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7일 (토)
전체메뉴

[주말 ON- 여기 어때] 3·15의거 재현의 길

1960년 그 길로 62년을 되돌아…

  • 기사입력 : 2022-02-24 21:36:12
  •   
  • 대한민국 첫 유혈 민주화 운동 3·15의거 올해 62주년 맞아

    의거 발원지 오동동 문화광장·경찰과 투석전 ‘불종거리’

    총격 현장 ‘무학초교 담장’·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지까지

    총 2.4㎞ 역사 현장… 추모의 벽엔 민주영령 188명 넋 기려

    김주열군을 사살한 경찰을 학생에게 맡겨라는 피켓을 들고 마산경찰서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는 마산상고 시위대./3·15의거기념사업회/
    김주열군을 사살한 경찰을 학생에게 맡겨라는 피켓을 들고 마산경찰서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는 마산상고 시위대./3·15의거기념사업회/

    3·15의거가 올해로 62주년을 맞았다. ‘3·15의거 참여자의 명예회복 등에 관한 법률’과 ‘3·15의거 참여자의 명예회복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올해 1월 21일부터 시행된 해이기도 하다.

    올해는 대통령선거와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열리는 해다. 부정선거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고 결국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우리나라 최초의 유혈 민주화 운동, 그 역사의 현장을 되짚어보는 건 어떨까?


    바로 ‘3·15의거 재현의 길’이다. 3·15의거 발원지인 오동동 문화광장을 시작으로 옛 민주당 마산시 당사에 새롭게 조성한 ‘3·15의거 발원지 기념관’을 지나 불종거리와 창동치안센터(당시 남성동파출소), 3·15의거 기념탑을 지나 총격의 현장인 무학초등학교 담장과 마산의료원(당시 도립마산병원), 마산합포구청(당시 마산시청)을 거치면 마지막 장소인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지까지 이어지는 총 2.4km 길이다. 62년 전인 1960년 3월 15일부터 4월 19일까지 계속된 민주화 운동 역사의 현장으로 가보자.

    3·15의거 발원지 오동동 문화광장/경남신문 DB/
    3·15의거 발원지 오동동 문화광장/경남신문 DB/

    ◇3·15의거길 출발점 ‘오동동 문화광장’= 말 그대로 이곳은 ‘발원지’다. 3·15의거는 오동동 인권자주평화 다짐비 맞은편에 있었던 옛 민주당 마산시 당사 건물 앞에서 시작됐다. 1960년 3월 15일 정·부통령 선거일. 선거번호표를 받지 못한 유권자들이 “내 표를 찾아달라”며 당사로 몰려왔고, 전국 최초로 선거 포기를 선언한 민주당 마산시당은 부정선거에 저항해 궐기할 것을 호소했다. 호응한 시민들의 가두시위로 이어졌다. 그때 그 자리엔 ‘3·15의거 발원지 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연면적 743.84㎡에 지하 1층~지상 4층 규모다. 지하 1층 영상실에는 ‘3·15의거 다큐멘터리’를 상영하고, 지상 1~3층의 전시실은 각각 △깊은 울림 △강건한 울림 △힘 있는 울림 등을 주제로 다양한 시청각 자료와 관련 유물이 전시돼 있다.

    3·15의거 행진이 시작된 불종거리
    3·15의거 행진이 시작된 불종거리

    ◇경찰에 투석전으로 대항한 ‘불종거리’와 숱한 사상자 발생한 ‘남성119안전센터’= 오동동 문화광장에서 출발한 시위대는 마산어시장에서 육호광장으로 이르는 불종거리로 몰려들었다.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민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시위대는 경찰의 진압에 돌을 던지며 저항했고, 어린 여학생들과 부녀자는 물론 하층 노동자, 구두닦이, 집창촌 여성들까지 항쟁의 대열에 참가했다.

    남성119안전센터(옛 남성동파출소)는 당시 마산시청, 북마산파출소와 함께 시민들이 가장 격렬하게 항거했던 곳이다. 경찰의 발포와 체포에 분노한 시민들은 파출소와 경찰서장 자택을 습격하고, 특히 북마산파출소를 덮치는 과정에 난로가 넘어져 건물이 전소되기도 했다.

    총격의 현장 무학초등학교 담장
    총격의 현장 무학초등학교 담장

    ◇마산 중심부에 ‘3·15의거 기념탑’,유혈사태 상징물 ‘무학초교 담장’= 창동에서 마산합포구청(옛 마산시청, 당시 부정선거 개표장)으로 이르는 도로 중심에는 ‘민주성지 마산’의 대표 상징물인 3·15의거 기념탑(창원시 근대건조물 제6호)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의거 당시 희생된 학생들의 넋을 위로하고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시민들이 뜻을 모아 만든 탑으로 1962년 세워졌다. 탑 옆으로는 남녀 고등학생과 대학생 3인을 형상화한 동상도 있다.

    기념탑에서 100m 떨어진 곳에 있는 무학초등학교 담장은 그날의 총격이 남아있는 곳이다. 당시 시위대는 개표장인 마산시청으로 향하기 위해 집결한 곳인데, 경찰이 시위대를 겨냥해 발포한 증거가 뚜렷하게 남아있다. 지금 담장은 원래의 위치에서 20m 정도 떨어진 곳에 옮겨 복원한 것이다.

    3.15의거 기념탑
    3.15의거 기념탑

    ◇4·19혁명 진원지 ‘마산의료원’과 마산항 서항지구 ‘김주열 열사 동상’= 당시 도립마산병원(현 마산의료원)은 1960년 4월 11일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된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안치된 곳이다. 죽음에 분노한 시민들의 2차 항쟁으로 이어졌고,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하면서 4·19혁명의 불씨가 됐다.

    마산항 서항지구 친수공간 끝 지점인 정부경남지방합동청사 건너편에 자리한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지(경상남도 기념물 제277호). 민주화 운동 관련 장소가 문화재로 지정된 곳은 이곳이 처음이다. 인양지를 기억하고자 만든 기념물도 있지만, 지난해 10월 이곳에 김주열 열사 동상이 세워졌다. 교복 차림의 가슴에 두 손을 얹은 채 바다에서 떠올랐던 모습이다. 뒤편 추모의 벽에는 3·4월 혁명으로 희생된 민주영령 188명의 넋을 기리는 기념물이다.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지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지

    지금은 열사의 동상이 마지막 장소지만 2024년 9월이면 서항지구 친수공간 내에 민주주의 전당이 들어설 예정이다. 창원시는 오는 4월 민주주의 전당 건립공사를 시작한다. 9000㎡ 부지에 지상 3층, 연면적 7894㎡ 규모로 전시실, 수장고, 민주홀, 민주도서관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차상호 기자 cha83@knnews.co.kr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차상호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