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16일 (화)
전체메뉴

[시가 있는 간이역] 꽃이 피는 시간 - 정끝별

  • 기사입력 : 2023-03-10 15:27:54
  •   

  • 가던 길 멈추고 꽃핀다

    잊거나 되돌아갈 수 없을 때

    한 꽃 품어 꽃핀다

    내내 꽃피는 꽃차례의 작은 꽃은 빠르고

    딱 한번 꽃피는 높고 큰 꽃은 느리다

    헌 꽃을 댕강 떨궈 흔적 지우는 꽃은 앞이고

    헌 꽃을 새 꽃인 양 매달고 있는 꽃은 뒤다

    나보다 빨리 피는 꽃은 옛날이고

    나보다 늦게 피는 꽃은 내일이다

    배를 땅에 묻고 아래서 위로

    움푹한 배처럼 안에서 밖으로

    한소끔의 밥꽃을

    백기처럼 들어올렸다 내리는 일이란

    단지 가깝거나 무겁고

    다만 짧거나 어둡다

    담대한 꽃냄새

    방금 꽃핀 저 꽃 아직 뜨겁다

    피는 꽃이다!

    이제 피었으니

    가던 길 마저 갈 수 있겠다.


    ☞꽃이 핀단다. “잊거나 되돌아갈 수 없을 때” 꽃이 핀단다. 꽃을 사랑으로 읽어도 되겠다. “나보다 빨리 피는 꽃은 옛날이고/ 나보다 늦게 피는 꽃은 내일이”라니 꽃을 사람으로 바꿔 읽어도 되겠다.

    이제 봄이다. 차례대로 꽃이 피겠지. “내내 꽃피는 꽃차례의 작은 꽃은 빠르고/ 딱 한번 꽃피는 높고 큰 꽃은 느리”니 사람의 일과 꽃의 일이 어쩜 이리도 꼭 닮았을까. 빨리 피는 꽃은 더 일찍 지겠지.

    “한소끔의 밥꽃을/ 백기처럼 들어올렸다 내리는 일이란/ 단지 가깝거나 무겁고/ 다만 짧거나 어둡다” 꽃 한 송이가 일생이고 꽃 한 송이가 천 년이다. “담대한 꽃냄새/ 방금 꽃핀 저 꽃 아직 뜨겁다” 성선경(시인)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