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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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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추억을 찾아 (9) 남해읍시장

  • 기사입력 : 2005-05-0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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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해읍 장터    펄펄 뛰는 해물 가족같은 장꾼들… "장에 나와야 사는 맛이 나는기라~"

        어물전 약초전 옷가게 … 130여년 지켜온 '행복 삶터'


        비온 뒤 맑게 갠 하늘은 눈부시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함께 끼니를 떼우고 그의 길안내로 찾아든 남해읍시장은 눈을 의심할 정도로 정갈하게 정리정돈이 잘 돼 있었다. 화창한 봄날씨 만큼 기분좋게 한다.

        규모도 꽤 크다.
        어물전과 옷가게. 신발가게 등 없는 게 없고 안 가져 오는 것이 없다.

        무엇보다 통로마다 사열하는 병정들처럼 질서정연하게 올망졸망 앉아 파는 약초들은 이곳 시장의 감초역할을 톡톡히 한다. 봄산에서 딴 두릅이며 취나물. 고사리. 그리고 들에서 캔 쑥들이 입맛을 돋우며 소쿠리마다 풍성하게 담겨 있다.
        (사)남해상설시장 번영회(회장 하진평·65)에 따르면 130여년 전부터 골목시장이 들어서기 시작해 79년 군 공설시장을 거쳐 사단법인 남해상설시장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체 면적 2천평에 어시장 회원 110명. 통로에 350여명 등 500여명이 삶터를 일궈가고 있다.
        어물전을 시작으로 새벽 4시부터 불을 밝히면 설천. 고현. 이동. 서면 등 남해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든다.

        옛날 같으면 명절 때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구름처럼 몰려들었지만 지금은 예전 같지 않게 한산하다. 그래도 해질 무렵이면 왁자지껄한 것이 모처럼 시장답게 생동감이 넘쳐 난다.
        신발가게를 43년째 운영하고 있는 하진평 회장은 “처음 장사 시작할 땐 여자 고무신 한 켤레에 30원. 아이 꽃신은 20원이었는데 지금은 3천500원 한다”며 “요즘은 잘 찾는 이도 없다. 한마디로 천지가 개벽했다고 봐야재” 란다.

        하 회장은 “아들 네명 다 대학 보냈다. 현상 유지보다 딱히 할 일도 없고 해서 문(시장가게)을 열어놓고 세상 돌아가는 소식이나 접하는 재미에 산다”고 덧붙였다.
        남해장의 여러 전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저잣거리 한복판에 자리한 어물전이다.

        사면이 바다로 싸인 이곳에서는 언제나 펄펄 뛰는 싱싱한 생선을 대할 수 있다. 그래서 이곳 장은 여느 장보다 유달리 갯바람의 소금기가 코끝을 찌른다.
        70년대만 해도 산지에서 밤새 잡은 고기의 선도 유지를 위해 날이 새기 전에 아낙네들이 고기상자를 이고 새벽길을 달려왔으나 요즈음은 용달차나 트럭으로 순식간에 장터까지 다다르기 때문에 항시 신선한 갯내음이 풍긴다.

        시장을 찾는 이도 예전 같지 않고 각종 마트 등이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지만 남해읍시장은 서민들의 애환이 녹아들어 있는 곳이다.
        그런 만큼 뭐니뭐니 해도 이곳의 생명은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시장을 찾는 칠십 넘은 노인네들. 병원에 오면서 차비 보태려고 쑥 한웅큼 캐 오는 할머니. 새파란 마늘종을 뽑아온 아낙네들이 넉넉한 시장인심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인심이 남해바다 만큼 넉넉하고 후덕하다.
        마늘쫑이며 머구잎. 부추. 취나물 등 봉지 봉지 담았지만 1천원. 2천원을 더해 1만원이면 족하다.

        “아이고 마 이것 떨이인데 500원에 가져가이소~”하고 냅다 내미는 할머니에 뒤질세라 여기 저기서도 한웅큼씩 담은 빨간색 함지를 내민다.
        “이 마늘종은 2묶음에 4천원인데 3천원에 가져 가이소”라며 건네는 봉지 속엔 잔파가 가득 얹혀 있다. 눈짓을 하는 걸 보니 잔파는 보너스인 모양이다.

        이형모(58) 상무는 “주차장도 마련돼 있고 조만간 어시장도 리모델링 할 계획이다”며 “시설을 좀 더 밝고 쾌적하게 가꿀 수 있도록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해질녘 긴 그림자를 드리우며 시장을 빠져나오는 기자의 양손엔 봉지 봉지 남해시장 사람들의 마음이 가득 담겨 있다. 김다숙기자 dskim@knnews.co.kr

        <장터 사람들>

        ▲ 2대째 톱수리 김기환씨 "인심 하나로 50년 버텼지"
        초등학교 졸업 후 아버지 손잡고 장터를 돈 것이 어언 50여년. 강산이 다섯번이나 변했지만 톱 수리를 하는 장인정신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2대째 톱수리를 해 오고 있는 남광톱수리 김기환(67)씨.

        햇살이 따사로운 봄날이지만 시장 한 켠의 3평 남짓한 코너에서 톱날을 쓸어주는데 손놀림이 바쁘다.
        “못 고치는 것 없어예 ~. 가정필수품은 다 고친다 아니요. 큰 차는 못고치고(웃음).”

        김 할아버지의 너스레에 화답이라도 하듯 주변에는 농약통과 톱. 낫. 마늘종 채취기 등이 새 주인을 기다리며 가지런히 놓여 있다. 그 중에서도 마늘종 채취기는 기성제품이 마음에 안들어 아예 직접 만들었다. 톱 수리점을 찾는 사람들도 김 할아버지가 만든 제품을 더 애용한다고 귀띔한다.
        “손으로 돈 버는 사람한테 뭘 그리 자꾸 물어봐 샀는교”라며 손사래를 치다가도 “남해시장은 인심이 보배지”라며 웃는다.

        그래서인지 농기계 수리비 대신 술 받아 주고 가는 사람. 다음에 준다고 약속해 놓고 영영 안 주는 사람 등 가지각색이란다.
        그래도 이곳 남해시장에 오면 아는 사람도 많을 뿐 아니라 죄다 친구다. 이들이야 말로 김 할아버지의 삶의 재산이다.

        옛날에는 하루에 30여명 이상 찾아와서 농기계며 살림살이 도구들을 수리해 갔는데 요즘엔 10여명 남짓에 불과하다. 그래도 아침에 눈 뜨면 갈 곳이 있고 일거리가 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고.
        김 할아버지는 “아버지 한테 기술을 전수 받았지만 아들은 내 죽고 나서 할지 말지 잘 모르겠다”며 “힘이 있을 때까지 장터를 찾을 것”이라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건어물- 김세연씨 "내가 시장통 대모 아이가"
        “집에 있으면 심심하고 노니 앉아서 살살 꼼지락거리는 거 아닝교.”
        남해읍시장 어물전에서 50여년째 건어물을 팔고 있는 김세연(84)할머니.

        일본에서 결혼하고 이곳 남해에 정착. 50여년을 시장에서 살았으니 청춘을 바친 곳이다. 점포라고 해 봐야 양태. 서대. 갈치. 조기 등 건어물을 담은 소쿠리 5~6개를 펼쳐 놓은 것이 고작이다.
        그래도 자식들 키우고 결혼 다 시켰으니 삶의 소중한 터전인 셈이다. 게다가 남해는 사면이 바다에 둘러싸인데다 공기 맑고 햇살이 좋아 말린 고기가 유명하다. 제사고기도 말려서 사용을 하는 집이 많다.

        “많이 팔았느냐”고 묻자 “요즘 손님이 별로 없다. 그나마 손님들도 젊은 사람들을 더 좋아하는 것 같고”라며 욕심없이 빙 둘러 얘기한다.
        마수도 제대로 못하고 갈 때도 있지만 사람 구경하는 맛 때문에 장날이면 어김없이 나온단다.

        또 단골손님이 잊지 않고 찾아와 주면 고마워서 덤으로 더 얹어 주는 것도 또다른 즐거움이다.
        “꼼지락거릴 때(움직일 때)까지 움직이다 산에 가야지 뭐”라고 말하는 할머니 곁에 어느새 시장 식구들이 모여 든다.

        어물전에서 일하고 있는 박경엽(60)씨는 “할머니는 이곳 시장에서 어른이다. 엄마처럼 의지하고 산다”며 “하루라도 늦게 시장에 나오면 어디 다치지나 않았나 하고 걱정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또 “먹을 것이 있으면 나눠 갖다 드린다”며 넉넉한 시장인심을 자랑하며 웃는다. 취재하고 있는 동안 이웃 어물전에선 어느새 횟감을 썰어 맛보라고 야단이다. 넉넉한 시장 인심에 발걸음마저 경쾌해진다.

     

        <남해읍시장은> 2일과 7일 열린다. 남해상설시장의 역사는 약 130년 전 현 남해읍 북변동 골목입구에서 보따리장수들로 장이 시작됐다고 전해진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30여년 전부터 보따리 행상의 골목장은 자취를 감추고 군유지 2천평에 어물상 등 500여 상인이 전을 차렸다.

        <장터구경도 식후경> 남해시장은 특별하게 유명한 음식점은 없지만 신선한 회를 맛볼 수 있는 감미. 고향. 봉정식당 등이 주차장 부근에 여러 곳 있다. 바다에 둘러싸여 활어로 소문난 남해 일대에서 잡은 싱싱한 회를 값싸게 즐길 수 있다.

        <추억을 열며>
        ▲1986년 2월 7일 본지에 게재된 남해읍장= 상거래가 활발. 서부 경남에서는 규모가 큰 이름난 장이었다. 장날 하루동안 5천~7천명의 장꾼들이 붐볐다. 특히 남해장에는 싱싱한 수산물과 전국적으로 알려진 남제(濫製)모시와 삼베가 많이 나와 육지 장꾼들에게 인기를 모았다.
        ▲현재의 남해읍장은= 그나마 남해에서는 제일 큰 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장날 구름처럼 몰려들던 인파는 아니지만 아침과 저녁 해질 무렵엔 활기찬 장터를 구경할 수 있다.

        <주말 열리는 장>
        ▲5월 7일= 진주 지수장. 통영 중앙장. 김해장. 밀양장. 창녕 대합장(십이리장)·남지장. 고성 영오장. 남해읍장. 하동장. 함양장. 거창 신원·위천장. 합천 야로·삼가장
        ▲5월 8일= 진주 일반성장. 진해 경화장. 장유장. 밀양 수산장. 양산 신평장. 의령장. 함안 칠원장. 창녕장. 고성 당동장. 남해 동천장·고현장. 하동 진교장·옥종장. 산청 생초장·문대장. 합천장

        <주변 볼거리>
        선조의 억척스러운 삶이 녹아있는 남면 가천마을 다랭이논과 암수바위. 남해 금산과 보리암. 상주·송정·월포해수욕장 등 산과 바다 어느 한 곳 모자람 없이 눈만 돌리면 관광 명소가 자리잡고 있다. 또 군민과 관광객의 여가와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운동휴양지와 국내외 프로팀의 겨울철 전지훈련장으로 활용할 복합 스포츠파크도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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