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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4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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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금암 최치환 선생 흉상 제막식

  • 기사입력 : 2005-04-1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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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암 최치환 선생 유적 동호회(회장 장봉호)는 지난16일 금암 선생의 고향인 남해군 서면 남해스포츠파크 조각공원에서 하영제 군수. 박희태 국회 부의장. 김무성 국회의원. 김영조 도의원 등 300여명이 모인 가운데 금암 선생 흉상 제막식을 가졌다.
        남해군 삼동면 봉화리에서 출생한 금암 최치환 선생은 삼평삼민(三平三民)을 정치이념으로 행불유경(行不由徑)을 생활 신조로 오로지 나라와 청소년을 걱정했으며. 높은 이념을 위해 기꺼이 낮은길을 택하여 일생을 구국의 횃불로 살아왔다. 특히 금암 선생은 최연소 경무관으로 경남과 충남·북. 서울경찰국장. 대통령 정보비서관을 거쳐 정부 공보실장(문공부장관)을 지낸 후 5. 6. 7. 10. 12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서 활동했다.
        또 지난 64년부터 70년까지 제27대부터 제28·29·30대에 걸쳐 대한축구협회장에 취임해 한국축구의 기반을 닦았고. 경향신문사장과 삼성반도체 사장(1983년). 경우회 회장. 대한속기협회장. 한국도로협회장. 한국근로복지회장. 한국인도의원연맹회장. 한일안보협의회장 등을 지냈다.
        현재의 112 신고전화를 창설했고. 경부고속도로 건설 등에 주도적 역할을 하였으며. 1973년 6월 22일 남해대교를 건설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서울 경기고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 주립대학과 하버드대학원에서 학업을 연마했으며. 6. 25 전쟁시 나라를 사수하는데 큰 공을 세워 태극 무공훈장 등 30여개의 훈장을 수여 받은바 있으며. 현재 국립현충원에서 영면하고 있다.
        이번 흉상 건립은 한국 근대사의 큰 획을 그어 타개 후에도 후세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고 있는 금암 선생의 업적을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해 군민들의 성원과 금암 선생을 존경하는 경향각지의 향우들이 성금을 보태 건립되게 됐다. 남해=김윤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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