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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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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1009) 출륜준재(出倫俊才)

- 보통 사람들보다 뛰어난 재주 있는 사람

  • 기사입력 : 2023-12-26 0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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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방한학연구원장

    1969년 갑자기 문교부(지금의 교육부)에서 대학입학예비고사를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전 과목을 다 포함시키는 시험이었다. 그 당시 서울대만 거의 전 과목을 입시에 넣고, 여타 대학들은 몇 과목만 시험과목에 넣었던 시절이었다.

    첫 시험이 1968년 실시되었다. 처음에는 합격 불합격 판정만 하였다. 불합격자는 4년제 정규대학에 입학할 자격을 주지 않았다. 그 당시 사립대학이 워낙 엉망이라서 정원 외 입학을 마음대로 시키고, 고등학교에서도 입시에 쓰이는 과목만 집중적으로 하니 올바른 교육이 되지를 않았다.

    예비고사 수석합격자는 전국 고등학교 3학년 학생 가운데서 전 과목 실력이 가장 뛰어난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니, 아주 영광으로 인정받았다.

    1969학번 수석합격자는 임지순, 1970학번 수석합격자는 오세정인데, 모두 서울대 물리학과를 지원하였다. 그 뒤 물리학을 계속 공부하여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교수가 되었다. 오세정은 국회의원, 서울대 총장 등을 지냈다.

    1974학번 수석합격자는 송기호인데, 서울대 국사학과를 지원하여 국사학과 교수를 지냈다. 발해사(渤海史) 분야의 전문가다.

    1972학번 수석합격자가 처음으로 서울대 법대를, 1976학번 수석합격자가 처음으로 서울대 의대에 지원했다. 그 이후 점차 수석합격자의 법대 의대 지원이 빈번해지더니, 근년에 와서는 거의 대부분이 서울대 법대 의대 등을 지원한다.

    과학기술 분야의 경우 외국 유학을 가야 할 경우가 많은데 자비로 유학가기 어렵다. 박사학위를 받아 돌아와도 대학교수 자리가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연구기관 같은 곳에 근무하면, 연봉은 대학교수와 비슷하지만 연금수급 대상자가 되지 못해 노후 보장이 안 된다. 대기업 연구원으로 취업해도 언제 해직당할지 모르니 불안하다. 외국에서 박사를 받고도 원하는 자리를 얻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다.

    법대를 나와 고시에 합격하거나, 의대를 나와 의사가 되면 연봉도 많지만 노후가 보장이 된다. 자기가 일하기를 원하는 나이까지 수익을 올릴 수 있다. 그러니 특별히 학문적인 취향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법대나 의대를 지원하게 마련이다.

    금년도 소위 일류대학의 수시합격자의 30%가 미등록이다. 대부분 의대에 가기 위해서다. 첨단과학과, 전자공학과 등등 좋은 대학의 유망한 학과도 의대 앞에서는 경쟁이 안 된다.

    국가에서 기초학문이나 첨단학문을 위한 특별지원이 있지 않고는 의대 쏠림 현상을 막을 수 없다.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점령하고 나서, 우리나라 인재들을 대단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법관이나 의사의 대우를 특별히 잘하여, 인재들이 그 쪽으로 쏠리게 만들었다 한다.

    경전(經典) 수준의 저서를 낼 어문학자(語文學者), 철학자, 역사학자, 순수과학자 등이 우리나라에서 많이 배출되려면, 거의 모든 뛰어난 인재들이 의대로 몰려서는 안 될 일이다.

    * 出 : 날 출. * 倫 : 무리 륜. 윤리 륜.

    * 俊 : 준걸 준. * 才 : 재주 재.

    허권수 동방한학연구원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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