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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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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추억을 찾아 (2) 고성 배둔장

  • 기사입력 : 2005-03-1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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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 없으면 장이 아니제"

     

        50m 남짓 늘어선 소박한 좌판들 장꾼 손님 대부분 60~80대 노인

        나물 보따리 이야기 보따리 이고 지고…  사람냄새 살아있는 장터로 모여드는데…


        고성 배둔장은 참 작다.
        동고성농협부터 당항포 국민관광지 들어가는 입구까지 50m 남짓하다.
        장의 품새도 인근 어판장에서 새벽에 떼온 생선류와. 직접 키운 나물 곡식 등을 조금 가져 와 파는 아낙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그들의 소박한 좌판은 어느새 정겨움이 되어 다가온다.
        어디를 가더라도 ‘건강한 향기’가 물씬 피어오르기 때문이다.

        약초전을 펼친 아주머니 앞에 앉았다.
        이것 저것 여쭤보자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약초에 대해 설명한다.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니 장사를 참 잘하는 것 같았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캐온 쑥 같은 것을 2천원에 사서 천원 얹어 팔고. 약초는 약초대로 팔고….
        아주머니의 주머니는 천원짜리 지폐로 비좁아지기 시작한다.

        호박. 콩. 나물류. 파 등을 놓고 양지바른 곳에 자리한 할머니 장꾼들은 장사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호박을 잡고 이리 저리 살펴봐도 별 말을 않는다. 결국 아주머니가 알아서 사 갔지만….
        “집에 혼자 있기 싫어서 농사 지은 것 몇가지 들고 나왔지.”
        5일장은 이 할머니들이 소일거리라도 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장사꾼이나 물건을 사러 나온 사람들도 대부분 60~80대 노인들이다.
        그나마 몇몇 아낙들의 어물전은 조금 활기를 띤다.
        “이거 싱싱한 것 맞소? 다 죽어가는 것 같은데.”
        “새벽에 산 것을 그대로 가져왔는데 그런 말 마소.” 옥신각신 흥정이 붙었다.

        옆 좌판에는 젊은 남자가 판을 벌이고 손님을 모으고 있다.
        “멸치 떨이요.” 창원에서 왔다는 정태관(48)씨다. 사업에 실패하고 장에 나온지 일주일째라고 한다.
        “첫날은 부끄러워 말도 못했죠. 그러나 먹고 살려면 무슨 일이든 못하겠습니까.”
        정씨는 마산 어시장 등지에서 멸치. 명태. 갈치 등을 가져와 장을 돌며 팔러 다닌다. 고성. 산청. 함양장을 돌고 오늘 배둔장에 나왔다.

        “시골장의 인심이 아직 후하다는 것을 느꼈죠.” 처음 생선을 펼쳐놓을 때 기존 상인들과의 마찰이 있을까 걱정했지만 대부분 상인들이 자리를 조금씩 양보해주고 장사하는 법을 가르쳐주기도 했다고 한다.
        “이제 돈 100원 쓰기도 아깝습니다.” 내일은 함안 가야장으로 가봐야겠다며 열심히 떨이를 외친다.

        신발을 가지고 나온 장꾼은 손님이 없다면서 일찌감치 판을 접는다.
        회화면 배둔리 안의동 배길득(61) 이장은 옛날에는 구만. 마암. 개천쌀이 유명해 마산. 창원. 부산. 통영 등에서 쌀을 많이 사러 와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못할 정도로 붐볐다고 말한다.
        또 인근 마을 주민들이 밤. 감. 채소 등을 가져와 해산물로 바꿔 가기도 했지만 이제는 가까스로 장의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꼬시락. 숭어. 도다리. 낙지. 바지락. 아나고(붕장어) 등 해산물이 올라 오는 봄철이 되면 장이 조금 활기를 띱니다.” 특히 붕장어는 크기가 작고 고소해 외부에서 도매업자들도 많이 온다고 한다.

        오후가 되자 어물전 아낙들을 중심으로 장터는 취기가 돈다. 소주 한잔에 멸치 한마리가 전부이지만 지나가는 사람마다 한잔씩 건넨다.
        “몸도 마음도 녹초가 되었을 때 이만한 위로가 없데이. 장터에 왔으니 즐기다 가야제.”
        귀갓길. 한손에 보따리를 들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촌로들. 자식들은 모두 도시로 나가고 홀로 남은 농촌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종훈기자 leejh@knnews.co.kr

     

       <장터 사람들> 약초 노점 정일순씨 

        30년 손수 재배 '약초 아줌마'  건강한 웃음·인심 장터 활력소

        “이것은 위장에 좋고 저건 뼈에 좋지.”
        배둔장에서 약초전을 펼쳐놓고 장사를 하는 정일순(65)씨는 ‘약초 아줌마’로 통한다.
        인근 개천마을에서 직접 재배하고 캔 약초를 30여년간 배둔장에 나와 팔고 있다.
        느릅나무. 창출. 도라지. 약쑥. 칡. 오가피 등등….
        처음 보는 것. 처음 듣는 이름도 수십가지다.

        “먹고 살기 힘들어 이 일을 시작했지. 처음에는 뒷산에 가서 나물과 약초류를 캐어 장에 내다 팔았는데 약초류가 더 잘 팔리더군.”
        지금은 거의 약재상 수준으로 약초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이건 중국산 같은데.” 한 아주머니가 도라지를 들고 미심쩍은 듯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그러자 “내가 직접 키우고 캔 것인데 절대 아니다”며 강조한다. 
        이 일을 하며 5남매를 다 키웠다고 하니 생활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만하다.

        정씨는 고성장과 배둔장을 돌아 다닌다. 집에서 아침 6시30분에 나와 8시께면 장에 도착해 보통 오후 3~4시에 귀가한다. 하루 매출은 5~10만원대.
        그나마 지금은 매출이 줄었고 자녀들이 장에 나가지 못하게 하지만 계속해서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팔고 남은 물건은 어떻게 합니까?”
        차도 없을 것이고 물건을 다시 가져가기도 힘들 것 같아 걱정이 되어 묻자 “여기 놔 두고 간다 아입니꺼”라고 당연하다는 듯이 답한다.
        아주머니가 30년째 지키고 있는 그 자리 뒤의 자투리 땅이 창고인 것이다. 아직 한번도 도둑맞은 적이 없다고 하니 시골의 인심은 그래도 남아 있었다.
    고성장에도 이 곳과 똑같은 자리가 있다고 한다.

        정씨의 약초전은 계속해서 붐빈다. 사러 오는 사람도 있지만 쑥이나 칡을 팔러 오는 사람도 있다. 장에 나와 못 팔고 가는 사람들의 물건을 사주는 것이다.
        자신의 장사도 중요하지만 주변에 전을 펼치고 있는 상인들을 항상 걱정한다.
        “노력만하면 뭐든지 못할 것이 없지.”
        그러면서 주변 노점상들에게 소주 한잔씩을 돌린다.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연신 소녀같은 웃음을 거두지 않고….
        조그마한 장터 귀퉁이에서 노점을 하고 있는 한 아주머니의 건강한 미소가 나른한 오후장에 활력소가 되고 있다. 이종훈기자 leejh@knnews.co.kr

        <배둔장은>
        고성군 회화면 배둔리 한가운데 위치한 배둔장은 약 200여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당초 배둔리 배둔천 2천여평에 자리잡아 가축시장과 일반시장이 같이 형성되었는데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가게가 물에 떠내려가 장이 잘 형성되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50여년 전 마을 한가운데로 장터를 옮겨 현재까지 장이 서고 있다. 한때는 이곳 일대 앞바다에서 건져 올리는 해산물의 인기가 높아 보부상들이 장을 보기 위해 고성읍장을 거쳐 배둔장을 본 후 부산 충무 등지로 배를 이용해 떠났다고 한다.
        당항포에 염전이 있어 소금이 대량 생산돼 배둔장에서 직거래되기도 했다. 배둔장에서는 주민들이 생산한 미곡 등 농산물이 주로 거래되었는데 이곳에서 팔린 물건은 당항포를 통해 배를 이용. 부산 충무 등지로 운반됐다.


        <추억을 열며>
        ▲본지 1986년 7월 30일에 보도된 배둔장은
        배둔장에서 아직도 성시를 이루는 곳은 싸전이다. 소형 트럭들이 즐비하게 줄을 이어 농부들이 가지고 온 일반미를 사들이기에 분주하다. 농부들이 가지고 온 쌀은 시장에 내놓기가 바쁘게 트럭으로 옮겨져 주로 마산 방면으로 팔려 나간다.
        ▲현재의 배둔장은
        싸전은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한때 600여 가구 3천여명이 살고 있었던 배둔리는 급격한 인구 감소로 5일장도 많이 축소되었다. 시장 한가운데를 통과하던 국도 14호선도 우회도로가 생겼다.

        <주변 볼거리>
        ▲당항포 관광지= 고성군 회화면과 동해면 사이의 당항만에 위치한 당항포는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당항포해전 대첩지로서 선조 25년(1592년)과 27년(1594년) 두 차례에 걸쳐 왜선 57척을 전멸시킨 곳이다.
        기념사당(숭충사). 당항포해전관. 전승기념탑. 거북선체험관. 동물류의 박제. 공룡·어패류의 화석 등을 전시한 자연사관. 야생화와 어우러진 자연조각공원 및 수석관으로 구성된 자연예술원이 있다.
        그리고 1억년 전 물결자국. 공룡발자국 화석 등 호수와 같은 잔잔한 바다가 어우러진 자연경관. 청소년모험놀이장. 레저를 겸한 체육시설 등이 골고루 갖추어져 있어 호국정신 함양과 자연교육 및 가족. 단체 휴식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다목적 관광지이다. (고성군 홈페이지 참조)

        <장구경도 식후경> 
        배둔장은 염소국밥이 유명하다. 이월림(78)씨가 30여년간 장터에서 직접 솥을 걸어 놓고 국밥을 팔았으나 2년 전부터는 아들 내외가 근처에 국밥전문점을 차려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 집 주인 김정득(53)씨는 옛날 가난한 시절 먹을 것이 없어 어머니께서 장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염소국밥은 쇠고기 국밥과 비슷하지만 고기가 연하고. 특히 염소 특유의 노린내가 전혀 나지 않는다. 염소 불고기도 인기가 있다.

      

      <주말 5일장>
        ▲3월 19일= 마산 진동장. 진주 문산장. 진해 웅천장. 사천 삼천포·서포장. 김해 진영장. 밀양 송지·구지장. 양산 서창·석계장. 의령 신반장. 함안 군북장. 창녕 이방장. 고성 배둔장. 남해 지족장. 남면장. 하동 북천장. 산청 화계·단계·덕산장. 함양 서상장. 거창 가조장. 합천 대병장
        ▲3월 20일= 진주 미천장. 진해 마천장. 사천 사천·곤양장. 김해 진례·불암장. 밀양 송백장. 양산 물금장. 의령 칠곡장. 함안 가야장. 창녕 영산장. 남해 무림장(이동). 하동 횡천·계천장. 산청 차황·단성장. 함양 마천·안의장. 합천 가야·초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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