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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인과 떠나는 테마기행] "여기는 고구려! 누가 넘보느냐"

  • 기사입력 : 2004-10-1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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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행-마산문화원 고구려문화유산 답사단



        “고구려 문화유산을 중국에서 직접 보니 고구려사의 올바른 이해와 한민족 역사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교수. 자영업. 주부. 역사학자 등 23명으로 구성된 마산문화원 고구려 문화유산 답사단은 지난 8~11일 3박4일간 심양~환인~집안을 둘러보며 “이번 답사는 우리 민족문화의 자긍심을 느끼게 해준 의미있는 일정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8일 중국 심양 하늘. 만주벌판이 내려다 보인다. 끝없는 벌판과 산맥 사이로 대륙을 호령하던 고구려인의 말발굽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우리가 오랫동안 배워왔던 고구려 역사의 현장인 만주벌판에서 답사를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 가슴이 뭉클하고 찡하다.
        심양의 고궁 등을 둘러보고 고구려 최초의 도읍인 졸본성이 있는 환인으로 향했다. 4시간여를 달리면서 버스 안에서는 강의가 이어졌다.

        마산시립박물관 송성안 학예연구사는 “중국 학자들은 미확인 가설을 통해 고구려사를 중국 소수민족정권으로 규정하고 있다”면서 “유물의 예술적 가치보다. 고구려는 고조선을 계승한 우리의 역사라는 역사적·문화적 관점을 가지고 답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멀리 환인시의 불빛이 차츰 가깝게 다가오면서 하루 일정이 마무리된다.

        9일 오전 고구려 유적 첫 답사지인 졸본성(현지명 오녀산성). 성 앞으로 강이 흘러가고 있다. BC 37년 주몽이 부여에서 비류수를 건너 졸본에 도읍을 정했다고 하던 바로 그 강이다. 중국에서는 ‘훈강’이라고 부른다.
        성으로 올라가는 길은 제법 가파르다. 밑에서 쳐다보면 어떻게 저런 곳에서 살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암괴석 바위산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그러나 산정에 오르면 그 규모에 놀랄 수밖에 없다. 약 10만평 정도 되는 평탄하고 널찍한 곳에 망대. 저수지. 큰 건물터 등 많은 유적이 있다. 특히 왕궁터로 추정되는 곳에는 주춧돌 7개가 그대로 남아 있다.

        “이곳 거주지 온돌 등의 형태는 중국과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송성안씨는 졸본성 남문 성벽을 만져보며 “자연석을 그대로 활용하여 쌓은 고구려 고유의 축조형태로 중국의 문화와는 확연히 다른 우리민족의 역사다”고 말했다.
        지난 7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이곳은 경축 플래카드들이 곳곳에 걸려 문화유산에 대한 열기를 실감할 수 있었지만 졸본성에서 발굴한 유적을 전시하고 있는 ‘오녀산 산성사적 진열관’은 중국의 역사왜곡을 그대로 담고 있다.

        “고구려가 한나라의 지방정권에서 출발했다고 표기한 글을 현장에서 확인하니 말로만 듣던 동북공정이 실감납니다.”
        마산문화원 임영주 원장은 “이번 답사의 핵심이 여기에 있는 것 같다”면서 이 사실을 많이 알려 우리 답사팀이 고구려 역사를 바로 세우는 조그만 주춧돌이 되어야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고구려는 졸본성 40년간의 수도를 마감하고. 유리왕 22년(AD 3년) 국내성으로 수도를 옮긴다. 2천년전 그 역사의 흐름을 따라 고구려인의 기상과 행동을 느끼면서 답사단도 한걸음 한걸음 집안시 국내성으로 향했다.
        “위급상황 때 대피하던 곳으로 알려진 환도산성은 그나마 성의 형태를 잘 간직하고 있지만 아파트 촌 옆에 관광객을 위해 살려놓은 채 천덕꾸러기가 되어있는 국내성을 보니 마음이 착잡합니다.”

        마산문화원 노인대학 학장 성태우씨는 원래 총 길이가 2천686m였는데 북쪽 성벽만 일부 남고 모두 사라져 버린 국내성 성벽을 바라보며 “장수왕이 평양으로 천도할 때까지 425년이란 긴 세월동안의 흔적이 훼손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집안은 고구려의 유적박물관이라고 할 정도로 곳곳에서 고구려인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그 중 광개토대왕비는 답사단의 가슴을 가장 설레게 했다. 공안으로 보이는 감시자들과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를 뒤로 하고 대왕비 앞에 서서 한동안 그 위용에 넋을 잃었다.

        6m가 넘는 대형 석비에 새겨진 1천775자의 글자는 우리들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던져주는 듯했다.
        ‘마산문화원 고구려문화유적 답사’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꺼내 사진촬영하려고 하자 아예 못하게 막는다. 또 유적지를 갈 때마다 꼭 현지 관리인이 끝까지 동행. 감시를 하는 등 중국의 민감한 대응을 실감할 수 있었다.

        마산문화원 정성자 부원장은 “대왕비에 지붕을 세우고 유리로 전면을 막아 자세히 들여다 봐야 겨우 글자 윤곽을 판별할 수 있는 것이 아쉽다”면서 광개토대왕릉으로 향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자 능 상층부에 관을 놓았던 자리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멀리 산기슭 쪽으로 큰 돌무덤이 보인다. 1천500년의 세월을 비켜온 것처럼 완벽한 형태를 드러내고 있는 거대한 장군총이다.
        창원대학교 박수성 교수는 “1천여 개의 돌을 장방형으로 다듬어 쌓아올리고 가장자리마다 도드라지는 턱을 만들어 돌끼리 서로 밀려나지 않게 한 것을 보면 우리선조들의 지혜가 느껴진다”면서 돌을 만져본다.

        심양으로 돌아오는 길. 고구려 유적을 답사하고 중국의 역사왜곡 현장을 피부로 직접 느낀 때문인지 답사단의 표정은 아주 진지하다. 일행들은 저마다 “이번 답사를 토대로 우리 역사에 대해 더욱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입을 모았다.
         임 원장은 “우리 민족 역사의 정체성을 찾는 이런 답사가 민간단체뿐만 아니라 자치단체 등 사회 각계로 확산돼야 한다”면서 “이번 답사 결과를 보고문 형태로 만들어 시민들에게 알릴 계획이다”고 말했다. 이종훈기자 leejh@knnews.co.kr


        ▲고구려 문화유산 외 어떤 것을 볼 수 있나
        먼저 심양에서 청태조 누루하치와 그의 아들 청태종이 지은 황궁과 청태종의 능을 볼 수 있다. 환인~집안~통화 지역에는 현재 단풍이 절정에 달해 만산홍엽으로 수놓은 환상적인 경치를 구경할 수 있다. 특히 집안~통화 약 20여㎞에 이르는 노령고개의 단풍이 백미다.
        답사 일정에는 북한과 관련된 곳도 있다. 압록강에서 배를 타고 가면서 북한지역을 볼 수 있다. 집안과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북한의 도시는 만포시이다. 양시를 연결하는 교통편은 하루에 한번씩 있는 기차. 그 기차가 통과하는 압록강철교를 걸어보면서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거리지만 더 이상 갈 수 없는 분단의 아픔을 느껴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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