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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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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추억을 찾아 (25) 진주 서부시장

  • 기사입력 : 2005-08-2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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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갓 따온 호박·더덕… 펄떡펄떡 미꾸라지…

      "오데서 이런걸 보겠노"


      시외버스가 도착하면서부터 장이 서기 시작한다.

      함양. 산청 등 농촌에서 갓 장만한 오이. 호박들을 바리바리 싼 보따리를 들고 내리는 할머니 아주머니들이 도로가를 점령하면서 서부시장은 비로소 활기를 되찾는다.

      햇살이 어느 정도 퍼질 때쯤 아침 설거지를 끝내고 장에 가면 딱 알맞은 시간이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만나는 직거래 장터
      진주는 농촌을 끼고 있는 반농도시답게 장날이면 서부경남권 농촌에서 몰려드는 생산자들이 길목 양편으로 전(廛)을 차린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만나는 직거래 장터다.

      그래서 밭에서 갓 따온 호박이며 오이. 부추 등 500원짜리 상품이 즐비할 정도로 싸고 싱싱하다.
      지리산 등 산에서 캔 산도라지와 더덕. 햇배도 벌써 얼굴을 내민다.

      농산물 뿐 아니라 논고랑에서 잡았다는 미꾸라지까지 기운차게 퍼덕거린다.
      “아이고 우리 아저씨가 잡아와서 끓여 먹자 하는 걸 용돈할라고 가져왔다 아닙니꺼.”

      시골 할머니들이 쌈짓돈 장만하러 장을 많이 찾다보니. 쓰레기 치우는 비용으로 거두는 자릿세도 300원에서 500원에 받는다.
      이 돈마저 안 내려고 꾀를 쓰는 할머니들이 많다고 진주 서부시장 상사 관계자는 귀띔한다. 

      그 사이 한 아주머니가 할머니에게 강낭콩을 보이며 국산이 맞는지 물어본다.
      “내 눈으로 안 보면 몰라. 사기 싫으면 사지 말고.”
      “맞다 이거. 왜 사람을 못 믿노?”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생산자와 소비자들로 꽉 차는 길바닥 장터엔 가격흥정만 있는게 아니다.
      국산이 ‘맞다’ ‘아니다’는 실랑이도 요즘 장터에선 쉽게 접하는 풍경이다.

      # 옛 추억과 향수가 느껴지는 곳
      그곳에 가면 주름잡힌 얼굴과 굳은 살이 박힌 손가락 마디로 한시도 쉬지 않고 손놀림을 하고 있는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골목길에 일렬로 줄지어 앉아서 고구마줄기와 마늘. 부추를 까거나 다듬고 있는 부지런한 할머니들…. 이제는 먼길 떠나고 없는 할머니 혹은 어머니 생각에 가슴이 아려온다.

      이뿐이랴. 다슬기며 논고동 등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토속적인 상품도 구경할 수 있고. 운 좋으면 감자떡 등 어렸을 때 주린 배를 채웠던 그 맛도 다시 맛볼 수 있다.

      순박함은 촌로들의 얼굴에서만 묻어나는게 아니다.
      “벌써 햇배가 나왔네요”라고 인사를 건네자 “하모. 너무 달다”며 한개를 깎아 맛 보라며 내민다.
      한 소쿠리 8개에 5천원인데 한개 더 얹어준다는 인심도 넉넉하다.

      함양 산청 등 서부경남서 모여든 보따리 장수들

      산도라지 햇배 등 풀어놓고 흥겨운 실랑이

      시설현대화 '난항'… 상권 형성 안돼 상인들 울상


      # 아직도 표류중인 시설현대화
      도심속 공동화 현상?

      구시가지의 중심지인 서부시장을 시설현대화 하기 위해 옛 공설시장에서 법인체로 전환한 지 15년째이지만 시설현대화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난항을 겪고 있다.

      진주시 봉곡동 31 1천405평에 240여개 점포가 들어 서 있지만 현재 영업을 하고 있는 점포는 30%정도에 불과하다.
      한때 점포당 매매가가 1억원을 호가하던 것이 지금은 5만원에 점포세를 내도 찾는 사람이 없다.

      “언제 점포가 뜯겨 나갈지 모르기 때문에 리모델링은 고사하고 그저 손놓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 상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다 보니 오일장이 서는 2·7일에 골목 난전만 장이 설 뿐 상권 형성은 전혀 안되고 있다.

      30여년째 철물점을 하고 있다는 아주머니는 “옛날부터 하던 것이니까 못 내버리고 하는 거지. 장사 말도 못꺼낸다”며 손사래를 친다.

      ‘진주 서부시장 상사’ 정우식(52) 대표는 “10여년 전 진주 신안동 도서관 바로 앞 580여평에 가설시장까지 지어놨지만 시설현대화 사업은 하세월”이라며 “서부시장 자체 개발이 이뤄지지 않으니까 주변 상권도 아사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15년째 표류하고 있는 서부시장 현대화를 위해선 지자체가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큰 틀을 갖고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발벗고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장터사람들

      ★다슬기 할머니 정임순(75)씨  "요거 팔아 술 한 잔 나누는 재미에 오지"

      “오지 마소~ 사진 찍는데.”
      다행이다. 아니 솔직히 고맙다.

      PR시대에 살고 있다고들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사진을 찍으려면 얼굴을 돌리는 게 다반사다.
      하물며 포즈를 취해 주는 할머니가 얼마나 고마울까.

      “오늘 장에 내다 팔기 위해 어제 소남강에 가서 잡았다 아이가. 그래서 싱싱하다”며 손님을 붙잡지만 ‘비싸다’며 몇번 흥정을 하다 지나친다.
      “비싸다고 비싼 게 아니고 싸다고 싼 게 아니다”며 “까딱 잘못하면 중국 꺼 산다. 전화번호까지 줄께”라며 ‘국내산’임을 강조한다.

      “다슬기를 삶아 놓으면 물이 마치 옥수같이 새파랗다”고 품질 자랑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음력 3월말부터 벼 벨때까지 물이 따뜻할 때 시냇물이나 강 계곡에서 잡을 수 있는 다슬기.

      다슬기가 간이나 피로회복에 좋다고 알려지면서 찾는 사람이 많아 소일거리 치고는 짭짤한 수입원이란다.
      1㎏에 1만~1만5천원으로 비싼 편.

      정 할머니는 “해질 무렵 냇가에 가면 바위나 돌 등에 새까맣게 붙어있는 다슬기를 많이 잡을 수 있다”며 “하지만 나이도 나이인지라 물에 처박힐까봐 땅을 짚고 다닌다”고 말했다.

      “집에 있으면 뭐할끼고. 자식들 용돈 줘도 움직여야 푸지지(돈이).”
      다슬기를 팔아 올리는 수입은 하루 2만~3만원.

      술 한잔 받아 마시고. 친구도 받아 주는 맛에 장날마다 찾는다.
      선선한 바람이 불고 강물이 차가워지면 정 할머니는 산도라지를 파러 산에 오른다.
      다슬기와 산도라지는 정 할머니의 녹록한 수입원이자 오랜 소일거리다.

      ★현대건강원 이기근사장 "내 자식 먹을 것처럼 달여야 약이 돼"
      “우리 가족이 먹는다고 생각하고 엑스를 내죠.”
      건강의 파수꾼 이기근(60) 사장.

      학창시절 장날이면 집앞 둑에 펼쳐지던 닭. 개전을 보며 자란 탓인지 자연스레 이 일을 시작. 25년여 세월이 흘렀다.
      민물고기와 염소. 약초 등 웬만한 것들은 이 사장의 손을 거쳐 약(엑스)으로 탄생한다.

      압력솥에 안치면 기계가 알아서 다 하는데 무슨 노하우가 있겠느냐고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강산이 두번 반 변하는 세월동안 감각적으로 손에 익힌 불 세기와 압력 조절은 쉬이 흉내낼 수 없다. 물론 좋은 재료를 구입. 깨끗하고 정성껏 달이는 것은 기본이다.

      재료는 주로 산청이나 산청 덕산 등 서부 경남에서 가져온다.
      80년대 초만 해도 산전 산후 딸아이 손을 잡고 드나드는 친정어머니(시어머니)의 발걸음이 문전성시를 이뤘는데. 지금은 그때의 3분의 1도 손님이 들지 않는다.

      “일주일에 한명 정도 올까 말까. 도통 장사가 안돼”라며 손사래를 치는 이 사장은 “그래도 해야지, 나이 60인데. 아직 막내도 결혼하지 않았고. 할게 없지 않느냐”고 씁쓰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부부가 같이 하니 틈틈이 짬도 낼 수 있고. 의지할 수 있어 든든하다.
      이 일을 하면서 보람도 많았다.

      몇년 전인가. 한 아주머니가 시집은 보내야 하는데 몸이 약한 딸의 손을 잡고 남해에서 이곳까지 찾아 왔다.
      그때 내 자식에게 먹일 약처럼 염소 엑스를 정성껏 내서 줬는데. 후에 시집 보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보람을 느꼈다고 회고한다.
      ‘엄마 손’ 같이 기울이는 정성이 바로 약효라는 것은 아무리 세월이 변해도 불변하는 진리다.

      ▲진주 서부시장은= 광복 이후 지금의 장의 모습을 갖췄다. 처음 장이 들어설 때만 해도 주변엔 논과 미나리꽝이었고. 둑길 따라 개와 닭 등 작은 가축시장이 열렸다. 지금도 서부시장에는 ‘개전’ 거리가 있고. ○○건강원 등이 10여곳 자리잡고 있다. 많을 때는 20~30여 곳이 성업을 이뤘다고 한다.

      ▲장터 구경도 식후경= 시설현대화가 15년여째 표류하고 있다 보니 먹거리도 별 신통찮다. 원래 진주에 가면 진주 비빔밥을 맛봐야 하지만 정작 시장통에선 맛보기 쉽지 않다. 산청 등 시골에서 버스 타고 물건을 팔러 온 할머니들이 2천원 정도 하는 국수와 국밥 등으로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한다.

      ▲주변 가볼만한 곳
      ★진주 촉석루= 경상남도문화재 자료 제8호. 남강가 바위벼랑 위에 장엄하게 높이 솟은 촉석루는 영남 제일의 아름다운 누각이다. 고려 고종 28년(1241)에 창건하여 8차례의 중건과 보수를 거쳤다. 이 누각은 장원루(壯元樓)라고도 하였으며. 전쟁 중에는 진주성을 지키는 지휘본부였고. 평화로운 시절에는 고시장(考試場)으로 사용되었다. 6·25전쟁으로 소실된 것을 시민들이 힘을 모아 진주 고적보존회를 만들어 1960년에 복원하였다.

      ★진양호= 지리산에서 흘러내린 경호강과 덕천강이 만나 형성된 서부경남의 유일한 인공호수로 각종 위락시설을 고루 갖춘 관광객의 쉼터이다. 이곳은 경남 유일의 동물원을 두고 있어 호랑이. 사자. 곰. 독수리. 기린 등 야생동물을 직접 관람할 수 있어 어린이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은 곳이다.
      3층 규모의 현대식 휴게 전망대로 시원하게 트인 넓은 호반과 주변 시가지. 지리산·와룡산·자굴산·금오산 등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으로 진주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는 이곳은 영화 하늘정원(안재욱. 이은주 주연)의 촬영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진주박물관= 국립진주박물관은 1984년에 국립박물관으로서는 여섯 번째로. 사적 제118호로 지정된 진주성내에 개관하였다. 개관 당시에는 가야문화를 중심으로 한 박물관이었고. 그 후 임진왜란 삼대대첩지였던 진주성이 지닌 역사적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해 임진왜란을 주제로 하는 역사박물관으로 1998년에 재개관하였다.
      본관 건물은 우리나라 전통목조탑을 석조 건물로 형상화한 것으로 건축가 김수근 선생의 대표적 작품이며.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을 갖추고 있다.

      ▲주말 열리는 장
      ★8월27일= 진주 지수장. 통영 중앙장. 김해장. 밀양장. 창녕 대합장(십이리장)·남지장. 고성 영오장. 남해읍장. 하동장. 함양장. 거창 신원·위천장. 합천 야로·삼가장.

      ★8월28일= 진주 일반성장. 진해 경화장. 장유장. 밀양 수산장. 양산 신평장. 의령장. 함안 칠원장. 창녕장. 고성 당동장. 남해 동천장·고현장. 하동 진교장·옥종장. 산청 생초장·문대장. 합천장  김다숙기자 ds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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