 신부님은 살아서 경남민주화운동의 대부이셨으며, 선종한 다음 한국민주화운동의 상징이 되셨다”며 “지난 2010년 남해군수 김두관을 해방 이후 첫 민주경남지사로 만들어 주신 분도 신부님이셨다”고 회상했다.

    정현찬 경남유월민주항쟁정신계승시민연대 대표는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주도하여 군정 종식과 대통령직선제를 이끄는 등 경남의 민주항쟁에는 항상 김영식 신부가 계셨다”며 “하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매우 엄격해 단 벌 옷에 낡은 승용차 한 대가 전부였다”고 말했다.

    허성학 신부는 추도사에서 “김영식 신부님은 높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으셨고 돈 많은 사람, 권력자와 거리를 두셨다”며 “늘 옷 한 벌로 다니셨고 포니승용차를 단종될 때까지 타시다가 프라이드를 타실 때 좋은 차라며 좋아하셨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김영식 신부는 1970~80년대 경남지역 민주화운동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고성 출신인 고인은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와 정의구현사제단 활동을 하면서 지역 민주화운동을 이끌기도 했다.

    또한 경남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 활동을 했고,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 경남본부 상임대표, 6월민주항쟁20주년기념 경남추진위원회 상임대표 등을 지냈다. 2011년 뇌출혈로 쓰러진 뒤 긴 투병 끝에 2019년 10월 19일 향년 70세로 선종했다.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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