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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0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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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건축물 기행] 기억의 집, 헤어짐의 집

지금의 나를 뒤돌아보는… 생의 이면에 존재하는 공간

  • 기사입력 : 2023-12-28 08: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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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가 태어나서 성장하고 꿈을 펼치다 어른이 되고 그러다 시간이 한참 흘러 기억이 희미해지고 그리고는 영원한 이별을 하는 일련의 과정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이며 이는 건축물 안에서 일어난다. 건축물의 유형에는 인간의 생애주기에 따르는 시설들이 다양하게 분포하는데 이번 지면에서는 동전의 양면처럼 생의 이면에 존재하는 공간에 대한 건축적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노숙인을 위한 복지원, 치매노인을 위한 요양시설을 공공성에 기반해 살펴보고, 영원한 이별의 공간인 장례식장을 통해 지금을 살아가는 나를 생각해 본다.

    마산합포구 진동면에 위치한 자연 속 자활공동체 ‘창원시립복지원’.
    마산합포구 진동면에 위치한 자연 속 자활공동체 ‘창원시립복지원’.
    창원시립복지원.
    창원시립복지원.

    자연 속의 자활 공동체
    태봉천·인근 산 어우러져
    재활·자립 위한 최적 환경

    ◇창원시립복지원

    IMF 경제위기를 기점으로 노숙인 쉼터에 대한 관심과 필요는 커졌으나 여전히 사회복지의 사각지대로, 이는 해결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삶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원 시스템을 갖추어 나가는 문제이다.

    창원시립복지원 기존 건물은 1972년 마산회원구 회성동 하천부지에 건립해 운영됐으나 노후와 시설 협소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새로이 지어진 복지원은 마산합포구 진동면에 위치하고 앞으로 태봉천이 흐르고 건너편 산이 바라다보이는 자연과 접한 환경이다.

    경사지형을 이용해 지하1층이 하천변으로 텃밭과 운동공간으로 바로 이어질 수 있도록 했고 1층 진입공간에 식당과 자활 작업장, 재활 프로그램실 등을 배치했다. 설계단계에서 특히 신경 쓴 2층은 남녀 구분된 숙소로 각각의 침실은 외부와의 완충공간인 테라스를 두어 외기를 접하고 자연을 쉽게 접할 수 있게 하여 재활과 자립을 위한 쾌적한 환경이 될 수 있도록 했다.

    노숙인에 대한 한 연구에 의하면 자활의 길로 들어서게 만들어준 원동력은 ‘지역사회 공동체의 사회적 지지와 자활 공동체 속 사람들과의 지속적인 소통’이라고 한다. 진동에서 마산으로 들어오는 국도변을 지날 때 창원시립복지원이 보이면 마음으로라도 지지와 응원을 보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낙동강을 조망할 수 있는 치매 전담 요양시설 ‘김해시립요양원’.
    낙동강을 조망할 수 있는 치매 전담 요양시설 ‘김해시립요양원’.
    ‘김해시립요양원’.
    ‘김해시립요양원’.

    낙동강 조망 치매전담 시설
    연속되는 실내외 배회공간
    유기적인 동선 등 치료 효과

    ◇김해시립요양원

    생의 기억을 잃어가는 분들이 자연을 가까이하며, 그 안의 아름다움과 여유를 느끼고 일상의 기억들을 조금씩 채울 수 있는 ‘기억의 집’.

    요즘은 요양원을 제외하고는 노후를 이야기할 수 없다. 요양원은 외딴섬 구석진 곳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가족, 나의 문제이며 반드시 찾아올 나의 현실이 되고 있다. 그동안 치매환자 돌봄은 대부분 개인이나 사립요양원이 담당했으나 노인요양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커지면서 치매환자의 치료나 돌봄에 있어 공공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대지는 돗대산을 뒤로하고 서낙동강을 마주하는 위치로 도로에 둘러싸여 소음에 노출되어 있다. 소음에 대한 대응과 외부와의 완충을 위해 2층의 공동거실에 테라스를 두어 외기를 접하고 자연을 쉽게 접할 수 있게 하여 치유를 위한 쾌적한 환경이 될 수 있도록 하였다.

    자연을 품고 있는 입면은 계절과 환경의 변화를 담고 있으며 이용자들에게 안락함과 자연친화적인 환경을 제공한다. 수직루버 속의 이용자는 자연을 바라보며 루버 틈새 사이로 주변환경을 소유한다. 김해시립요양원은 치매전담 요양시설과 주간보호센터로 운영되는데 주요 프로그램으로는 1층은 주간보호센터와 식당, 프로그램실, 물리치료실 등으로 구성되고 2층은 4인실과 2인실, 공동거실의 치매전담실로 이루어져 있다.

    연속되는 실내·외 배회공간을 통해 유기적인 동선의 흐름을 유도하고 치료에도 긍정적 효과를 줄 수 있도록 했다. 배회공간을 걸으며 낙동강을 조망할 수 있고 와이어 메쉬를 이용한 벽면녹화를 통해 에너지 성능 향상과 심리적 안정에 도움을 주고 실내와 자연의 완충역할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경건하고 엄숙한 헤어짐의 공간 ‘마산의료원 장례식장’./서정석 건축사/
    경건하고 엄숙한 헤어짐의 공간 ‘마산의료원 장례식장’./서정석 건축사/
    마산의료원 장례식장.
    마산의료원 장례식장.

    단순한 예를 넘어선 공간
    고인 관련 커뮤니티 활성화
    각 빈소마다 외부 휴게공간도

    ◇마산의료원 장례식장

    장례식장은 우리 삶에서 하나의 감정적 이정표(milestone) 같은 장소라 할 수 있다. 그 공간에서 우리는 삶과 죽음과 과거와 미래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된다. 고인과의 관계에서 시작된 수많은 이야기들이 회자되며, 그 과정에서 감정적 치유를 서로에게서 얻게 된다. 단순한 예(禮)의 공간을 넘어서는 고인과 관계된 커뮤니티가 적극적으로 활성화되는 장소인 것이다. 이 공간과 장소와 형태를 이름 짓자면 ‘삶의 이정표(life of milestone)’이다. 이 이정표에서 우리는 고인과의 안녕을 고하고, 우리의 삶에 대해 사유하게 된다.

    대지 내 장방형의 계획 가능공간을 설정하고, 6m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과 KT&G와의 관계를 고려했다. 이 두 건물 사이에 비워진 공간의 흐름을 대지 내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도시의 흐름을 유지하고, 이 흐름을 중심으로 매스를 분절했다. 또한 마산의료원과 인접도로의 흐름을 고려해 분절된 매스를 재배치함으로써, 전체 볼륨의 구성은 주변의 도시 맥락과 긴밀한 관계를 이루게 된다. 나눠진 세 매스를 이어주는 아트리움을 형성하고, 각 매스 내부에 열린 공간을 삽입하는 순서로 진행했다. 마산의료원 방향의 개구부는 최소화하고 각 빈소마다 외부 휴게공간을 두어 장시간 빈소에 머무는 사람을 위한 공간으로 이용될 수 있도록 했다.

    매스의 분절로 자연스럽게 형성된 주출입구와 중정이 있고, 후면부의 장의차량과 영결식장 출입구의 인접 배치로 운구 동선과 조문 동선을 구분했고, 지하연결 통로를 통해 마산의료원과 연결되도록 했다.

    사람은 살아가는 동시에 죽어가는 존재이다. 사람들은 죽음을 맞이하거나 임종을 준비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거나 말하기를 꺼리지만 ‘생의 마지막 당부’라는 책에서는 평소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할수록 삶도, 죽음도 편안해진다고 한다.

    (주)무위건축사사무소 서정석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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