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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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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화왕산

  • 기사입력 : 2005-10-0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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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녕 화왕산] - 억새의 노래따라 가을로 걸어갑니다

      아마 웃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창녕 화왕산 말입니다. 학창 시절부터 열번도 넘게 갔습니다.

      하지만 한번도 정상까지 올라가 본 적은 없었지요. 늘 밑에서만 맴돌았죠. 당시에는 정상의 풍경보다 친구들과 술마시는게 더 좋았나 봅니다.

      문득 억새가 보고싶어졌습니다. 10월 초. 시기도 좋았습니다. 취재라는 구실로 단숨에 내달렸죠.

      저 멀리 화왕산이 눈에 들어옵니다. 산은 아직 가을옷을 갈아입지 않은 듯했습니다. 행여 헛걸음은 아닌지 걱정이 됐습니다. 하산한 등산객의 말로는 억새가 꽤 괜찮답니다. 안도의 한숨을 쉽니다.

      옥천매표소에서 길을 올랐습니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 널찍한 바위로 잘 정비된 계곡은 무릉도원이 따로 없습니다.

      한걸음 한걸음 올라봅니다. 임도가 잘 닦여 있어 속도도 제법 붙습니다.

      1시간이 조금 지났습니다. 능선에 올랐습니다. 너와집과 초가가 여러 채 보입니다. 몇년 전 방영됐던 드라마 허준의 세트장입니다. 이곳에선 왕초. 조폭마누라. 상도. 대장금. 다모까지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로 인기라고 합니다. 음료수 파는 아줌마의 자랑입니다.

      저 멀리 높은 돌담이 길게 늘어진게 보입니다. 어렴풋이나마 억새들도 보입니다. 가슴이 콩닥거립니다. 쏜살같이 달려갑니다.

      화왕산성 동문을 내딛는 순간.

      입을 다물 수 없습니다. 탄성이 절로 납니다. 눈앞이 온통 은빛 물결로 넘실거립니다.

      후회가 밀려듭니다. 왜 여러 번이나 오고도 이곳까지 올라와 보지 못했을까요. 게으름을 책망해봅니다.

      단풍산이 화려하다면 억새산은 소박합니다. 아니 신비합니다.

      누구는 억새를 여성에 빗대기도 했다지요. 하루에 세 번 모습을 바꾸기 때문이랍니다.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는 은억새. 붉은 노을에 비껴 금빛으로 반짝거리는 금억새. 달빛을 머금으면 솜억새라고 합니다.

      가까이 들어가 봅니다. 억새는 생각보다 큽니다. 제 키를 훨씬 넘습니다. 잠시 억새를 눕히고 앉아봅니다. 푹신한 게 웬만한 방석보다 낫습니다. 바람까지 막아줘 포근함마저 듭니다.

      가만히 눈을 감아봅니다. 바람이 지날 때마다 사각사각 소리를 냅니다. 가끔 풀벌레도 화음을 넣습니다. 등산객들의 억새 밟는 소리도 박자를 맞춥니다. 모두가 ‘가을 교향악’입니다.

      억새에겐 배울 게 많습니다. 그 중 하나를 고른다면 더불어가는 삶이지요.

      나무는 일정한 거리들 두려고 노력한답니다. 서로의 영역을 지키는 거죠. 억새는 그 반대입니다. 촘촘히 붙어 있죠. 바람이 불면 서로 받쳐주고 비가 오면 토닥거려줍니다. 온갖 세파를 부대낀 정으로 이겨냅니다.

      그렇게 수백년 동안 지내왔습니다. 차가운 소슬바람에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천지가 요동칠수록 더욱 영글어 가나 봅니다.

      한마디로 정말 억센 놈이지요. 아마 본래 이름은 억새가 아닌 ‘억세’였나 봅니다.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요놈들을 마음 속 카메라에 소중히 담아봅니다.

      아 참! 오는 8일에는 이곳에서 억새축제가 열린답니다. 오후 6시 해질녘 황혼. 산신제를 시작으로 통일기원 횃불행진과 캠프파이어로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는답니다. 글·사진= 최승균기자 july9th@knnews.co.kr

      ▲상식 하나= 대부분 억새와 갈대를 혼동하는 경우가 있다. 억새는 산이나 비탈에. 갈대는 물가에 무리를 이뤄 산다는 점이며. 억새의 열매는 익어도 반쯤 고개를 숙이지만 갈대는 벼처럼 고개를 푹 숙이는 점이 다르다.

      ▲산행 코스
      화왕산으로 오르는 대표적인 코스는 두 가지. 옥천매표소에서 임도를 따라 가면 관룡사 표지판이 나온다. 여기서 8부 능선까지 올라가면 MBC 허준의 촬영지였던 세트장이 있다. 10분만 쭉 따라가면 화왕산성 동문. 너른 대지에 은빛 물결 찰랑거리는 십리 억새밭을 볼 수 있다.

      길이 평탄해 어린이나 노약자 등 가족과 함께 오르기 좋다. 정상까지 4.5㎞. 2시간 정도. 다른 코스는 자하곡 코스. 매표소를 지나 길가에 먹거리를 파는 행상을 지나면 본격적인 코스가 나온다. 자하곡 산림욕장 코스로 올라가면 가파르지만 창녕시가 한눈에 내려보이는 경관이 일품이다. 정상까지 1시간 20분 정도. 3.8㎞

      ▲가는 길= ★구마고속도로-창녕IC-창녕군청- 화왕산 자하곡 매표소(1코스) ★구마고속도로-창녕IC-창녕군청-자하곡매표소-계성면-옥천매표소(2코스)

      ▲주변 볼거리= 창녕진흥왕척경비. 목마산성. 창녕박물관. 교동고분군. 계성고분군. 송현동석불좌상. 관룡사. 만옥정공원. 우포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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