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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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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추억을 찾아 (13) 통영장

  • 기사입력 : 2005-05-3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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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영장] 구릿빛 갯바람 타고 웃음소리 찾아들고…

        ‘통영장 낫대들었다.(장이 열리자마자 나아가 대들듯이 구경했다)/갓 한 닢 쓰고 건시(곶감) 한 접 사고 홍공단 댕기 한감 끊고 술 한 병 받아들고/화륜선(증기기관으로 움직이는 기선) 만져보려 선창갔다/오다 가수내(여자아이) 들어가는 주막압헤/문둥이 품바타령 듣다가/열닐헤달(열이레 달)이 올라서 나루배 타고 판데목(통영 앞바다 수도 이름으로 1932년 해저터널이 완성된 곳) 지나간다 간다’ (백석 시인의 시 ‘통영’-1931년 1월 발표 시집 ‘사슴’ 수록)

        코를 자극한다. 바닷가 특유의 비릿함. 역겹기보다는 오히려 향긋하다.
        포구에 정박해 있는 어선들. 곳곳에 놓여있는 생선 궤짝들. 구릿빛 얼굴의 어부들. 다시 출항을 준비하는 한 척의 어선. 때맞춰 날아가는 갈매기떼. 정겨운 포구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온다.

        시도 때도 없이 통영을 찾았다는 시인 백석(1930년대 대표 시인). 그도 아마 통영의 전경에 흠뻑 취했으리라.
    상념에 잠긴 것도 잠시. 그 새 장이 들어섰다.

        통영 중앙장. 통영항과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펼쳐져 있다. 포구에서 장터까지는 불과 20m. 우측은 활어시장. 가운데는 일반상설시장. 그리고 맨 좌측은 도로가를 기준삼아 둘러싸고 있는 5일장이다.
        포구에서 바라보는 시장은 마치 세 가지 색깔이 공존하는 것 같다.

        #생기
        어디부터 둘러볼까. 잠시 고민하다 활어시장 골목으로 먼저 들어선다.

        감성돔. 참돔. 도다리 등 빨간색 대야에 가득 담긴 활어들. 멍게. 해삼 등 해산물. 간혹 대야 밖으로 튀어나오며 주인을 성가시게 하는 모습은 싱그러움을 느끼게 한다. 이미 옆 좌판에서는 커다란 도다리가 능숙한 아저씨의 손놀림에 옷을 벗고 있다.

        “도다리 함 잡숴보이소. 새벽에 갓 잡아온 거라예.” 한 아주머니가 퍼덕이는 도다리를 한 마리 들어 보인다. “고기는 어디서 들여오나요?” “대부분 여기 있는 사람들은 직접 잡아오거나 양식을 안 합니꺼. 경매를 해서 들여오기도 하지예.” 남편이 밤새도록 잡아온 생선을 아줌마는 되파는 것이다. 새벽부터 일어나 고단도 하련만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 하나 없다. ‘살아 있음.’ 활어시장은 싱싱한 활어뿐 아니라 사람들까지 온통 ‘생기’로 넘쳐난다.

        #활기
        활어시장 사이 골목으로 나오면 일반 상설시장이 나온다. 데파트 건물 뒤쪽으로 들어선 점포는 그 자체가 만물상이다. 의류. 수산물. 약초. 나물류. 분식점들이 쫙 들어서 있다. 활어시장이 ‘생기’로 대변된다면 일반 상설시장은 ‘활기’로 넘쳐난다. 인근에 대형 할인점이 생기면서 예전 같지는 않지만. 장날이면 평소보다 사람들이 세 배 이상 증가한다.

        “골라 골라 무조건 1천원.” 트로트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의류가게 아저씨가 박수를 쳐댄다. 오랜만에 대목을 만난 듯 신이 났다. 웅성웅성 모인 옆 건어물상도 마찬가지. 검은 봉지에 멸치를 담아내기 바쁘다.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오랜만에 느껴보는 활기에 미소가 가득하다.

        #온기
        상설시장에서 도로 쪽으로 나오면 양쪽 기역자 모양으로 500m에 걸쳐 리어카와 좌판들이 쫙 늘어서 있다. 대충 어림잡아도 1천여 개는 될 듯싶다. 대부분 인근 면단위 지역에서 나온 할머니들이 대부분이다.

        갓 뜯은 쑥뭉치가 2천원. 수북한 냉이 한 바구니가 1천원. 바구니에 조근조근 담은 나물류는 뒷전인 채 할머니들은 사람들과 얘기하기 바쁘다. 누구네 집 아들이 판사가 됐다더라. 아무개 집 개가 새끼를 낳았다는 등 서로 동네 소식을 전하느라 여념이 없다.

        조그만 바구니에 고구마 서너 개를 팔러 나온 할머니가 눈에 들어온다. “할머니. 이거 얼마예요.” “이거 6천원. 떨이다.” 엥? 아무래도 이건 너무 비싼 것 같다. 고민하는 기자를 보다 못한 옆 할머니가 한마디 한다. “장난 치지 마라.”

        그제야 할머니는 “2천원”이라며 귀여운(?) 애교를 떤다. 할머니를 뒤로하고 도로가로 나온다. 한 봉사단체에서 무료로 차를 나눠주고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종이컵을 쥐고 데이트 하는 모습이 정겹기만 하다.

        그랬다. 할머니의 귀여운 거짓말도. 한 봉사단체의 무료행사도. 구수한 사투리로 대화하는 모습도. 장터에서만 느낄 수 있는 ‘온기’임을 깨닫는다.
    글= 최승균기자 july9th@knnews.co.kr
    사진= 이준희기자 jhlee@knnews.co.kr

     

        탕탕 깡깡 톡톡… '쇠붙이 연주' 48년 "망치질 한번에 피로 잊어요"

        <장터 사람들> 대장간 주인 이평갑(63)씨

        운명이었다. 대장간 직공으로 들어간 이후 48년이 흘렀다. 평생 직업이 될 줄은 그때까지만 해도 까마득히 몰랐다.
        통영 중앙장에서 대장간을 운영하는 이평갑(63)씨. 반평생 넘게 오로지 쇠만 두드려왔다. 한마디로 ‘철인’이다.

        1960년대. 대부분 같은 세대들이 주린 배를 잡던 시절. 어느 날 어머니에게 이끌려 점을 보게 됐다. 점쟁이 왈 “동지섣달에 찾는 사람이 있을 거야. 그럼 아무 말 하지 말고 따라가. 넌 평생 손재주로 먹고 살 팔자야.”

        아니나 다를까. 정말 그해 겨울 통영항 근처에서 대장간을 운영하는 한 아저씨가 이씨를 찾아왔다. 직공으로 채용하기 위해서였다.
        “17살이었죠. 그때까지만 해도 절대 믿을 수 없었죠. 특별히 손재주가 있다고 생각 안했으니까요. 그런데 점쟁이 말대로 돼 버렸습니다.” 그는 아직도 당시 일이 신기하다고만 한다.

        직공생활이 어디 편했으랴. 손바닥 전체가 나무껍질 같은 굳은살로 뒤덮였다. 겨울이면 손이 쩍쩍 갈라지는 고통의 나날이었다. 너무 힘들어 그만두려고 짐을 싸기도 했다.
        “직공이 10명이 넘었는데 물량이 많아 밤샘할 정도였죠. 내가 이게 무슨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 동료 아저씨의 만류로 다시 마음을 잡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새벽별보고 출근해 밤별보고 퇴근하는 고된 노동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게다가 휴일도 1년에 겨우 두 번. 지금으로 얘기하면 명백한 노동법 위반이었다. 참다못한 그는 동료직공들과 뭉쳐 주인에게 건의했다. 일종의 노동조합을 결성한 것.

        “일주일에 한번 쉬게 해주이소.” “안된다카이.”
        며칠씩 출근을 늦게 하는 등 태업을 하면서 결국 한달에 두 번 쉬는 걸로 타결을 봤다.

        “지금은 주5일제다 뭐다 하지만 그때는 턱도 없는 얘기지요.” 당시를 떠올리며 미소를 짓는다.
        그는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한다. 화로통도 40년 전 그대로다. 단지 불만 전기로 교체했을 뿐이다. 그에게는 보물 1호다. 호미. 곡괭이. 낫 등 농기계부터 갈고리. 닻 등 선박에 필요한 도구들을 혼자서 직접 제작한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쇠뭉치. 규칙적인 리듬으로 망치를 내리칠 때마다 소리가 제각각이다.
        “깡깡~” “탕탕~” “톡톡~”

        때론 청명하게 때론 둔탁하게. 마치 연주를 듣는 듯하다. 동시에 볼품없는 쇳덩이도 어느새 제모양을 찾아간다. 그는 단순한 대장장이가 아닌 음악가이면서 조형 예술가이기도 한 셈이다.

        “장에 나온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죽을 때까지 이 일을 해라고 종종 얘기합니다. 가끔씩 고생한다고 음료수도 가지고 오시죠. 그럴 때마다 내 존재가치를 느낍니다.” 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지금 내 나이에 일을 하기가 쉽나요. 이런 전문적인 직업을 갖고 일하는 사람이 몇 되겠어요. 비가 오든 눈이 오든 계절이나 날씨에도 구애받지 않죠. 힘들 땐 소주 한잔 들이켜고 망치질 한번이면 시름도 피로도 싹 가시죠.” 환하게 웃는 모습에 행복을 느낀다.
        ‘충무공작소’. 쇠를 두드리고 휘어서 모양을 낸 간판의 글자가 오늘따라 유난히 빛나는 것 같다. 최승균기자


        <장터구경도 식후경>
        통영하면 충무김밥이 대표적. 시장 주변으로 ‘3대 충무할매김밥’. ‘88 오리지널 충무할매김밥’ ‘3대 60년 충무할매김밥’ 등 서로 원조를 자처하는 식당가가 형성돼 있다. 충무김밥은 특이하게 김속에 밥만 넣는다. 무김치. 오징어무침 등과 함께 곁들여 먹는 게 특징. 주로 어민들이 며칠간 항해를 나갈 때 배에서 먹었다고 한다. 보통 1인분 3천원이다.

        <주변볼거리>
        -세병관= 경상. 전라. 충청. 삼도 수군을 총괄 지휘하는 본영인 통제영 객사(국보 305호)다. 1604년 창건된 단층 팔작집으로 현존하는 조선시대 목조건물로 꽤 큰 규모에 속한다.

        -충렬사= 조선 선조 39년(1906년) 제7대 수군통제사 이운룡이 왕명으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위훈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세운 사당(사적 제236호)이다. 통영 장터로부터 약 800m 정도 떨어져 있다.
    그외 해저터널. 비진도 해수욕장. 한산도. 통영운하. 달아공원 수산과학관 등 가볼 만한 곳이 많다.

        <주말 열리는 장>
        ▲6월 4일= 마산 진동장. 진주 문산장. 진해 웅천장. 사천 삼천포·서포장. 김해 진영장. 밀양 송지·구지장. 양산 서창·석계장. 의령 신반장. 함안 군북장. 창녕 이반장. 고성 배둔장. 남해 지족장. 남면장. 하동 북천장. 산청 화계·단계·덕산장. 함양 서상장. 거창 가조장. 합천 대병장.
        ▲6월 5일= 진주 미천장. 진해 마천장. 사천 사천·곤양장. 김해 진례·불암장. 밀양 송백장. 양산 물금장. 의령 칠곡장. 함안 가야장. 창녕 영산장. 남해 무림장(이동). 하동 횡천·계천장. 산청 차황·단성장. 함양 마천·안의장. 합천 가야·초계장.

        <추억을 열며>
        본지 86년 8월 27일자에는 통영장은 해안과 내륙 특산물 교류의 창구로 통제영 따라 번창했다. 옛 풍경은 사라져도 통영갓. 통영자개. 통영소반. 통영장석 등 나전칠기. 소목장 두석장 등 전통공예품들이 명맥을 이어 대도시로 팔려가고 있다고 전한다. 하지만 현재는 일부 장인들을 제외하고 이런 전통공예품을 생산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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