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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8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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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벚꽃 이야기

  • 기사입력 : 2003-04-0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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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꽃축제의 시작이 섬진강 매화축제이긴 하지만 쌀쌀한 겨울바람이 묻어
    나오는 탓으로 진정한 봄축제는 벚꽃축제로 대변되는 진해군항제라 할 수
    있다.

    22만그루의 세계 최대 벚꽃도시 진해. 진해의 벚꽃축제는 일제시대로 거
    슬러 올라간다. 1926년말 철도 진해선 개통후 벚꽃놀이 임시열차가 운행될
    정도로 관광객이 많았고, 1930년 3월12일자 「매일신보」에 「조선 명승
    지」 구독자 투표에서 5위를 차지할 정도였다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초기 진해의 벚꽃은 군항과 시가지의 경관이나 토지 보전
    을 위한 식수계획에 의해 이뤄졌던 것으로 나타난다. 1910년 3월 진해만방
    어부대 사령관의 문서에 보면 삼목 5만그루, 적흑송 5만그루 등 7종 23만3
    천그루를 심으면서 이때 벚나무 2만그루도 함께 심은 것으로 보고돼 있다.

    이후 벚꽃이 일본해군 휘장이기도 해 일제강점기동안 벚나무심기가 활발
    해 1913년 5만그루, 1916년 3만그루 등 모두 15만그루의 묘목을 심었던 것
    으로 나타났다.(산림청 임업연구소 자료) 특히 해군부지내 「벚꽃의 마장」
    과 웅동수원지의 대규모 벚꽃단지가 유명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광복후 일제 잔재 청산 차원에서 상당수 벚나무가 베어졌다. 버드
    나무나 포플러도 일본인에 의해 심어졌지만 벚꽃만 수난을 당했다고 한다.
    일본인들이 신사를 비롯, 관청, 병영, 학교, 공원 등에 벚꽃을 심고 지나치
    게 일본 무사도정신을 선전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1960년대 들어 관광도시로 발전시키기 위한 일환으로 진해시가 우
    리나라 자생종인 왕벚나무를 다시 심기 시작했다. 1962년 식물학자인 박만
    규·부종휴씨가 「진해에 가장 많이 있는 왕벚나무의 원산지는 제주도」라
    는 학설을 제기하면서 기존 인식을 완전히 바꿨다. 이 학설은 이미 1932년
    일본인 고이즈미 모토이치(小泉源一) 박사에 의해 제기됐으나 일본 국수주
    의자들에 의해 일반화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제1회 식수는 시와 군부대가 2천그루를 구입해 벚꽃장, 해군통제부(현 작
    전사령부) 내, 장복산, 시가지 등에 심었다. 또 진해출신 재일동포들의 헌
    수운동으로 66년부터 81년까지 5만9천300그루가 보내졌고 70년대부터는 진
    해여고동창회에 의해 일본인들의 헌수운동도 이어졌다.

    본격적인 벚나무 조성은 1976년 4월 『진해를 세계 제1의 벚꽃도시로 키
    우라』는 故 박정희 前대통령의 지시로 민·관·군이 함께 하는 대대적인
    식수운동이 전개돼 현재 가로수 1만1천여그루, 공원과 산지 15만여그루, 벚
    나무단지 4만여그루 등 모두 22만여그루에 이르게 됐다.

    군항제 행사를 주관하는 이충무공호국정신선양회(이사장 김종문) 관계자
    는 『일부에서는 벚꽃을 일본의 국화라고 해 마치 일제 첨병으로 침입해
    온 것처럼 반대하는 경향이 있는데 벚나무는 원래 우리나라 토양에서 자생
    하고 있던 나무이고 현재 진해의 벚나무 대부분은 광복이후 심어진 것』이
    라고 밝혔다.
    정오복기자 obokj@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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