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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20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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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 그림자 일기- 김륭

  • 기사입력 : 2023-12-28 08: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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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픔이 벗어 놓은 옷 같기도 하고

    어른이 되어서도 두고두고

    읽고 써야 할 검은 책 같기도 하지만

    나란히 옆에 누우면 숨을 쉴 것 같고

    말도 할 것 같은 그림자


    두 손으로 가만히 얼굴을 감싸 안을 때만 보이는

    슬픔이 그렇고 사랑이 그렇다고


    나는 오늘 처음으로 내가 미워서 울었다

    내가 내린 비를 내가 맞는 것처럼

    다정하게


    그림자가 하는 말을 아슬아슬하게

    받아 적었다


    ☞그림자는 나를 닮았으면서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나보다 키가 커졌다가 허리춤보다 작아질 때도 있고, 윤곽이 선명했다가 추억처럼 흐릿해지기도 한다. 내가 밝은 곳에 있어도 그림자는 어둠으로 존재하고, 나와 한 몸인 것 같으면서도 안팎이 다른 듯도 하다. 때로 그 어둠은 내 깊은 속마음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 동시에서 그림자는 나의 또 다른 모습이다. ‘나란히 옆에 누우면 숨 쉴 것 같고 말도 할 것 같은 그림자’는 나의 분신이다. ‘두 손으로 가만히 얼굴을 감싸 안을 때’ 보이는 슬픔과 사랑처럼 내 속에서 깊어지는 그림자. 밝은 면 뒤에 가려진 채 많은 눈물을 끌어안아 준 그림자. 그래서 시인은 빛의 또 다른 이름인 그림자의 말을 ‘아슬아슬하게 받아 적어’ 자신을 반추하며 깊어진다.

    생을 성숙하게 하는 것은 빛이 아니라 빛 뒤에 가려진 이면일 때가 많다. 지난 일 년 동안 저마다 깊고 어두운 그림자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내가 내린 비를 내가 맞는 것처럼 다정하게’ 나의 그림자를 안아 주자. 그렇지, 괜찮아, 하고 토닥여 주자. 그러면 새해 솟아오른 해를 볼 때, 그림자가 나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어 올 것이다. 그림자가 나를 받쳐주는 버팀목이자 희망이 되어줄 것이다. - 김문주(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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