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8일 (일)
전체메뉴

[도희주의 반차 내고 떠나는 트립 인경남] (2) 김해 한림 술뫼 생태길 따라

겨울의 끝자락으로 출발 ▶▶ 끝없이 펼쳐진 낙동강 줄기 ■■ 멈추니 보이는 자연의 대작

  • 기사입력 : 2024-02-15 21:59:11
  •   
  • 동읍 무점터널 지나 부산 진영 방면으로 직진
    한림로 진입하니 가로수가 양쪽에 대열하고
    구불구불한 길은 벚나무 마른가지가 에스코트

    낙동강 줄기와 들이 어우러진 술뫼생태공원
    철교·드넓은 들판·억새를 파고든 작은 섬…
    그림 같은 풍경에 나그네들은 감탄이 절로

    낙동강 철교와 수사자를 닮은 작은 섬이 어우러져 운치를 더하고 있다./도희주 동화작가/
    낙동강 철교와 수사자를 닮은 작은 섬이 어우러져 운치를 더하고 있다./도희주 동화작가/


    시동 걸고 겨울의 끝을 향해 출발. 동읍 무점터널을 지나 부산 진영 방면으로 직진이다. 14번 국도 편도 2차로엔 앞지르기하는 차도 없고 경적 울리는 차도 없다. 내비게이션 목적지는 ‘삼강서원’이다. 진영 본산교차로에서 한림로로 진입한다. 편도 1차로. 양쪽에 가로수들이 대열을 이루고 있다. 나목의 계절. 시각이 닿는 공간은 텅 비어 조금은 비현실적이다. 오래지 않아 저 공간을 봄이 채울 것이다. 텅 빈 계절을 관통하는 동안 내 안에 채워둔 쓸모없는 것들이 비워지기를 기대한다.

    국도기계를 지나 구불구불한 길은 벚나무 마른가지들이 계속 에스코트한다. 논 쪽으로 가지를 뻗은 몇몇 그루는 가지가 온전하지 않다. 농협농산물 집하장 삼거리에서 좌회전이다. 또다시 편도 1차로 양쪽으로는 벚나무들 지천이다. 대를 이어 살아온 오래된 주택들 사이로 파고든 산업단지가 배타적 경계를 이루며 묘한 긴장감을 준다. 삼거리 ‘가동마을’ 표지석엔 세월의 더께가 앉았다.

    한림술뫼파크골프장 입구 표지판을 지나 거의 막다른 길에서 좌회전해 모정교를 지난다. 성곽처럼 보이는 한림배수문을 돌아서자 우측에 ‘오토캠핑장’ 입구가 보이고 이어 ‘레일파크 주차장 입구’ 표지판이 보이는 곳에 소나무 세 그루가 마치 문지기처럼 서서 나그네에게 손짓한다.

    레일파크 주차장 입구의 소나무 세 그루
    레일파크 주차장 입구의 소나무 세 그루

    반대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평원이다. 집도 언덕도 길도 보이지 않는다. 강줄기는 어디로 갔을까. 저 멀리 산 아래까지 마른 풀이 뒤덮인 들판이다. 햇살을 받은 마른 풀밭이 금빛으로 빛난다. 문득 떠오르는 구절. “네가 나를 길들이면 얼마나 근사할까? 네 발소리는 날 부르는 음악이 되고 바람에 흩날리는 저 금색 밀밭을 보면 황금빛 네 머리칼을 떠올리게 되겠지.” 어린 왕자와 이야기를 나누던 여우가 저 어디쯤에서 하염없이 어린 왕자를 기다릴 것만 같다. 그러나 고흐의 밀밭처럼 바람에 흔들리며 빛나는 황금 들판은 오늘 침묵이다. 자생하는 나무들이 군데군데 보인다. 조금 더 가니 언덕이 길게 뻗어 있다. 궁금증이 인다. 언덕 아래 대충 주차하고 비스듬한 경사면의 보도를 따라 올랐다.

    갑자기 눈앞이 탁 터진다. ‘술뫼생태공원’ 안내판이 궁금증을 해소한다. 알고 보니 여긴 일종의 습지인데 겨울이라 마른 들판이 되어 있다. 내가 선 길은 둑길이고 가로수가 종대로 늘어선 멋진 자전거 길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긴 자전거 길과 낙동강 줄기가 빚어낸 넓은 들의 조화가 멋지다.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면 볼 수 없는 풍경. 시속을 늦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인생의 가속페달을 밟다가 내가 놓친 것은 무엇일까. 목적을 위해서 정신없이 달리며 내 인생의 행복한 풍경을 얼마나 놓쳤을까. 자연이 만든 대작 앞에 잠시 말을 잊었다. 그리고 부랴부랴 삼각대를 꺼낸다.

    낙동강 지류와 멀어지고 있는 배 한척
    낙동강 지류와 멀어지고 있는 배 한척

    잠시 휴대폰으로 정보를 찾는다. 김해 한림면 시산리 536-1이며, 4대강 살리기 일환 때 조성됐다. 이미 전국적으로 알려진 라이딩 명소다. ‘술뫼’는 시산리(匙山里)의 순우리말로서 낙동강 제방을 쌓기 전 낙동강 언저리에 있던 산의 형상이 숟가락을 닮았다는 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안내판의 위치는 ‘왕벚나무길’이며 우측을 가리키는 화살표 방향으로 수종별 구간거리와 쉼터며 다목적광장과 주차장 거리를 명시해 두었다. 검은 아스콘으로 포장된 자전거도로는 선명한 노란색 중앙선이 멀리 소실점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소실점에서 작은 점 두 개가 점점 커지는 중이다. 주변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 동안 점의 실루엣이 드러났다.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산책 나선 노부부였다. 또다시 점점 작아지는 노부부 그리고 다시 빠르게 커지는 점 몇 개. 라이딩족들이 페달을 밟으며 반대편 소실점으로 달려간다. 자전거도로와 들판엔 햇살과 바람만 남았다.

    근처 횟집에서 본 낙동강 철교
    근처 횟집에서 본 낙동강 철교

    저 멀리 낙동강을 가로지른 흰색의 철교와 보일 듯 말 듯한 낙동강 지류. 지류의 언어를 좀 더 가까이에서 읽고 싶었다. 생각의 마침표를 찍는 사이 새로운 풍경과 마주한다. 억새 사이를 파고든 강 속의 작은 섬에는 수종을 알 수 없는 나무 한 그루가 있다. 마치 수사자 한 마리가 길게 누워 있는 듯하다. 물그림자는 이 사자의 포효를 한 음절도 놓치지 않고 받아 적고 있다. 그 받아쓰기를 반쯤 읽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하마터면 놓쳤을 그림 같은 풍경에 서둘러 앵글을 잡는다. 섬은 강의 물줄기를 가르고 저만치 배 한 척이 점점 멀어져가고 있다. 강가의 살얼음을 햇빛이 튕겨내고 있다.

    도로는 여전히 편도 1차로다. 도로 우측에 이색적인 상호가 눈에 들어왔다. ‘쉼표,점빵’이다. 점빵! 60~70년대 마을엔 구멍가게 하나 정도는 있었다. 간판이 있다면 ○○상회였고 간판 없는 구멍가게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간판 유무를 떠나 어른도 아이도 ‘점빵’이라고 불렀다. 마을 큰길에 있거나 중심지에 있어 마을의 이정표이기도 했다. 외지에서 온 사람이라면 일단 ‘점빵’에 들러 길을 묻거나 누구네 집이 어디냐고 묻는다. 돈이 없거나 근처를 지날 때 점빵에 들르면 ‘외상장부’ 한 줄로 손쉽게 살 수 있었다. 가기 싫은 외상 심부름 가던 유년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구 삼랑진교
    구 삼랑진교

    어느덧 생림면과 삼랑진을 잇기도 하고 나뉘기도 하는 ‘구 삼랑진교’ 앞이다. 도로 왼쪽에 파란색 안내판이 다리 폭보다 크게 보인다. ‘통행제한 공고’였다. ‘차량 총중량 3.3톤, 높이 3.0m. 내하력 부족으로 인한 교량 붕괴 방지’를 안내하고 있다. 그러나 중량보다는 교량 폭이 준중형차 이상은 진입이 불가해 보였다.

    진입했다가 반대편에서 차가 온다면? 내비게이션이 추천한 경로인데 진퇴양난이다. 주춤거리는데 2.5톤 트럭 한 대가 아무렇지 않게 진입하는 게 아닌가. 놓칠세라 잽싸게 뒤를 따랐다. 한 뼘의 여유도 없는 진입로. 한눈팔다간 십중팔구 승용차 양쪽이 다 긁힐 것 같았다. 곡예 운전을 능가할 정도로 손에 땀이 쥐어졌다. 간신히 진입로를 빠져나온다. 좁은 다리를 지나는데 왼쪽엔 낙동강 철교, 오른쪽엔 레일파크. 그리고 시야에 보이진 않았지만 레일파크 오른쪽으로 새로 난 삼랑진교가 있다는 걸 알았다. 김해 생림면과 밀양 삼랑진의 가교다. 교각을 빠져나오면서 차 진입 여부를 인지하는 신호가 있다는 걸 알았다.

    교량을 지나 삼랑진의 행정구역이다. 삼랑진(三浪津)은 세 개의 물길이 만난다는 뜻으로, 창녕 남지를 지나온 낙동강과 밀양을 거쳐온 밀양강, 낙동강 하굿둑이 생기기 전 바다로부터 역류해 온 바닷물이 여기서 만났다.

    좌회전 후 약간 내리막길이다. 공터에 차를 세웠다. 철골 뼈대가 반짝이는 현대식 철교가 머리 위를 지나 강을 가로지른다. 때마침 철교 위로 열차가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저 기차엔 어떤 사연의 사람들이 타고 있을까. 인생은 결국 길 위에서 진행되는 삶이다. 그 길에서 삶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괴로움도 있었고 작은 즐거움으로부터 치유를 받은 경험도 있다. 누군들 안 그럴까. 극복해야만 진정한 사람의 향기가 난다는 걸 우리는 안다.

    다리에 앵글을 맞추다 보니 문득, 영화 ‘콰이강의 다리(The Bridge on the River Kwai)가 떠오른다. 2차 세계대전이 배경이 되는 영화로서 태국 정글 속의 일본군 포로수용소에서 벌어지는 풍경. 전쟁 물자를 실어 나르기 위한 일본군 버마 철도 건설 현장에서 영국 공병장교 출신 포로는 자기의 능력 과시라는 개인적 욕망에 휘둘리며 자신의 본분을 잊는다. 일본군이 놀랄 만한 멋진 다리를 건설해서 영국군이 한 수 위라는 능력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포로 신분으로 일본군을 돕는 셈인데, 관객이 볼 땐 황당하고 웃기지만 현실에서 인간은 종종 그런 행동을 한다는 점에서 쉽게 웃을 일만은 아니다.

    교량을 지나와서 본 낙동강 철교는 왼쪽으로 완만하게 휘어 강을 가로지른다. 곡선의 아름다움이 강과 대비되면서 현대 미술품처럼 멋진 작품으로 다가든다. 가슴이 벅찼다. 직선이 반항적이라면 곡선은 수용적이다. 사람에게 편안한 느낌을 준다. 나는 직선으로 살았을까. 곡선으로 살아왔을까. 사람이라면 누구나 직선적인 면과 곡선적인 면을 함께 가지고 있다. 나의 직선적인 면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이 있다면 지금 사과하고 싶다.

    삼랑1길은 전형적인 시골길이다. 가파르지 않은 오르막길을 오른다. 수문장 같은 길옆의 고목 한 그루를 지나니 삼강서원이다. 축대 위엔 삼강사비를 비각(碑閣)이 보호하고 있다. 적막이 켜켜이 서렸다. 삼강사비 옆에는 ‘효우천지(孝友天至)’라는 기념비석이 받침석 위에 세워져 있다. 지척엔 두 평 남짓 공간에 ‘삼랑후조창유지 비석군’이 자리하고 있다. 7개 비석은 각기 다른 형태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삼강서원 길목의 고목
    삼강서원 길목의 고목

    삼강서원 대문은 자물통으로 출입을 금하고 있다. 폰카메라를 대문 틈으로 들이대고 한 컷. 돌아서니 낙동강을 지나는 세 개의 다리가 눈에 든다. 그 너머에 내가 사는 도시가 있다. 거기서 사람들은 지나간 어제와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걱정한다. 여행을 떠나는 것은 걱정으로부터 떠나는 것이다. 그리고 여행은 눈에 보이는 것의 이면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인생의 이면을 보는 성찰의 시각을 갖게 될 것이다. 낙동강 철교 위로 또 하나의 열차가 지나간다. 반차의 여운과 함께.

    # 삼강서원(三江書院)

    삼강서원
    삼강서원

    밀양시 삼랑진읍 삼랑1길 32-9에 소재. 낙동강 인근 민씨 오우정(五友亭) 안에 있는 서원으로 연산군과 중종 때 학자인 민구령과 아우 네 명의 우애가 담긴 곳이다. 1702년(숙종 28년) 다시 서원을 짓고, 1775년(영조 51년)에는 지금의 삼강사비(三江祠碑)를 세워 형제들의 효행과 우애를 전하고 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06호로 지정됐다.

    # 삼랑후조창(三浪後漕倉)유지 비석군

    삼랑후조창(三浪後漕倉)유지 비석군
    삼랑후조창(三浪後漕倉)유지 비석군

    밀양시 삼랑진읍 삼랑리 612에 소재. 조선시대에 삼랑진엔 세금으로 징수한 곡물이나 특산물 등을 보관하고 운송하던 후조창이 있었다. 이곳 주민을 잘 보살피고 뛰어난 공적을 세운 역대 수령과 관찰사 7명을 기리기 위해 주민과 선주 등이 세운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로서,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93호로 지정됐다.

    도희주(동화작가)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