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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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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강보의 논술탐험] (15) `어설픈 글`과 `잘 쓴 글`

  • 기사입력 : 2005-08-2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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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샘: 그동안 대입 수시논술에 대비한 논술탐험 위주로 하다 보니 이해하기 어려운 점도 많았지?

     글짱: 아뇨. 어차피 논술공부의 큰 흐름은 같다고 여겼으니까요.

     글샘: 그러면 다행이고. 이제부터는 기본적인 논술 공부에 잣대를 맞춰 설명해 줄 참이야.

     글짱: 어느 정도 수준으로 할 건가요?

     글샘: 아마 초등 고학년이면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 거야. 오늘 예문은 여고생의 습작글이란다. `외모'를 주제로 쓴 글이지. 물론 이런 글은 글감을 어떻게 인용하느냐에 따라 중학생도 써 볼만한 주제야.

      ■예문 : 외모 지상주의 ­ 고교 1학년 글

     당나라 때 관리로 등용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네 가지 조건에는 `신언서판'이 있었다. `신언서판'은 각각 건강한 풍채, 말씨, 문필, 판단력을 가리킨다. 여기에 `미'는 포함되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사람을 평가하는 데 외적인 `미'가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자리했다. `얼짱'^`몸짱'이라는 신조어와 성형수술의 성행이 이를 반증한다.
     이러한 사회 풍토는 내적인 성숙보다 외모의 화려함을 좇는 `외모 지상주의'의 한 모습이다.(중략)
     진정한 자신감은 TV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처럼 누가 뭐래도 난 아무개라고 인정하는 가운데 생겨난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해야 할 때이다. 그것이 외모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겉으로 화려하지는 않지만 속이 꽉 찬 사람이 겉보기에 예쁜 사람보다 마음이 간다. 외모의 아름다움과 외적 미의 기준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할 수 있지만 `선'과 `덕'이라는 내적 가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는 보편적 진리이다. 빛 좋은 개살구의 빛에 현혹되지 말자. 그 빛이 10년, 20년 후에도 아름다울지 모를 일이다.

     
     글샘: 논술 예제로 글쓰기 연습을 해 본 모양이야. 중간에 생략한 단락은 `성형수술'에 관한 내용을 주로 다루고 있더구나.

     글짱: 제가 보기엔 아주 잘 쓴 글 같은데요?

     글샘: 얼핏 보니까 그렇겠지. 논술에서 중요한 건 논점이랬잖아. 다시 꼼꼼히 읽어봐!

     글짱: `신언서판(身言書判)'을 인용한 글머리는 아주 독특하고…. 아∼! 그러고 보니 `미는 포함되지 않았다'가 이상하네요.

     글샘: 바로 그거야. 글쓰기 방법 면에선 돋보이는 인용 등 기본에 충실했지만, 어설픈 단정으로 `오류의 함정'에 빠지는 실수를 했어.
     [`신언서판'은 각각 건강한 풍채, 말씨, 문필, 판단력을 가리킨다. 여기에 `미'는 포함되지 않았다.] 라는 대목이 가장 문제란다.
     `신언서판'에 나오는 `신(身)'이 외모(얼굴)를 중시하지 않는 등용 조건이었을까?
     아니지. 외모를 보고 관리를 뽑았다고 봐야지. 하지만 이 학생은 배경지식을 활용한 글머리에서 `그릇된 정의'를 내려놓고서 자신의 주장을 끼워 맞추는 오류를 범하고 있단다.
     글샘이 `신언서판'의 `신'을 논점으로 삼아 외모 지상주의를 비판한다면 다음과 같이 쓰고 싶어.

     당나라 때 관리로 등용되기 위해 갖춰야 할 네 가지 조건에 `신언서판'이 있었다. 건강한 풍채, 말씨, 문필, 판단력을 가리킨다. 여기에 `외모'가 포함돼 있다. 예나 지금이나 외모는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인 셈이다.
     그러나 사람의 인상은 마음가짐이나 몸가짐에 따라 얼마든지 보는 이들에게 호감을 줄 수 있다. 성형수술로 외모를 바꾸는 데만 열중하는 노력에 비해 `언'이나 `서' 그리고 `판'을 가꾸려는 노력은 부족한 것이 오히려 문제가 아닐까
    .


     글짱: 와우∼. 이제 무슨 의미인지 확실히 알겠어요. 그래서 논점의 중요성을 강조했군요.

     글샘: 그러면 이번엔 결론 부분으로 넘어가 짚어 보자꾸나. 잘 쓴 단락임에도 논술의 기본 중 하나인 `일치'에 소홀한 게 흠이란다.
     글머리에서 `신언서판'을 다루었다면 마무리에선 `오늘날 시각에서 재해석한 신언서판'의 의미를 덧붙이는 게 공감을 얻을 수 있지.
     이러한 기법은 논술뿐만아니라 문학작품이나 수필에서도 마찬가지야.
     일본의 베스트셀러 작가 사이토 다카시(메이지대학 문학부 교수)가 쓴 `원고지 10장을 쓰는 힘'이라는 책에 그런 내용이 나온단다.
     “무엇을 쓸 것인지 키워드를 설정하고, 키워드를 기초로 세 개의 주요 콘셉트, 즉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을 정리하라. 그런 다음에 그 세 개의 콘셉트를 연결해서 글을 구성하라.”
     바로 `일치'를 중시하라는 얘기야.
     또 마지막 두 문장 `빛 좋은 개살구의 빛에 현혹되지 말자. 그 빛이 10년, 20년 후에도 아름다울지 모르는 일이다'라는 문장은 차라리 빼버리는 게 좋아. 수필처럼 `예쁘게 포장한 글'이 되는 바람에 논술에 어울리지 않는 문장이지.

     글짱: 마무리를 보완하려면요?
     글샘: `겉으로 화려하지는 않지만 속이 꽉 찬 사람이 겉보기에 예쁜 사람보다 호감이 간다'식의 표현을 `언행(言)이나 글(書), 그리고 판단력(判)으로 부족한 신(身)을 채울 수 있도록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식으로 재구성해 자기 주장을 펼치는 방법도 있겠지.

     일반적으로 가치를 따질 때 보편적이고 지속적인 가치를 `높은 서열의 가치' 라고 한다. 사람마다 미의 기준이 다르고, 시대에 따라 미의 기준은 변한다. 또 나이를 먹으면서 외모도 변하므로 `외모'로써 얻는 가치는 높은 서열의 가치라고 할 수 없다. 반면에 `선'과 `덕'이라는 내적인 가치는 동서고금을 막론해 보편적인 진리이다. 이제는 언행이나 글, 그리고 판단력으로 부족한 `신'을 보충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글샘: 예문을 쓴 학생이 글샘의 첨삭 조언을 받은 뒤 다시 다듬은 결론 단락이야. 어떻게 바뀌었는지 처음 글과 비교해 보거라.(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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