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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 귀한 마주침, 텅 빈 충만- 엄원태

  • 기사입력 : 2022-10-13 09:2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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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요일 늦은 오후, 텅 빈 강의실 복도에서 쓰레기통을 비우고 있는 청소 아주머니와 마주친다. 눈이 마주치자 몸피가 조그만 아주머니는 내게 다소곳이 허리 굽혀 인사를 한다. 내가 마치 ‘높은 사람’이라도 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공손한 인사. 무슨 종류일지 짐작 가는 바 없지 않지만, 아마도 어떤 ‘결핍’이 저 아주머니의 마음에 가득하여서, 마음자리를 저리 낮고 겸손하게 만든 것이겠다. 저 나지막한 마음의 그루터기로 떠받치고 품어 안지 못할 것이 세상에 있기나 한 것일까?

    아주머니, 쓰레기들을 일일이 뒤적여 종이며 캔과 병 같은 것들을 골라내어 따로 챙긴다. 함부로 버려진 것들에서 ‘소중한 어떤 것’을 챙기는 사람 여기 있다. 아주머니는 온몸으로, 시인이다.


    ☞ 대학교 강의실 복도에서 쓰레기통을 비우고 있는 청소 아주머니와의 마주침에서 이 시는 시작(詩作)된다. 소쉬르의 기호학에 의하면 언어뿐 아니라 이미지나 사람의 행동까지도 시의 기호로 본다. 이러한 기호의 대상은 일상 세계의 우연한 마주침에서 발견되어 시적 사건으로 연결되곤 한다.

    순간 어쩔 줄 몰라 하며 교수인 자신에게 허리를 굽혀 공손하게 인사하는 청소 아주머니. 어떤 결핍으로 인한 마음자리임을 짐작하고는 ‘품어 안지 못할 것이 없는 사람’의 행동으로 인식한다. ‘함부로 버려진 것에서 소중한 것을 챙기고 있’는 아주머니야말로 작은 공간 혁명의 주체로서 한 마디로 온몸이 시인인 것이다.

    아주머니의 낮고 겸손함을 따뜻한 시선으로 읽어낸 시인의 마음 또한 예사롭지 않다. 텅 빈 마음 한구석을 삶의 위안으로 충만케 한다. 낙엽이 쌓이기 시작하는 가을, 먼저 인사를 건네 보면 어떨까. “수고 많으십니다.”

    -천융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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