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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8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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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ON- 이달균의 경남 영화 촬영지 돋보기] (3) ‘아름다운 시절’ 의령 한우산

한우산 자락 굽이굽이… 아픈 역사가 굽이치다

  • 기사입력 : 2024-02-22 21:4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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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전쟁 화마 현실이 된 농촌마을 이야기
    12살 소년 시선으로 본 무너져 가는 시대상
    천혜의 조건 갖춘 한우산서 리얼하게 묘사
    한 가족이 고향 등지고 굽은 산길 내려가는
    마지막 장면 찍은 길 한곳엔 낡은 표지판이



    여러분은 혹시 1998년 개봉한 영화 ‘아름다운 시절’이란 영화를 기억하시나요? 의령군 한우산에서 마지막 장면을 찍은 영화이기에 여기에 소개해 본다. 전북 임실군 덕치면 구담마을을 비롯한 50여 곳에서 촬영하였는데, 내게 있어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바로 이곳 한우산이다.

    오늘 길동무는 의령에서 활동하는 시인 윤재환이다. 촬영 당시(1997년 10월) 그는 의령군청 문화공보실에 근무하는 공무원으로서 현장 답사 등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엔딩 장면 촬영 당일, 이른 아침에 찍기로 했으나 전날 50명이 넘는 연기자와 스태프들의 숙소가 마땅치 않아 부득이 저녁 어둑살이 질 때 찍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새벽임을 알리기 위해 우마차에 이삿짐을 꾸릴 때, 닭 울음소리를 효과음으로 배치한 것이다. 한우산 중턱의 현장엔 영화 관련 낡은 안내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영화 ‘아름다운 시절’ 마지막 장면의 배경인 의령 한우산 전경./손묵광 사진작가/
    영화 ‘아름다운 시절’ 마지막 장면의 배경인 의령 한우산 전경./손묵광 사진작가/
    ‘아름다운 시절’영화 촬영지 안내표지판.
    ‘아름다운 시절’영화 촬영지 안내표지판.

    ◇전쟁, 그 굴종과 가식의 역사

    1998년 개봉한 영화 ‘아름다운 시절’은 1996년 11월부터 1년여 동안 전북 임실군 덕치면 구담마을을 비롯한 50여 곳에서 촬영되었다. 구담마을은 섬진강 굽이도는 구간 중 가장 아름답기로 유명하고, 이른 봄 매화와 구릉이 어우러진 풍경은 여행자의 발길 머물게 한다. 하지만 누군가 내게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한 장소를 꼽으라면 엔딩 장면을 찍은 경남 의령군 한우산(863m) 자락이라 말하고 싶다.

    화면은 정지된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4분 동안 구불구불 산길을 천천히 내려가는 우마차와 최씨(안성기), 여주댁(송옥숙)을 담아낸다. 구성지게 울려 퍼지는 한충은의 대금소리에 힘입어 여운은 긴 그림자를 남긴다. 영화 역사상 가장 대작이라고 불리는 데이비드 린 감독의 1962년 작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하리스 부족장이 등장하는 유명한 롱테이크 장면이 2분 15초인데, 그 두 배의 시간을 한곳에서 찍었으니 이광모 감독의 뚝심도 알만하다. 카메라를 고정시킨 채 사람의 움직임에 따라 원근법으로 그려내는 이 장면은 예술성 짙은 다큐멘터리 혹은 동양화 병풍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고난과 절망의 시대에도/ 늘 희망의 불씨를 간직하고 사셨던/ 할아버님과 아버님께 이 영화를 바칩니다.”라는 자막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느슨하고 유장한 흐름으로 진행되지만 쉽게 자리를 뜰 수 없게 만드는 긴장감이 있다.

    이 영화는 한국전쟁이란 화마가 현실이 된 한 농촌 마을의 이야기다. 그 피해갈 수 없는 역사로 인해 분절된 시간의 우여곡절은 이곳을 휩쓸고 있다. 어쩔 것인가, 그래도 살아야 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비루함일망정 목숨보다 우선한다고 누가 말할 것인가.

    90년대 이전, 한국전쟁 소재 영화들은 대부분 북한군과 싸우며 성과를 내는 국군 영웅물 혹은 반공 이데올로기를 대변하는 것이 많았다. 그러나 90년대에 오면 전쟁 이면에 내재한 것들이 수면 위로 드러난다. 1991년에 개봉한 안정효 원작 정지영 감독의 ‘은마(銀馬)는 오지 않는다’, 1993년 임철우 원작, 박광수 감독의 ‘그 섬에 가고 싶다’ 같은 영화가 대표적이다. 이는 이전의 영화들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었다.

    ‘아름다운 시절’은 그런 맥락에서 이어지는 영화다. 재미보다는 리얼리티가 강조된, 정면에서 다루기엔 손이 아픈 이야기다. 시종일관 파스텔 조로 그려가는 화면은 인내를 요구한다.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사건과 이미지들은 서로 긴밀하게 조응하고, 등장인물의 밀도 또한 높다.

    ‘아름다운 시절’ 포스터와 스틸
    ‘아름다운 시절’ 포스터와 스틸

    우리나라에서 작가주의 영화가 성공한 예는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에 익숙해진 까닭이다. 장면을 잘게 쪼개지 않고 길게 보여주는 까닭으로 바쁜 현대인의 시각에선 불친절해 보인다. 하지만 감독은 마지막까지 타협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자신의 방식대로 화면을 구성해 간다. 조미료를 쓰지 않고 원재료의 순수함으로 승부하는 조리사처럼.

    낭만적이지도, 추억해야 할 그 무엇도 없는 나날, 하지만 세상을 모르고 뛰어노는 아이들은 어느 시대, 어느 곳에도 있다. 미군들이 버리고 간 콘돔이 아이들에겐 더없이 재미있는 물풍선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넉넉지는 않지만 물려받은 밭뙈기를 일구는 농투성이 가족에게 불현듯 불어닥친 전쟁은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켰을까?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희고 검은 얼굴의 미군들과 간간이 들려오는 포성, 자욱한 먼지를 날리며 달려가는 지프차, 군용트럭 등등 어느 날 문득, 가혹한 신이 던져준 낯선 이 환경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 영화는 후대를 사는 우리에게 그런 질문을 던져준다.


    ◇엔딩 장면의 배경이 된 한우산

    서리인 듯 잔설인 듯 희끗희끗한 길 따라 한우산 찾아간다. 길동무는 의령에서 활동하는 시인 윤재환이다. 촬영 당시(1997년 10월) 그는 의령군청 문화공보실에 근무하는 공무원으로서 현장 답사 등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윤 시인의 별호는 ‘의령 백과사전’이다. 홍의장군 곽재우를 비롯한 의병들을 기념하는 ‘의병박물관’을 지을 때도 중요한 역할을 했으니 이광모 감독이 조력자로 그를 선택한 이유는 충분해 보인다.

    그의 말에 따르면 엔딩 장면 촬영 당일, 이른 아침에 찍기로 했으나 전날 50명이 넘는 연기자와 스태프들의 숙소가 마땅치 않아 부득이 저녁 어둑살이 질 때 찍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새벽임을 알리기 위해 우마차에 이삿짐을 꾸릴 때, 닭 울음소리를 효과음으로 배치한 것이다. 한우산 중턱의 현장엔 영화 관련 낡은 안내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연출자이자 영화감독인 이광모는 “한우산 계곡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을 리얼하게 묘사하기 위해 인공미가 전혀 가미 되지 않은 천혜의 조건을 잘 갖추고 있으며, 카메라 구성에도 가장 어울리는 곳”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

    지금은 상봉까지 콘크리트로 포장되어 있지만, 이 영화를 찍을 당시엔 비포장도로가 산 아래에서 능선까지 구불구불 나 있었다. 왜 한우산(寒雨山)인가? 남쪽에 있는 산이지만 계곡이 깊고 물은 차갑다. 그래서 이 계곡을 찰비계곡이라 부른다. 아마도 이곳 사람들에겐 ‘찬비’란 발음보다 ‘찰비’란 발음이 더 쉬워서였을 것이다. 그래서 산 이름도 한우산이 되었으리라. 의령의 주산인 자굴산(897m)과 능선이 잇닿아 있다. 누가 그랬는가? 삶에 있어 해방 일지를 기록하기엔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고. 다시 말해 이 산은 일상에 지친 나를 해방해주는 맞춤한 공간이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과 궁합이 맞는 산이 있다. 내게는 이 산과의 궁합이 제법 괜찮다. 차를 타고 오르기도 좋지만, 임도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만한 산책길이 없다. 자굴산을 올라와 이어진 한우산 정상에 닿기도 하고, 갑을 마을에서 임도와 능선길을 걸어 정상에 닿기도 한다. 진양기맥의 한 줄기인 이 산은 여러 빛깔을 띤다. 4월이면 벚꽃이 흐드러지고, 철쭉이 지고 나면 산딸기가 지천이며 가을이면 단풍과 정상의 억새도 탐스럽다. 해가 지면 별빛 아래 멀리 사방팔방의 먼 마을 불빛들의 반짝임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돌다 지치면 쉬어가기도 한다. 얼핏 어울리지 않는 그 부조화도 보기에 따라서는 이채롭기도 하다.


    ◇피해갈 수 없는 전쟁의 청구서

    개봉한 지 25년이 넘은 영화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마산문화원에 부탁해 다시 볼 수 있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처음 극장에서의 느낌으로 단박 넘어가는 것이 신기하다. 보지 못한 관객을 위해 조금 자세히 이야기 보따리를 펼쳐 보기로 하자.

    영화는 12세 소년 성민의 시선으로 그려진다. 이야기 전개를 위해 우선 세 단락으로 나눠보면 설명이 쉽겠다. 첫 번째는 얼마 전 북한군에게 점령당했다가 현재는 미군 관할 지역이 된 50년대의 흔한 시골 마을이다. 영화는 “빨갱이 새끼에 붙어서 사람 죽인 놈!” 하며 누군가를 조리돌림하는 장면으로 시끌벅적 시작한다. 두 번째는 동구 밖 버려진 정미소. 이미 피댓줄 끊어진 지 오래, 낡고 허물어져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다가 이제는 미군과 양공주들이 정사를 벌이는 공간이다. “뺑코 온다.” 소리치며 숨어서 이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낯선 눈빛이 전쟁통의 아이들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세 번째는 그 와중에서도 셈법을 배우고, 동요 ‘고향의 봄’ 등을 배우며 학업을 계속하는 희망의 공간인 천막 학교가 있다. 심심하면 반공 궐기대회를 여는 현장이 되기도 한다.

    이런 장면들의 공통점은 전쟁으로 인해 전통이 무너져 가는 시대상을 반영한다. 미군 장교와 사귀는 성민(이인)의 누나 영숙(명순미), 영숙의 주선으로 미군 부대에 일자리를 얻고, 라디오와 전축을 선물 받는 등 살림이 나아가는 재미에 양공주가 되어가는 영숙을 짐짓 모른 척하는 아버지 최씨(안성기). 그는 가혹한 시대를 건너가는 가장의 ‘속물적 변모’를 대변하는 주인공이다.

    아래채에 사는 창희(김정우)의 어머니 안성댁(배유정)은 의용군에 끌려간 채 소식 없는 남편을 2년째 기다리며 어린 두 자녀를 키우며 살고 있다. 그 힘겨운 살림을 보다못해 최씨는 미군의 속옷(팬티, 러닝, 셔츠 등) 세탁 일을 알선해준다. 어느 날, 널어둔 속옷을 도둑맞는 일이 생기고, 낭패를

    당한 안성댁에게 미군 병사는 그 대가로 안성댁의 몸을 요구한다. 어쩔 것인가? 이는 피해갈 수 없는 고통의 청구서이다. 그날 이후, 방앗간은 두 사람의 정사 장소가 된다.

    세상이 아무리 그래도 아이들은 언제나 천진난만한 나날을 보낸다. 하루하루 어른들은 인고의 시절을 보내지만, 아이들에겐 처음 보는 모든 것이 놀이처럼 여겨진다. 버려진 포탄이며 콘돔도 훌륭한 놀잇감이고, 지나가는 군용트럭에서 던져주는 껌이랑 초콜릿도 얼마나 새롭고 귀한 먹거리인가.

    그날도 뺑코의 짚차 소리에 성민과 창희는 방앗간에 숨어 정사 장면을 훔쳐본다. 클로즈업된 창희의 얼굴이 차츰 일그러진다. 옷고름을 푼 여인은 창희의 어머니 안성댁이었다. 밖에는 성민 아버지 최씨의 자전거가 서 있다. 결국, 빨래 세탁 일이 그렇고, 둘의 대가(代價)에 의해 이뤄진 은밀한 관계도 최씨가 엮어준 것이다. 이런 비정상의 삶이 바로 전쟁이 가져다준 폐해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때 창희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다음날, 방앗간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한다. 그 화재로 미군이 사망하고, 창희는 마을에서 사라진다. 이듬해, 근처 늪에서 미군 밧줄에 묶인 채 심하게 부패된 한 아이의 시신이 발견된다. 그 죽은 아이는 사라진 창희일까. 그날의 화재와 이 아이의 시신과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하지만 그 죽은 아이가 창희라고 단정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최씨 또한 그런 삶을 살면서도 아들 성민에겐 충실을 강조하며 회초리를 든다. 어린 성민도 이미 어른들의 이중성을 알아버렸다. 누구의 탓인가? 그냥 시대와 불화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미뤄야 할까. 무엇으로도 위로받을 수 없다. 그들은 누더기 같은 한 생을 기워내기 위해 때로는 비루한 현실마저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전쟁의 상흔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것이다.

    앞서 말했지만, 이 영화는 일정한 거리 유지를 위해 원근법의 시각으로 우리 아픈 역사를 멀찍이서 보여준다. 어쩌면 고통과 절망의 시절을 그런 방식으로 배려한 것은 아닐까. 다음 이야기는 짐작하는 대로 이어진다. 휴전이 되자, 죽은 줄 알았던 창희 아버지(고동업)는 살아서 돌아온다. 성민 누나는 스미스 중위의 아이를 임신한 채 버림받고, 최씨는 미군 물품을 빼돌린 죄로 온몸에 붉은 페인트로 주홍글씨가 덧칠된다. 결국, 성민 가족은 정든 고향마을을 떠난다. 간단한 세간살이와 성민과 임신한 누나를 실은 우마차가 앞서고 흰옷을 입은 어머니와 검은 두루마기를 입은 아버지가 구불구불 산길을 아득히 걸어 내려간다. 그렇게 영화는 끝난다.


    ◇시대를 헤쳐 온 앞선 세대의 초상화

    전쟁을 겪으며 평범한 시골 가장인 최씨의 변신은 전쟁으로 인해 변해가는 인간 본성이다. 진정 고통스러운 것은, 그의 모습이 당시를 헤쳐 온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의 초상화이기에 더 그렇다. 베이비붐 세대가 겪지 못한, 통절한 시절을 지나온 세대의 굴종과 가식이 드러나는 부분에선 맥없이 아프기도 하다. 그 얼룩으로 점철된 풍경을 왜 감독은 아름답다고 했을까? 기억 속에 저장된 소화되지 않은 알갱이들도 때로는 추억이 될까? 그래서 역설적으로 아름답다고 했을까?

    역사는 가혹하다. 한국전쟁은 미소 냉전 사이에서 먼저 승기를 잡아 지구촌의 패권을 쥐기 위한 대리전이었다. 이 전쟁은 세계사를 다시 쓸 정도로 중요한 사건이다. 한 편의 영화를 통해 지금 우리에게 한국전쟁이란 과연 어떤 의미인가를 생각게 한다. 아직 끝나지 않은, 휴전상태인데도 우리는 늘 이데올로기와 편견의 커튼을 치고 다가간다. 그러나 그 시절을 살다 간 앞선 세대들의 절망은 늘 뒷전이었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지만, 그래도 공감과 반성이 필요한 시대, 바쁜 일상을 사는 당신에게 이 영화를 추천해 본다.

    멀찍이서 풍경처럼 사람을 배치한 탓으로 주연을 제외한 배우들은 얼굴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숨은 그림처럼 등장하는 조연배우들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냇가에서 미군 군복을 삶아 빠는 단역의 삼촌은 누구일까. 목소리가 낯익다. 유오성이다. 학교 여선생님도 제법 긴 대사를 하지만 집중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유심히 보니 명품 조연 오지혜다. 미군에게 여자를 알선해주는 남자 포주 역할의 명계남 역시 그렇다.

    시나리오는 1995년 6월 제7회 ‘하틀리-메릴 시나리오 콘테스트’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면서부터 국내에 알려진다. 1988년부터 6년의 집필 끝에 완성되었는데, 당시 심사위원들로부터 ‘탁월한 구성으로 우리가 접하기 어려운 미지의 세계를 비춰주는 창과 같은 작품’이란 격찬을 받았다. 그 후로도 무려 14회의 수정 작업을 했다고 하니 이광모 감독은 완벽주의자에 가깝다.

    관객은 20만 명 정도에 그쳐 흥행에는 실패했으나 수상 경력은 화려하다. 그만큼 작품성은 인정받았다는 증거다. 1998년 제11회 도쿄 국제영화제에서 금상을 수상한다. 금상은 데뷔작을 포함해 3편 이내 작품을 발표한 감독에게 주어지는 상으로 일종의 신인상과 같다. 대종상 최우수작품상·감독상 등 6개 부문, 백상예술대상 신인감독상, 춘사영화제 최우수작품상·기획상 등 3개 부문,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최우수작품상·감독상 등 4개 부문, 하와이 국제영화제 최우수작품상, 데살로니키 국제영화제 예술공헌상 등 국내외 각종 영화제를 휩쓸었다.

    이달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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