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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추억을 찾아 (20) 함안 대산장

  • 기사입력 : 2005-07-1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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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박보다 더 시원한게 대산장 인심인기라~"


      함안.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진주가는 길에 늘 스쳐지나다가 정작 대산장 취재길에 오르니 난감했다.
      지인한테 약도를 물었더니 국도로 가는 길도 있지만 칠서 IC에서 우회전. A 아파트를 따라 쭈욱 가면 더 가깝다고 가르쳐줬다.

      초행길이지만 머릿속으로 길 지도를 단단히 숙지한 후 고속도로를 택했다. 칠서 IC에서 빠져 대산장 가는 길로 한참 달리는데. 길안내 표지판 없이 두 갈래로 길이 갈라졌다. 아뿔싸!

      하지만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그 갈림길 삼각지에 자두와 참외 등을 길에 펴 놓고 파는 아주머니 한 분이 아랫길로 가면 된다고 친절하게 길 안내했다.

      비록 깔끔하게 포장은 다 됐지만 산길 따라 난 시골길에서 예감할 수 있듯 저만치 눈앞에 펼쳐진 대산장은 조막만 했다.
      함안군 대산면 구혜리 223-1.

      논과 들판을 가로질러 네모나게 손바닥만한 장터는 몇 바퀴 돌아도 금방 그곳이 그곳이었다.

      산길따라 난 시골길 끝 자그만 장터

      80여 상인 복닥대는 신명난 삶의 터전

      옛 명성 희미해졌다지만

      넉넉한 인심 걸쭉한 입담 그대로인데…

      함안 대산 수박으로 유명한 대산장. 장마이긴 하지만 한창 수박철인데 수박 구경하기가 하늘 별따기다.

      “그게 말입니더. 이곳 농민들의 99%가 집에서 수박 농사를 짓는데 누가 장에서 수박을 사 먹겠십니꺼? 그라고 대산 수박이 워낙 달다고 소문이 나서 서울 등 전국에서 밭떼기로 사 간다 아닝교.”

      그래서 장터에서는 오히려 수박이 귀했다.
      꼭 김칫국부터 마신 꼴이다. 장마 끝에 살짝 비친 햇살은 더욱 더 갈증나게 하는데….

      그때 저만치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기자 양반. 이리 와서 오리지널 대산 수박 한번 묵어보이소~. 이것 먹고 멋지게 써 주이소 마.”

      넉넉한 인심이 따로 없다. 팔뚝 만큼 굵게 썰어 쥐어 주는 수박 한 조각은 “아! 달고 시원하다”는 말 뿐.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건너 옷전에선 웃음 소리가 시장안을 가득 메운다.
      김순자(71) 할머니. 성함을 여쭙자 “이름 뭐할라꼬?” “안 갤카 주고 싶은데 자꾸 가르쳐 달란다”며 눈을 흘기면서도 이름을 대준다.

      그리고는 몸빼 두장에 1만원인데. 1천원을 깎으려는 손님과 본전이라고 우기는 실랑이가 벌어진다. “남는 것도 없는데”
      “왜 안 남아. 찾아 와 주는 것만 해도 고마운 줄 아이소~.” 결국 손님은 500원을 깎고 총총히 사라진다.

      “여름에 입는 블라우스 없나?”
      “왜 없어. 꽉 찼다(많다)”며 또다른 손님맞이에 나선다.

      6·25전쟁 직후부터 생겨나 6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대산장.

      이곳 또한 70~80년대만 해도 쌀 보리 등 곡물을 실어나르는 달구지. 경운기 소리와 밤늦도록 장작불이 꺼지지 않는 성시를 누렸다. 장 보는 사람들로 하도 북적대 어린아이는 잃어버릴까봐 아예 장에 데려 오지 않았다니 옛 영화가 그리울 만하다.

      그땐 소전. 닭전. 개전 등이 쭈욱 늘어서 있어 동물 농장이 따로 없었고. 보리타작하던 농기계며 빗자루. 도리깨까지 농기계민속박물관에 온듯 신기한 것도 많았다고 전한다.

      이제는 장옥내 점포를 운영하는 40여명과 의령 지정과 창녕 남지. 함안 칠원 등지에서 찾아든 노점상 40여명 등 80여명이 어우러져 시골 오일장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창녕 남지에서 왔다는 황만석(62)씨는 “이 장 저 장 돌며 노점상을 한 지 35년이 됐다. 10여년 전만 해도 하루 50만원은 거뜬히 팔았는데 마트 등이 들어서면서 20만원 매상 올리기도 버겁다”며 마트 때문에 상인 다 죽게 됐다고 성토했다.

      시장번영회 안행길(65) 총무는 “시장 규모가 자꾸 줄고 있는데 시장 활성화를 위해서 시장 전용 주차장 확보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장터 사람들>
     
    곡물상회 안행길씨… 40년 노하우 "쌀 박사라 불러줘"

      “10대 때 어머니 어깨 너머로 배운 실력이 한평생 삶의 밑천이 된 것이죠.”
      27세 되던 해 어머니로부터 독립해서 곡물상회를 연 지 어느덧 40여년.

      60년대 초 쌀 한되 가격은 얼마인지 가물가물하지만 그동안 또박또박 써온 쌀 장부는 30여권. 그러나 그동안 애물단지처럼 둘둘 말아 간직해 오다 얼마 전 비오는 날 불쏘시개로 한방에 날려 버렸다.

      “돈 안 받은 기록을 보니. 지금 가서 말해봐야 소용없을 테고. 열만 받길래 그만…. 기자가 올 줄 알았으면 놔 두는 건데”라며 아쉬워 했다.

      지금은 쌀 한되 소매가격이 3천500원.
      도정과 올(쌀의 굵기)은 손으로 만져보면 직감적으로 다 아는. ‘쌀 박사’다.

      늘 배 고프고 못살았기 때문에 시작한 쌀장사였지만 대산장에서는 제일 큰 곡물상회 중개사를 했으니. 어깨 너머 배운 노하우 치고는 두번째라면 서러울 정도다.

      3형제를 키웠는데. 다들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한다. 물려주고 싶어도 장이 안돼 물려 줄 것이 없단다.

      지금은 지나간 ‘좋은 시절’이고. 옛날 사람 만나 안부 묻고 막걸리 한잔 하는 재미에 장을 찾는다.

      “언제까지 할지는 모른다. 세상 끝까지 해야지. 지금은 놀기 삼아 오지만.” 그에게서 세월의 흐름을 읽는다. 

      '50년 장돌뱅이' 만물상 성점판(65)씨

      "양말·사카린·쥐약… 없는 게 없어"

      “정자관. 등삼. 챙이. 죽부인… 없는게 없다.”  없는게 없는 시골 오일장 중에서도 ‘있을 건 다 있는’ 만물상 주인 성점판(65)씨.

      한여름 더위에도 아랑곳 없이 정자관을 쓰고 허리춤에는 돈주머니를 주렁주렁 달고 장사를 하고 있는 품새가 예사롭지 않은 성씨는 장터를 돈 지 50여년.

      대산장과 신반장. 가야장. 의령장이 성씨의 주요 삶터다.

      오후 1시. 등줄기를 타고 내리는 땀방울에 오가는 사람들도 간혹 눈에 띌 정도지만 이곳 만물상에는 제법 사람들이 들끓는다.

      13살 때 부모님 따라 장돌뱅이가 되었으니 그 노하우를 누가 따라 가랴.

      옛날에는 양말과 모자가 주력 상품. 양말 한 켤레 30원 정도였는데 그때는 쌀보다 더 귀했다.
      지금은 사카린. 쥐약. 에프킬러 등 다 있다. 그래서 몇 종류나 되느냐는 기자의 우문에 돌아오는 답은 “계산 못합니더.” 민망했다.

      성씨는 부부가 같이 장사를 한다. “마누라랑 같이 하면 볼일 보러 갈 수 있어 좋다”고 덤덤하게 말한다.

      10년 전만 해도 잘 될 때는 자리 앉을 새도 없이 문전성시를 이뤘지만 지금은 밥이나 먹고 산다고.
      그래도 별 걱정이 없다. 자식 공부 다 시켰고. 세상 돌아가는 이바구 하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대산장은> 1·6일장이다. 6·25 직후부터 생겨나 60여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지난해 4월 시장번영회를 조직. 3천여평의 면적에 8~9월 지붕개량한 장옥 7개에 80여 점포가 만들어져 있다. 그나마 장사가 안돼 절반 가량 비어 있다. 함안에서는 가야장 다음으로 큰 장이다.

      <장터 구경도 식후경> 시장통 안에 갓삶아 내 주는 국수집 7~8군데가 있다. 한 그릇 2천원.

      <주말 열리는 장>
      ▲7월23일= 진주 일반성장. 진해 경화장. 장유장. 밀양 수산장. 양산 신평장. 의령장. 함안 칠원장. 창녕장. 고성 당동장. 남해 동천장·고현장. 하동 진교장·옥종장. 산청 생초장·문대장. 합천장

      ▲7월24일= 마산 진동장. 진주 문산장. 진해 웅천장. 사천 삼천포·서포장. 김해 진영장. 밀양 송지·구지장. 양산 서창·석계장. 의령 신반장. 함안 군북장. 창녕 이방장. 고성 배둔장. 남해 지족장. 남면장. 하동 북천장. 산청 화계·단계·덕산장. 함양 서상장. 거창 가조장. 합천 대병장

      <주변 가볼만한 곳>
      ▲악양루(岳陽樓)= 문화재자료 제190호. 함안군 대산면 서촌리 산 122에 위치하며 악양마을 북쪽 절벽에 있는 정자로. 조선 철종 8년(1857)에 세운 것이라 한다. 정자 아래로는 남강이 흐르고. 앞으로는 넓은 들판과 법수면의 제방이 한눈에 들어온다.
    6·25전쟁 이후에 복원하였으며. 1963년에 고쳐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정자의 이름은 중국의 명승지인 ‘악양’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전한다. 옛날에는 ‘기두헌’(倚斗軒)이라는 현판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청남 오제봉(菁南 吳濟峰)이 쓴 ‘악양루’라는 현판만 남아 있으며. 1992년 10월 21일 문화재자료 제190호로 지정되었다. 함안군 홈페이지 (http://www.haman.go.kr/) 김다숙기자 ds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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