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7일 (토)
전체메뉴

세상사는 이야기 -사랑의 손길

  • 기사입력 : 2005-08-25 00:00:00
  •   
  •  강현순(수필가)

     언젠가 누굴 만날 일이 있어서 커피숍에 간 적 있다. 혹여 늦을까봐 서둘렀던 탓인지 오히려 약속 시간보다 10분이나 빨리 도착하게 되었다. 실내의 감미로운 음악에 도취되어 모처럼 음악적 분위기에 빠져들려 할 때였다.

      내 옆자리에서 차를 마시고 있던 예닐곱 명 정도의 중년 여성들이 밝은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호기심이 발동하여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귀를 세우게 되었다.

      사오십 대쯤으로 보이는 그들은 차림새나 대화 내용으로 짐작컨대 고학력자에 생활 수준도 높아보였다. 회장도 총무도 없는 원탁회의를 하고 있는 그들은 한 달에 한 번씩 그 커피숍에서 만나는 듯 했는데 뜻밖에도 한 달 동안 자신들이 자원봉사했던 이야기를 서로에게 들려주는 것이었다.

      모르긴 해도 그들은 고생을 전연 해보지 않은 사람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누군가가. 자식에게 버림을 받고 식물인간인 양 무덤덤하게 살아가는 어느 가난한 할머니를 돌보고 왔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더 따뜻하게 더 편하게 해드리지 못하고 온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고 하자 일행은 공감을 하며 안타까워하는 모습이었다.

      10분간의. 그야말로 수박 겉핥기식 어림짐작이었지만 그들은 ‘참 아름다운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 경제가 어려워지자 이제는 직장도. 가정도 예전의 따뜻하고 안정된 공간만은 아닌 모양이다. 그러다 보니 사랑하는 가족에게서. 믿어왔던 직장에서 쫓겨나거나 버림받고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고 한다. 그들은 자신이 그렇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던 터라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한 채 차가운 세상에 내동댕이쳐진 것이다.

      그래도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라는 생각이 가끔씩 드는 것은. 이 세상엔 비정한 사람들보다는 가슴 따뜻한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이다.

      헐벗고 굶주려가며 모은 전 재산을 자신보다 불우한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선뜻 내놓는 사람. 아무런 혈연도 연고도 없는 장애우의 손발이 기꺼이 되어주는 사람. 부모도 싫다며 버린 자식을 입양하여 금지옥엽 같이 온 사랑을 쏟는 낯선 외국인들…. 그런 사람들을 보면 나는 천사를 떠올린다.

      ‘자원봉사’. ‘불우이웃돕기’는 특별한 사람만의 몫은 아니다.

      ‘한 사람이 못을 박으면 딴 사람은 그 못에 모자를 건다’라는 영국 속담처럼 남을 위한 일이란 반드시 크고 거창한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자신의 능력에 알맞은 자원봉사란 어떤 게 있을까 한 번 생각해보면 좋겠다. 지금은 그들에게 베푸는 입장이지만 살다보면 언젠가 남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가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고나 또는 재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면 우리 자신들도 준비된 장애인이자. 불우이웃이기 때문이다.

      그날 커피숍에서 만난 ‘참 아름다운 사람들’은 한결같이. 아직은 그 불우한 사람들보다 자신들이 건강하다는 사실이. 아직은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기에 남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하다며 겸손하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남에게 작은 기쁨을 안겨주니 자신들은 몇 갑절의 큰 기쁨이 찾아오더라고도 하였다. 그런 그들이 존경스러워 넌지시 그들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 따뜻한 사랑의 손은 어디서나 항용 보는 평범한 손이되 결코 평범한 손이 아닌. 그야말로 아름다운 손이었다.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