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3년 12월 04일 (월)
전체메뉴

[주말 ON- 듣고 싶은 길] 하동 ‘박경리 토지길’ 1코스

가을 路 발길, 토지路 눈길

  • 기사입력 : 2023-11-02 21:18:34
  •   
  • 강바람 솔솔 평사리공원, 황금빛 머금은 평사리들판, 핑크뮬리로 물든 동정호
    소설 속 일상 만나는 최참판댁, 박경리 선생 동상, 세월의 흔적 간직한 화사별서


    가을로 물든 평사리 황금들판. 이곳에 있는 부부송과 동정호가 운치를 더하고 있다.

    남쪽으로는 섬진강, 북쪽으로는 신선봉 사이에 자리한 평사리는 박경리 소설 ‘토지’의 무대가 된 장소다. 굽이굽이 흐르는 섬진강과 드넓은 들판, 줄줄이 들어선 전통가옥은 마치 소설 속 장소를 그대로 옮겨온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토지의 주요 장소가 포함된 ‘박경리 토지길’을 따라 걷는 시간은 소설 속 인물들의 삶과 애환을 헤아릴 수 있는 여정이다.

    가을로 물든 평사리 황금들판. 이곳에 있는 부부송과 동정호가 운치를 더하고 있다.
    가을로 물든 평사리 황금들판. 이곳에 있는 부부송과 동정호가 운치를 더하고 있다.

    ◇평사리공원에서 바라본 섬진강

    박경리 토지길 1코스의 출발점인 평사리공원에 들어서자 햇살을 머금은 강바람이 솔솔 불어온다. 바람에 이끌려 강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발걸음이 멈춘 곳에는 거대한 강줄기를 자랑하는 섬진강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섬진강은 유속이 느리고 강물 색깔이 일정해서 그런지 처음 봤을 때는 멈춰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러다 햇빛에 반짝일 때면 흘러가는 강물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가만히 머무는 듯해도 쉼 없이 흘러가고 있다. 마치 우리 인생처럼 느껴진다. 시간은 멈춘 듯하고 더디게만 흘러가는 것 같은데, 어느새 돌아보면 언제 지나갔는지 늘 우리 주변을 바꿔 놓는다. 섬진강은 방문하는 이들마다 깊은 대화를 건넨다.

    섬진강을 벗삼은 평사리공원.
    섬진강을 벗삼은 평사리공원.

    ◇황금빛 평사리와 분홍빛 동정호

    평사리공원에서 나와 평사리들판으로 자리를 옮긴다. 가을을 맞이한 평사리들판은 황금빛을 머금고 있다.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황금빛이 일렁거린다. 농부들의 한 해 동안 수고로움이 담겨 있다. 들판 사이에 있는 길을 따라 걸어 본다. 들녘을 보면서 걷는 것만으로도 풍요로움을 얻어가는 기분이다.

    ‘핑크뮬리’로 물든 동정호.
    ‘핑크뮬리’로 물든 동정호.

    평사리들판에는 동정호라는 호수가 있다. 들판 사이를 걷다 보면 쉽게 만날 수 있는데 거대한 면적의 호수와 작은 섬 하나로 이뤄져 있다. 동정호란 이름은 사실 중국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평사리가 위치한 악양면이란 지명은 중국 후난성에도 있는 지명인데, 동정호는 중국 후난성 악양에 있는 유명한 호수 이름으로 같은 지명인 것에 착안해 동일한 이름이 붙여졌다.

    현재 동정호는 핑크뮬리의 계절이다. 동정호 곳곳에 분홍색 안개가 낀 듯 흐드러지게 피어 있어 보는 이들을 몽환적인 분위기로 이끈다.

    동정호 뒤편 넓은 들판에는 소나무 2그루가 우뚝 서 있다. 부부송이다. 실제로 보기 전까지는 친구 사이, 형제 사이, 부모 자식 관계 등으로도 보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지만 막상 보면 영락없이 부부 소나무로 보인다. 그것도 신혼부부가 아닌 서로 의지하며 긴 세월을 살아낸 중년 부부의 모습이다. 그래서 부부송을 소설 토지 속 주인공 부부인 ‘서희와 길상 나무’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단다. 오랜 세월을 함께 보낸 부부송은 또 하나의 가을을 함께 맞이하고 있다.

    수호신처럼 우뚝 솟아 있는 고소성
    수호신처럼 우뚝 솟아 있는 고소성

    ◇평사리의 수호신 고소성

    고소성은 한산사를 거쳐 올라가야 한다. 동정호에서 한산사까지도 상당한 거리인데, 바로 산성으로 올라가려니 엄두가 나지 않아 잠시 쉬었다 올라갔다. 한산사에는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서는 평사리 일대가 한눈에 담긴다. 조금 전 보았던 황금빛 들판도 보이고, 동정호와 부부송도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굽이굽이 흘러가고 있는 섬진강도 볼 수 있다. 고소성을 오르기 전 하산하는 등산객에게 얼마나 더 올라가야 하는지 물어봤다. 밝은 미소와 함께 20분 정도 걸리고, 급경사라 조심해서 올라가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통상 등산객들은 다른 등산객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소요시간을 짧게 말하는 경향이 있어 30분 정도 예상하고 고소성을 올랐다. 고소성으로 가는 길은 정말 험하다. 체감상 경사도 45도가 넘는 것 같다. 소설 ‘토지’ 초반 ‘구천’이 밤마다 고소성과 신성봉 등을 쏘다녔다는 구절이 나오는데, 구천의 어지러운 마음이 실감이 난다. 쉴 새 없이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30분 넘게 산을 오르니 고소성이 모습을 드러낸다. 당당하게 우뚝 솟아 있는 산성은 평사리 일대의 수호신처럼 느껴진다. 역시 수호신은 쉽게 만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 ‘토지’ 속 최치수가 머물던 사랑채.
    소설 ‘토지’ 속 최치수가 머물던 사랑채.

    ◇소설 속 일상을 만날 수 있는 최참판댁

    한참을 쉬다 최참판댁으로 향하기 위해 산을 내려왔다. 최참판댁은 소설 속 공간을 실제로 구현해 놓은 곳으로 박경리 선생이 인정할 정도로 소설 속 묘사와 매우 흡사한 모습이다. 먼저 민가가 이어지고 그다음에는 고즈넉한 최참판댁이 나타난다. 장소만 구현돼 있지만, 옹기종기 모여 살아가던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자연스레 그려진다. 최참판댁 사랑채에서는 최치수의 거친 기침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별당채에서는 당찬 서희가 당장이라도 문을 열고 나오는 듯하다. 최참판댁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공간은 이상하게도 장독이다. 많은 장독들은 최참판댁이 소설과 드라마 속 장면을 위해 임의적으로 구현한 공간이 아닌 실제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박경리 선생 동상
    박경리 선생 동상

    최참판댁 주변에 위치한 박경리문학관으로 발길을 돌린다. 먼저 박경리 선생의 동상이 눈에 들어오고 그다음 박경리 선생의 필체가 담긴 비석들이 보인다. 그리고 문학관 안에서는 소설 토지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들과 박경리 선생들의 유품이 전시돼 있다. 전시물들을 둘러보다 낡은 국어사전에 눈길이 간다. 박경리 선생이 실제로 사용하던 유품으로 소설 속 풍부한 표현력의 비결인 듯하다.

    박경리 문학관 전경
    박경리 문학관 전경
    최참판댁 실제 모델인 화사별서
    최참판댁 실제 모델인 화사별서

    ◇최참판댁 실제모델 ‘화사별서’

    최참판댁을 나와 북쪽에 위치한 화사별서로 향한다. 화사별서는 토지에 나오는 최참판댁의 실제 모델이 된 고택이다. 원래 조씨고가로 알려졌지만 최근 화사별서로 명칭이 변경됐다. ‘화사’는 고택을 조성한 조재희 선생의 ‘호’이며, ‘별서’는 농사를 목적으로 지은 별장을 뜻한다. 화사별서는 1890년대 초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잘 보존되어 있으면서도 130년이 넘는 세월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색이 바랜 기와와 기둥에서 고고한 멋이 드러난다.

    경상도와 전라도의 경계를 이루는 곳에 위치한 화개장터
    경상도와 전라도의 경계를 이루는 곳에 위치한 화개장터

    ◇영호남의 정을 만날 수 있는 화개장터

    취간림을 지나 다시 평산리공원을 거쳐 박경리 토지길의 마지막 장소인 화개장터로 향한다. 화개장터는 섬진강과 화개천이 만나는 곳에 위치해 있는데, 주소상으로는 경남 하동군이지만, 전남 구례군과 광양시와도 무척 가까워 영호남이 함께 만나고 화합하는 장소로 유명하다. 실제로 화개장터에서는 경상도와 전라도의 생생한 사투리를 모두 들을 수 있다. 간식거리와 약재 등을 판매하는 상점들이 많아 소소한 추억거리를 집으로 가져가기에도 좋은 장소이다. 박경리토지길에서 보낸 하루는 풍요로움과 여유로움을 보고 쉬어가는 시간이다.


    글= 이주현 월간경남 기자·사진= 전강용 기자

    ※자세한 내용은 월간경남 11월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이주현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