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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2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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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우 시인이 찾은 '을숙도'

  • 기사입력 : 2005-06-2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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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편에선 자연속으로 저편에선 개발속으로

      엇갈린 '발자국'


      늦은 오후 을숙도에 가서 물 속으로 걸어간 새와 물 속에서 걸어나온 새가 남겨놓은 엇갈린 발자국을 본다. 밀물에는 바다가 고이고 썰물에는 강물이 고이는 발자국. 내일 이 무렵이면 내 발자국에도 바다가 고이고 강물이 고이고. 내 발자국도 물 속으로 걸어가고 물 속에서 걸어나오며 이렇게 엇갈리고 있을 것이다.

      초여름의 을숙도엔 나는 새보다 우는 새가 더 많다. 갈숲을 흔드는 바람보다. 갈숲이 흔들어놓는 바람이 더 분다. 갈숲 사이로 난 모랫길에 가만 쪼그리고 앉아 귀를 세우면 바람결에 실려오는 수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갈대 하나 하나마다 빈속을 채우며 세상의 한 소리씩은 품고 사는 듯.

      어쩌면 스무 살 적 첫사랑을 잃고 찾아온 을숙도에서 온밤내 울부짖던 내 울음소리를 들을 수도 있으리라. 아니 어쩌면 누군가 내 울음소리를 품은 갈청을 따서 퉁소를 불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름 밤 퉁소소리를 들을 적마다 애간장이 녹아나는 것은 그런 까닭이었을까.

      을숙도의 갈숲엔 새떼보다 더 많이 집을 짓고 사는 게들이 있다. 참게며. 칠게며. 방게며. 농게며. 붉은 주먹 도둑게가 요리조리 갈숲을 어슬렁거린다. 게들 중에 등에 H자 문신이 선연한 게는 시대의 은둔자(Hermit)요. 온종일 거품을 게워 올리고 있는 게는 시대의 분노자요. 이 직진의 시대에도 가로 걸을 수 있는 용기를 가르쳐 주고 있는 게는 횡행군자(橫行君子)다. 물론 겉으로는 두꺼운 갑옷을 입었으나 위선일 뿐. 배알이 없는 무장공자(無腸公子)의 게들도 있다. 을숙도 갈숲에 살고 있는 게들의 모습에서 인간의 군상을 본다. 나는 도대체 어떤 게를 닮았는가.

      여섯 물의 을숙도엔 물결보다 더 일렁거리는. 물결보다 더 새파란 세모고랭이가 있다. 뿌리는 바다에 내리고 잎새는 하늘을 보는 풀. 바다 건너 내 고향 가덕도의 산허리로 놀이 지면 붉은 놀을 온통 물결에 풀어놓고. 바람결에 실려온 갈숲의 노래에 온몸을 흔든다. 세상에 이보다 더 유연한 춤이 또 있으랴. 타는 햇살은 춤추는 세모고랭이의 체관을 흘러 바닷속을 비추고 갈잎의 노래는 물관을 흘러 바닷속에도 울린다. 장자의 표현 그대로 그래서 을숙도의 ‘물고기는 즐겁게 노는’ 것이다. 가끔은 저녁놀을 흩어놓으며 물 밖으로 솟구쳐 뛰어 오르기도 하면서.

      세모고랭이 잎처럼 푸른 삼각주

      갈숲엔 참게 칠게 방게 농게 요리조리

      내일 이 무렵이면

      내 발자국에

      바다가 고이고 강물이 고이고…

      저 너머엔 대교 건설의 붉은 깃발

      세상사람들의 이 지독한 엇갈림

      칠백 리를 달려온 낙동강과 바다가 몸을 섞으며 만들어 놓은. 세모고랭이 잎처럼이나 푸른 삼각주. 밟으면 구름처럼 폭신폭신한 모래톱에선 생의 절망에 못 이겨 큰 대(大)자로 벌렁 드러누워도 머리칼 하나 상하지 않으리라. 이곳에 오면 세상의 모든 슬픈 추억도 노래가 되고. 춤이 되고. 마침내는 생의 고향인 어머니의 자궁 속에 되돌아 온 듯 편안해진다. 한쪽 다리를 잃은 게가 새로 다리를 만들어 내듯 모든 상처받은 생명들이 복원되는 생명의 세상이다.

      그럼에도 이 저녁 을숙도의 갈숲에는 차마 듣고 싶지 않은 아우성 또한 들린다. 세상을 향해 한껏 날을 세우고 있는 갈잎의 수런거림이 있고. 미리 떠날 일을 생각하며 우는 개개비가 있고. 좀 더 깊이깊이 구멍을 파며 숨어 들어가고 있는 게들이 있다. 을숙도의 생태복원을 위해 애쓰고 있는 ‘습지와 새들의 친구’에게 물어본 바 새로 건설되는 명지대교 때문이란다. 한편에선 복원에 여념이 없고 또 한편에선 개발에 여념이 없는 우리네 세상 사람들의 이 지독한 엇갈림.

      내 나이 열 살 무렵. 명지에서 배를 타고 을숙도에 갔다. 갈숲 사이 작은 수로 위로 나무다리가 하나 걸리어 있고 모든 살아 있는 생명들의 낙원이었다. 내 나이 스무 살 무렵. 강과 바다를 가로막으며 낙동강 하구둑이 건설되고 을숙도는 쓰레기 하치장이 되었다. 내 나이 서른 살 무렵. 쓰레기 더미 위로 을숙도 생태복원 계획이 세워졌다. 그리고 내 나이 마흔을 앞둔 오늘. 을숙도의 하단을 관통하며 명지대교를 건설하느라 꽂아놓은 깃발이 유월 도둑게 발보다 더 붉다.

      갈숲을 거닐다 만난. 마치 태아처럼 웅크린 채 모래톱을 찢고 나오는 초여름 늦은 새순이 굴착기와 덤프트럭의 굉음을 품게 될까봐 다시 두려워지는 저녁 나절.

      ▲송창우 시인은 1968년 부산 가덕도에서 태어나 1994년 현대문학에 시가 추천되어 문단에 나왔다. 경남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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