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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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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기획] 경남도립미술관 ‘온라이프’展 들여다보기

미래로 ON 예술

  • 기사입력 : 2022-04-13 08:0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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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사 갈피를 살펴보면 팬데믹 재난은 지구의 시계를 멈추게 했고 인류 문명의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최악의 팬데믹으로 불리는 중세 흑사병 이후 유럽은 르네상스를, 반대로 20세기 초 전세계를 강타한 스페인 독감은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이라는 인류 공멸 비극의 씨앗이 됐다. 생존이 달린 극심한 상황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개인과 사회, 국가, 인류에 미친 동시적 위기는 더 이상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예상케 한다.

    그렇다면 미래 세상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경남도립미술관이 그에 대한 답으로 동시대미술기획전 ‘온라이프(Onlife)’를 마련했다. 포스트코로나 시대,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온·오프라인의 융합으로 펼쳐진 변화된 삶을 되짚고, 미래에 대한 사유와 전망을 가늠해 보는 전시다. 이번 전시는 디지털 기술이 인류의 재난과 맞물려 급속하게 전파됨에 따라 인간의 정체성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염지혜, 미래열병 Future Fever, 싱글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17분 10초, 2018

    감염병의 확산은 많은 부분을 바꾸었는데, 특히 물리적 이동의 제약과 함께 여럿이 한 공간에 머물기 어렵게 됐다. 따라서 원격강의, 줌, 웹엑스, 팀즈는 일상으로 스며들었고 ‘언택트(Untact)’에서 ‘온택트(Ontact)’로의 전환은 빠르게 이뤄졌다. 어디서나 접속이 가능한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 다양한 기기는 온라인의 가상 세계에서 계속해서 연결된 삶을 살게 하고 온·오프라인의 경계를 허문다.

    ‘온라이프’는 디지털과 아날로그,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차이가 점점 희미해져 결국 두 영역의 구분이 사라지고 하나의 통합된 세계가 되는 것을 의미하며, 이탈리아 철학자 루치아노 플로리디(Luciano Floridi)가 처음 언급했다. 실재와 가상이 유연하게 중첩돼 우리의 환경으로 자리잡는 현시대를 함축하는 용어로, 디지털 영역과 물리적 영역의 융합을 의미하는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을 담고 있다.

    전시를 기획한 박현희 학예연구사는 “기술에 대한 비관적 또는 낙관적 판단을 도출하기보다 시대상을 읽는 다양한 감각과 관점, 실험을 통해 기술의 발달이 일으키는 새로운 변화에 비판적 의식을 갖고 대응하며, 선택하고, 변화해 가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는 현시대의 기술적 변화와 현상을 적극 받아들여 이를 소재로 삼고 실험하는 7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박 학예사는 “실재와 가상의 경계가 사라지는 시점에서, 다양한 질문을 통해 새롭게 다가올 세상을 유익하게 열어나갈 수 있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1, 2층 전시실에서 오는 6월 26일까지 만나볼 수 있으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경남도립미술관
    오는 6월 26일까지
    동시대미술기획전 소개

    온·오프라인 경계 허문
    포스트 코로나 시대 사유
    인간 정체성 문제 다뤄

    마산 출신 작가
    이진준·정진경 비롯해
    염지혜·오주영·김효재
    안가영·김희천 등 참여

    영상·설치작품·게임 등
    현시대 변화·현상 담은
    실험적인 작품 선보여

    이진준, 그린 룸 가든 Green Room Garden, AI, AR, 비디오, 사운드, 그린 젤필터 라이팅, 월페인팅, 돌, 문, 가변크기, 2022
    이진준, 그린 룸 가든 Green Room Garden, AI, AR, 비디오, 사운드, 그린 젤필터 라이팅, 월페인팅, 돌, 문, 가변크기, 2022
    이진준 작가 '그린 룸 가든'
    이진준 작가 '그린 룸 가든'
    이진준 작가 '그린 룸 가든' 전시의 증강현실 체험.
    이진준 작가 '그린 룸 가든' 전시의 증강현실 체험.
    이진준 작가 '그린 룸 가든' 전시의 증강현실 체험.
    이진준 작가 '그린 룸 가든' 전시의 증강현실 체험.

    ◇이진준 ‘그린 룸 가든’= 마산 출신의 작가는 뉴미디어 아티스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새로운 기술을 이용한 경계공간 경험에 관한 작품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 전임교수로 임용돼 AI(인공지능), XR(가상융합기술) 등 새로운 공학 기술을 이용한 예술과 건축을 연구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경남도립미술관 커미션으로 제작한 신작으로, 인공이라 칭하는 새로운 물질과 자연의 관계를 모색한다. 녹색 빛으로 채워진 인공의 정원을 구성하는 벽화에 증강현실과 AI 기술로 만들어진 자연의 영상을 통해 관객에게 가상의 장소에 올라선 것 같은 경험을 선사한다. 작가는 전시공간에 도안한 후 창원대 출신 학생들과 배경을 칠하는 협업을 진행했다. ‘소화전’으로 써 있는 실제 문 위에 ‘문’을 그려 위트를 더했다. 전시 공간 중간에 고인돌 모양이 있는데, 실제 어플에 찍으면 탑이 나오는 증강현실도 체험할 수 있다.

    염지혜, 에이아이 옥토퍼스 AI Octopus, 싱글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16분 35초, 2020
    염지혜, 에이아이 옥토퍼스 AI Octopus, 싱글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16분 35초, 2020
    염지혜, 미래열병 Future Fever, 싱글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17분 10초, 2018
    염지혜, 미래열병 Future Fever, 싱글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17분 10초, 2018

    ◇염지혜 ‘미래열병’= 인간 존재가 개인적, 환경적, 문명적인 차원에서 경험하게 되는 변화들에 관심을 갖고 작업을 선보여왔다. 특히 영상언어를 활용해 현상 이면에 작동하는 힘의 근원을 밝히고 있다. 여기에 과학과 역사, 철학, 종교의 영역을 아우르는 연구를 토대로 작업을 심화시킨다. 위기의식과 조급함, 열등감 등 긴장상태를 유지한 채 마치 전염병에 걸린 듯 미래로 내달리려는 사람의 모습에서 이름 붙힌 ‘미래열병’을 선보인다. 실제 명명되지 않은 병명으로, 작가는 20세기 초 유럽에서 확산된 미래주의 문화운동을 현 시대에 대입한다. 작가는 17분짜리 영상인 ‘미래열병’을 통해 기술에 대한 긍정, 부정의 판단보다는 우리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오주영, 당신의 사랑 상담봇 Your Love Counselor, 윈도우PC, 챗봇AI, 키보드, 마우스, 아크릴자물쇠, 혼합재료, 가변크기, 2020-2022
    오주영, 당신의 사랑 상담봇 Your Love Counselor, 윈도우PC, 챗봇AI, 키보드, 마우스, 아크릴자물쇠, 혼합재료, 가변크기, 2020-2022

    오주영 작가 '당신의 사랑 상담봇'

    오주영 작가 '당신의 사랑 상담봇'
    오주영 작가 '당신의 사랑 상담봇'

    ◇오주영 ‘당신의 사랑 상담봇’= 기술에 투영된 인간의 환상, 그리고 기저의 근원과 문제점을 표현하는 인터렉티브 미디어 설치작품을 선보인다. 사랑을 주제로 한 세 가지 인공지능 작품으로 구성되는데, 데이팅 어플리케이션 사용자들이 주고받은 텍스트를 학습한 AI에게 관람객이 연애상담도 가능하다. ‘운명의 사랑 파인더’는 서구 문화권 기반의 데이팅앱을 한국 전통문화와 정서를 반영해 변형했다. ‘너도 진지한 거 아니잖아’는 인공지능 GPT-3가 쓴 시놉시스 4편의 비주얼 러브소설로, 대화 데이터를 바탕으로 AI가 글을 썼다. 이 소설은 딥페이크배우와 실재 배우가 혼재하는 영상으로 제시된다. 작가는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데이터만으로 학습한 결과물들이 과연 진실과 믿음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묻는다.

    정진경, Follow the white rabbit, 윈도우PC, 사운드, 인터렉티브 센서, 오큘러스 장비, 혼합재료, 2022
    정진경, Follow the white rabbit, 윈도우PC, 사운드, 인터렉티브 센서, 오큘러스 장비, 혼합재료, 2022
    정진경 작가가 관람객에게 체험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정진경 작가가 관람객에게 체험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정진경 ‘Follow the white rabbit’= 마산 출신의 작가는 시각예술과 영상작업을 통해 일상을 재구성하거나 판타지적으로 드러내 일상에 대한 인식을 확장하는 작업을 주로 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삶에 깊이 침투한 디지털 네트워크 기술에 따른 인간의 인지 경험과 선택의 과정에 주목한다. 경남도립미술관 커미션으로 제작한 신작으로, 메타버스 플랫폼 ‘브이알 챗’을 이용해 체험할 수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하얀 토끼에 정신이 팔려 굴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관객은 토끼를 매개로 가상의 판타지 공간을 경험하게 된다. 관람객은 HMD(머리 착용 디스플레이)로 실존과 가상이 뒤섞인 메타버스에서 체험을 하게 된다. 정 작가는 “실제로 열매를 딸 수도 있고 물건을 집을 수도 있다”며 “각자 선택에 따른 상호작용을 통해 다른 경험치를 갖게 된다”고 말했다.

    김효재, 파쿠르 Parkour, 싱글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33분 21초, 2021
    김효재, 파쿠르 Parkour, 싱글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33분 21초, 2021

    ◇김효재 ‘파쿠르’= 작가는 모든 것이 데이터로 환원돼 가는 과도기적 현실에서 ‘디폴트’라는 탈진실적 물음을 지속해오며 삶과 죽음, 진실과 탈진실, 가상과 현실의 이분법적 통념을 파괴하고 새로운 정체성의 방향을 제시한다. 작가의 작업에서 디폴트는 ‘인간과 데이터 간의 전이 속 사용자가 스스로 설정하는 새로운 정체성’을 뜻한다.

    안가영, KIN거운 생활 쉘터에서, 시뮬레이션 게임, 스크린에 프로젝션, 윈도우PC, 터치스크린, 10~480분, 2021-2022 (2)
    안가영, KIN거운 생활 쉘터에서, 시뮬레이션 게임, 스크린에 프로젝션, 윈도우PC, 터치스크린, 10~480분, 2021-2022 (2)

    ◇안가영 ‘KIN거운 생활:쉘터에서’= 작품에서 ‘KIN’은 영어로 ‘친족’이라는 의미인데 인터넷 용어 ‘즐’을 90도로 돌려 쓴 형태이기도 하다. 또 온라인 게임에서 배척의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과학기술이 초래한 아포칼립스적 미래에 대한 시뮬레이션 게임은 선보인다. 작가는 게임이나 현실에서 비플레이어 캐릭터의 삶을 중점적으로 조명하면서 관찰하고 개입할 수 있도록 게임을 설계했다. 이곳의 관찰자이자 영상의 나레이터인 해파리처럼 플레이어들은 게임 경험을 통해 오늘날 디지털 데이터로 환원돼가는 생태계에서 비인간 객체들과의 공존에 대해 성찰해 볼 수 있다.

    김희천, 랠리 Wall Rally Drill, 싱글채널 비디오, 사운드, 32분 58초, 2015
    김희천, 랠리 Wall Rally Drill, 싱글채널 비디오, 사운드, 32분 58초, 2015

    ◇김희천 ‘랠리’= 작가는 ‘바벨’, ‘Soulseek/Pegging/Air-twerking’, ‘랠리’로 이어지는 초기 3부작을 통해 작가는 모든 정보가 활성화되고 연동되는 온라인상의 세계와 오프라인 사이 어딘가에서 존재와 인식, 세계를 향한 질문을 던진다. ‘랠리’는 18개월간의 여자친구와 장거리 연애가 끝나면서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온, 오프라인이 쪼개지는 작가의 개인적 경험에서 시작됐다. 작가는 서사나 제작의 주요도구로 3D, VR(가상현실), 페이스스왑, 게임 등 다양한 디지털 기술를 활용해 현실적 상황에 비현실적인 레이어를 더하는 도구로 작용한다.

    정민주 기자 jo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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