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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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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린 시인이 찾은 통영 달아공원

  • 기사입력 : 2005-09-2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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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늘에 닿은 바다의 그리움

      말짱하다.

      보름을 향해 가는 들물의 바다는 깊은 데 날푸른 속내를 감추고 앓는 품 하나 없이 넘너른하다. 어망 줄에 내린 꽃멍게를 먹이고 애기 굴을 먹이고 가두리 양식장에 어린 생선들도 다 안아 먹인다. 일하는 바다. 그 모든 수고가 그리움이 아니라면…! 가슴에 말로 다 못할 애달픔을 품고서 오늘도 바다는 일한다.

      통영시 산양읍 미남리 달아공원.

      시내에서 벗어나는 옛 통영대교를 건너 미수동을 거치면서부터 공원으로 이르는 길은 소롯해진다. 눈앞에 끊어졌다 이어지는 바다의 자락은 청보라빛. 산이 들면 초록으로 막아서다가 동백나무 사이로 내려다보이는 조각바다는 저만큼이다.

      그렇게 10분 쯤 달렸을까? 툭 터진 해안언덕을 뒤춤에 두고 ‘달아공원’ 알리는 조촐한 이정표가 길을 멈추게 한다.

      달아공원.

      내가 아직 소녀였을 적에 그 언덕에서 노래 부르던 곳. 내가 아직 처녀였을 적에 그 바다의 고향됨을 으스대던 곳. 내가 아직 풋시인이었을 적에 그 물의 그리움에 눈물 흘리던 곳. 그 곳에서 길은 나를 멈춘다.

      아득하다. 그 해구에 오르면 비로소 바다는 저리 아득하다. 한 자락 파도도 없는 물길 밖으로 바다는 거듭 열리고 열려 시야의 모든 것이 아득해진다.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노라면 가만한 물길처럼 내 혼의 곧은 목이 주춤. 낮아진다. 어느 순간. 기우뚱 수면이 높아지고 안정한 그림처럼 섬들이 떠오른다.

      하늘 위의 섬. 그렇다. 달아공원에 서면 하늘 위에 뜬 섬을 보게 되는 것이다! 섬과 섬 사이로 첩 첩 펼쳐진 바다 자락들이 저마다 다른 색감을 이루어. 한눈에 들어오는 먼 바다의 그림이 만들어내는 착시겠으나 번번이 맞이하는 이 ‘하늘의 섬’은 행복한 실착의 세계이다. 그 충만한 실착의 찰나에서 나는 문득. 하늘까지 닿은 물의 그리움을 헤아리는 것이다….

      주인 없는 그리움이 어디 있겠는가? 허면. 저 바다의 그리움의 근원은 무엇인가? 하지만 인생이여. 네 팔은 짧아서 저 바다의 뿌리를 만질 수가 없구나. 하물며 그 물의 뿌리가 바다의 내심에 닿아 있다는 것을 누가 장담할 수 있을 것인가…!

      모르는 사이에 놀이 진다. 아득하던 시야가 흐리게 풀리며 내 안의 바다가 가만히 눈을 뜬다. 순은으로 반짝이며 꿈꾸는 바다. 눈부신 인식의 바다가 열리는 것이다.

      무엇인가 팽팽하게 당기는 힘줄. 그토록 강렬한 설렘으로 바다의 내심이 부풀어 오른다. 만조의 바다가 속삭인다. 모든 산호들이 한꺼번에 불을 켜고 물풀들의 머리채가 부드러워진다. 바다가 노래한다. 그 숱한 썰물의 탄식으로도 이기지 못하는 뿔고둥의 노래로 노래한다. 바다가 흐느낀다. 그 위로 샘물 같이 솟아오르는 만월!

      아. 그렇구나.

      기다림의 끝은 여기 오롯하고 두근두근 물의 떨림. 떨리는 은빛 물의 악보 위에 천파 만파 여울지는 바다의 기쁨.

      아. 그렇구나.

      달빛은 바다를 어루만진다. 이윽고 달은 바다를 힘껏 끌어안고 한껏 가슴을 연 만조의 바다는 폐부 깊숙이 달빛을 새긴다.

      그래. 그랬구나. 저 물의 노래를 다 적을 수 있다면 세상의 모든 시인들은 그 피리를 꺾으리. 저 물의 그리움을 측량할 수 있다면 세상의 모든 자와 됫박은 헛되어 내버려지리….

      저녁은 까무룩 잠이 들고 베일을 검게 내린 바다의 속내를 헤아릴 수 없다. 묘연하다. 얼마나 가슴 떨리는 사랑을 나누며 오늘도 이만큼 깊어질는지 저 물의 애달픔을 재지 못한다.

      제 속에서 다시 짠물 자아내며 출렁이는 바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푸른 가슴살로 오늘도 바다는 일한다. 참으로 사람이 알 수 없는 사랑으로 바다는 오늘도 사랑한다. 사랑. 아모르(amour). anti- morte. 모든 죽음을 거부하기 위하여. 모든 살림(生)을 살기 위하여 생명의 이랑을 걸구는 바다. 소라를 키우고 애기고둥을 키우고 청새리. 꽃돔. 병어. 동갈민어. 미역. 톳. 청각채를 기르는 것이다. 그 모든 섬김이 그리움이 아니라면…! 소금밭의 염부는 날마다 바다에서 소금을 거둬가면서도 저 바다의 눈물을 알지 못한다. 차마 다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조예린 시인은>

      1968년 경남 통영 출생으로 1992년 계간 ‘시와 시학’으로 등단했다. 2004년 편운문학상(신인상) 수상. 시집으로 ‘바보당신’(1996년) ‘나는 날마다 네게로 흐른다’(2002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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