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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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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건축물 기행] 건축공간과 하나되는 마당

사랑마당·안마당·뒷마당… 채움과 비움 어우러진 ‘한마당’

  • 기사입력 : 2024-02-29 08: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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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양 일두고택 등 전통 건축 속 ‘마당’
    노동·놀이·예식·접객·통풍 등 역할
    실내공간서 담을 수 없는 가치 빛나

    현대 건축물에도 입체적으로 결합
    캠핑장·수영장 등 다목적 공간으로

    건축설계를 업으로 하는 건축사인 나는 우리 전통건축의 마당 구성 방식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면 전통마을과 고택, 사찰, 향교, 서원 등을 답사하는 것을 즐긴다.

    함양군 수동면 개평마을에 있는 일두고택을 찾았다. 일두고택 안채의 툇마루에 걸터앉아 빈 안마당을 멍하니 바라본다. 따스한 햇살이 마당과 기와를 비추어 명암을 만든다. 기와지붕의 용마루와 맞닿은 하늘에는 구름이 유유히 흘러가며 시간의 흐름을 느슨하게 만들어 준다. 가끔씩 바람이 불어와 계절의 향기를 옮겨오기도 한다.

    이처럼 마당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은 저절로 평안을 찾는다. 300년이 넘은 고택이 이런 편안함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비록 우리가 내부와 외부의 이분법적인 공간을 지닌 건축물에 익숙해져 있지만 마당과 소통하는 공간적 감성이 옛날부터 우리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늘에서 본 함양 남계서원./유재만 건축사/
    하늘에서 본 함양 남계서원./유재만 건축사/

    국어사전에 마당은 ‘집의 앞뒤에 닦아 놓은 단단하고 평평한 땅’으로 풀이한다. 마당은 집(건축물)이 있어야 존재하며 바닥은 평평하고 단단해야 한다. 모든 건축물은 크든 작든 마당을 가지는데 외부공간의 크기나 위치, 쓰임에 따라 마당, 정원, 중정, 뜰, 파티오, 광장 등 부르는 이름도 다양하다.

    하지만 우리 전통 건축에서의 마당의 개념은 다른 단어들과 구별된다. 우리 전통건축인 한옥은 ‘ㅡ’ ‘ㄱ’ ‘ㄷ’ ‘ㅁ’자 모양의 평면을 가진 단위 건축물과 담장이 마당을 사이에 두고 모임으로써 전체 건축물을 이룬다. 주택에서는 쓰임과 위치에 따라 사랑마당, 행랑마당, 안마당, 뒷마당 등으로 구분한다. 마당은 건물에 진입하기 전에 반드시 지나는 외부공간임과 동시에 실내에서 담을 수 없는 다양한 활동을 담아내는 공간이기도 하다. 궁궐, 사찰, 향교, 서원 건축에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주택에서 마당은 농작물의 건조·타작하는 노동의 공간, 결혼식과 장례식 등 관혼상제를 치르는 예식 및 접객공간, 놀이공간, 목조건축물의 유지관리에 필요한 채광과 통풍이 이루어지도록 해주는 친환경 설비공간 역할을 한다. 건축물의 방과 마당 사이에 대청마루, 툇마루, 쪽마루 등 중간영역을 만들어 내부공간과 마당과의 유기적인 공간감을 만들어 낸다. 건축물을 출입하기 전 외부공간으로서 다양한 쓸모를 담아내는 다용도 공간이자 실내공간과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는 공간적 특성이 우리 전통 건축 속 ‘마당’의 핵심이라 하겠다.

    함양 일두고택 사랑채 누마루서 바라본 사랑마당.
    함양 일두고택 사랑채 누마루서 바라본 사랑마당.

    일두고택은 조선 전기 유학자 정여창 선생의 고택이다. 대부분의 건축물이 16~17세기에 건축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의 구분이 명확하고 사랑마당, 안마당 등 각 채마다 마당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어 우리 한옥의 마당을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사랑마당은 꽤 넓다. 관혼상제의 예식이나 손님 접객의 장소로 활용하였을 공간인데 그 넓이로 보아 일두선생 가문의 대단한 위상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널찍한 사랑마당 한편에는 바위와 소나무로 조경을 만들고 툇마루와 누마루를 면하게 하여 사랑방에서 내다보는 정취를 더해준다. 사랑채는 기단부의 축담을 마당보다 1m 이상 높였다. 툇마루에 걸터앉아 사랑마당을 바라보면 시야가 담장을 넘어 먼 산까지 이르게 된다.

    함양 일두고택 안채 대청마루서 바라본 안마당.
    함양 일두고택 안채 대청마루서 바라본 안마당.

    안마당은 사랑마당의 중문을 거쳐 중간마당을 지나서야 들어설 수 있다. 안마당은 사랑채와 안채를 이어주는 외부공간이다. 우물이 있어 가사공간을 지원해 주는 역할도 한다. 뒷마당에는 담장을 둘러쳐서 안채만의 독립된 외부공간을 가지게 하며 부엌 뒤쪽 장독대는 식료품 창고로 조리공간에 식재료를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일두고택이 있는 개평마을에서 남동쪽으로 3㎞ 옮겨가면 일두 선생을 주향으로 하는 남계서원을 만날 수 있다. 남계서원은 조선시대에 세 번째로 창건된 서원이며 2019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9개의 서원 중 하나이다. 건축물의 규모가 작은 편이지만 낮은 쪽에 학문의 공간을 배치하고 높은 쪽에 사당을 배치하는 서원 배치의 시원으로 알려져 있다.

    서원 건축의 배치를 중심마당 위주로 살펴보면 출입문 역할을 하는 누각, 학생들의 기숙사에 해당하는 동재와 서재, 강학공간인 강당으로 이루어진다. 남계서원의 배치는 ‘ㅡ’자 형태의 누각(풍영루)과 동재와 서재, 강당(명성당)이 마당 공간을 감싸 안은 모양을 가진다. 마당은 각 건축물의 입구로 안내하는 역할뿐 아니라 전체를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해내면서 배움의 시간 중간중간 휴식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주택에서와 마찬가지로 대청마루, 툇마루, 누각마루가 마당과 마주하게 하여 유기적 연결이 이루어지게 된다. 풍영루에 오르면 남서측 너른 들판 너머로 소백산맥의 능선들이 보는 눈맛을 시원하게 만들어 주며, 서원 내부로 눈을 돌리면 마당을 중심으로 둘러 감싸고 있는 건축물의 아담한 배치가 아름답다.

    각 건축물의 크기는 작다. 아니 규모를 보고 실망하는 방문객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주요 행사 때 명성당의 대청마루와 풍영루 누마루를 연계하여 마당을 활용한다면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도 좁지 않을 넉넉한 공간이 된다. 이러한 공간 활용의 융통성은 마당의 최고 매력이다.

    오늘날 건축사들은 마당 건축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왔으며 다양한 시도가 있어왔다. 평소에 나름대로 고민한 마당에 대한 생각들을 풀어내어 설계한 주택과 학교 건축을 소개하려 한다.

    하늘에서 본 ‘세덩이 안마당집’./유재만 건축사/
    하늘에서 본 ‘세덩이 안마당집’./유재만 건축사/

    ‘세덩이 안마당집’의 실 구성은 안방과 자녀방 2개, 독립된 사랑방(서재)과 공용공간(거실, 주방, 식당 등)이다. 도로에서 대지로 접근하여 개인공간에 이르기까지의 공간 구성을 전통공간에서의 마당과 방과의 관계에 따라 구성하고자 하였다. 1층에는 거실, 식당, 주방이 하나의 연결된 구성으로 묶음 배치하고 마당을 건너 서재를 독립공간으로 구성한다. 방 3개는 2층에 배치한다.

    건축공간의 중심이 된 마당./유재만 건축사/
    건축공간의 중심이 된 마당./유재만 건축사/

    집의 이름이 ‘세덩이 안마당집’인데, 세 개의 덩어리(매스)를 외부공간인 안마당과 필로티 주차장을 형성하도록 하여 입체적으로 결합하여 공간을 구성한다. 출입은 이들 외부공간(필로티 주차장, 마당)을 거쳐 건축물로 진입한다. 마당은 진입공간이자 본채와 사랑채(서재)를 연결하는 공간이며, 여름에는 수영장과 캠핑장, 겨울철에는 모닥불을 피우면 불멍장이 되는 그야말로 다목적 공간이다.

    거실은 대청마루와 같은 역할을 하며 마당 쪽으로는 처마 아래 쪽마루와 같은 공간을 만들었다.

    이처럼 마당이 건축공간의 중심이 되어 하늘과 햇빛을 담아내고 하루 중의 빛 변화와 1년 중의 계절 변화를 고스란히 담아내어 단독주택의 일상을 다채롭게 보낼 수 있다. 외관은 옛 살림집들처럼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를 꾸밈없이 소박하게 드러낸다.

    용남중학교 증축 후 모습./사진= 용남중학교 제공/
    용남중학교 증축 후 모습./사진= 용남중학교 제공/

    사천시 용현면에 소재하는 용남중고등학교는 학교공간혁신의 모범적 사례로 전국적으로 유명해졌지만 그 시작은 2016년에 건축한 작은 특별교실 증축에서부터다. 일자형 교사동 중앙현관 앞에 학교가 개교할 때부터 있었던 교문비와 조경공간을 과감하게 철거하고 그 자리에 특별교실 3개동을 증축하였다.

    증축 건축물들은 본관 교사동과 비스듬히 마주보게 배치하여 마당을 가지게 하였다. 작은 크기의 특별교실이지만 마당으로 확장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어 결코 작지 않은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조경공간으로 꾸며져 바라만 보던 공간이 마당과 건축물로 적절하게 대체되면서 활발한 교육활동공간과 휴게공간으로 변모한 것이다.

    채워져만 있거나 비워져만 있을 때는 잘 활용되지 못했던 장소가 채움(건축물)과 비움(마당)의 적절한 조화로 활기있는 공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특히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 특별활동시간에 학생들의 넘치는 에너지와 끼를 발산하는 장소가 된다.

    이후 용남중고등학교는 특별실 증축에서 얻은 교훈으로 학교공간 혁신에 더욱 박차를 가해 왔고 현재 용남고등학교 개축과 미래교육관 증축 등 혁신적인 교육공간을 창출해 나가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에게 ‘우리 마당’의 유전자가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그 유전자란 마당을 풍요롭게 누릴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우리 주변의 건축물 앞에 그냥 비어있는 외부공간, 건물과 건물 사이, 방과 방 사이의 외부공간을 관찰해 보자. 그냥 외부공간을 ‘마당’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면 우리 주변의 공간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그 힌트가 우리 전통건축에 있다. 우리가 옛 건축을 찾아 마당을 관찰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유재만 건축사
    유재만 건축사

    (도원A&C건축사사무소 유재만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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