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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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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그 때 그 시절로 "나 돌아갈래"

  • 기사입력 : 2005-11-1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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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섬진강 물길따라 추억여행 - 전남 곡성 기차마을


      가끔 그리울 때가 있다.
      덜커덩거리며 레일 위를 시끄럽게 달리던 비둘기호 기차.

      아마 9살 꼬맹이 시절이리라. 스산한 바람이 부는 요즘 같은 초겨울, 엄마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투박하게 생긴 기차에 몸을 실었다.
      띄엄띄엄 떨어져 희미한 불을 켜고 있는 가옥들, 가을걷이를 끝내고 쭈삣한 밑동만 남겨 논 논들, 차가운 바람 한줄기에 이리저리 출렁거리는 강물.

      빠끔히 차창 밖을 내다보면 영사기 돌린 듯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는 모습은 어찌나 신기하던지.

      행여나 똑같은 장면에 싫증이 날 때면 삶은 달걀과 오렌지 색 환타병을 건네며 달래주던 어머니의 기억은 아직도 가슴에 선명한 자국으로 남아있다.
      사람은 추억을 먹으며 산다고 했던가. 당시엔 아무런 감흥도. 몸을 비틀 정도로 지겹던 순간도. 지금 생각하면 빙그레 미소가 지어지는 건 그 때문이리라.

      '뿌웅~' 기적소리 울리며 추억속으로

      섬진강 따라 펼쳐지는 수채화같은 풍경 보고 있노라니

      삶은 달걀 ·오렌지색 환타병 건네던

      내 어머니의 기억 떠오르는데…

      '어린 시절로의 시간여행’.
      지난 15일 다녀온 전남 곡성 기차마을은 꼭 이런 기분을 느끼게 했다.

      남해고속도로 곡성 IC를 내려오는 순간, 잘 닦여진 도로와는 달리 한산한 마을 전경에 그냥 추억 속으로 빨려든다.
      읍내 일부 신축 건물을 제외하면 이곳은 아직도 1970년대.

      새마을 운동으로 농촌개량이 활발했던 당시의 모습이 세월이 흐르면서 빛을 바랜 사진처럼 느껴진다. 녹슨 양철문의 방앗간. 촌티 물씬 나는 마을 홍보용 간판. 편도 1차로를 사이에 두고 늘어선 허름한 가옥들. ‘반공 방첩’이란 글귀가 희미하게 남아있는 담벼락.

      동네 안으로 들어서면서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전으로 되돌아간 기분이다.
      아직 도심의 개발 붐을 타지 않은 다소 원시적(?)인 풍경에 안타까워해야 할지 다행스러워해야 할지 아리송하다.

      10분 정도 들어가자 어느새 (구)곡성역을 단장해 만든 기차마을. 1933년에 개청된 역사는 복선화 사업에 의해 새로운 철로가 만들어지면서 이용하지 않게 되자 곡성군이 테마공원으로 조성했다.

      색 바랜 나무로 세워진 고풍스런 역은 영화에서나 봤음직하다. 실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강제 징집된 두 형제가 어머니와 이별하는 안타까운 장면이나. 최근 드라마 ‘토지’에서 일본군 출정식을 찍는 등 옛 역을 배경으로 한 영화 세트장으로 인기라고 한다.

      개찰구를 빠져 플랫폼으로 들어가면 본격적인 추억여행이 시작된다. ‘포르르’ 날아드는 메뚜기도. 군데군데 핀 코스모스도 마냥 즐겁다. ‘은하철도 999’라는 무궁화호 객차를 개량한 ‘열차 카페’의 상호는 웃음을 짓게 한다.

      선로에는 ‘미카3’라는 동화속 주인공 같은 이름의 증기열차가 두 대가 있다. 그 중 한대는 전시용이란다.
      3량의 객차를 연결한 앙증맞은 열차는 김을 모락모락 내뿜으며 출발을 준비한다.

      객차에 오르자 소풍 나온 유치원 꼬마아이들이 일찌감치 자리를 차지했다. ‘디카’로 연신 찍어대는 아이들의 모습에 세월의 흐름을 느낀다.
      ‘뿌웅~’ 고막을 찌르는 기적소리가 울리고 열차는 출발, 여느 열차보다 유난히 진동이 심하다. 증기열차는 10㎞ 떨어진 가정역까지 1시간 코스로 천천히 왕복 운행한다.

      마을을 벗어나자 국도 17호선과 나란히 섬진강변을 달린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섬진강은 누런 색 삼베옷을 펼쳐놓은 듯한 백사장이 있는 하동의 섬진강과는 사뭇 다르다.

      섬진강 시인으로 유명한 김용택 시인의 ‘섬진강1’이 문득 연상된다.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 토끼풀꽃/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어둠을 끌어다 죽이며/ 그을린 이마 훤하게 꽃등도 달아 준다/(중략)/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좁은 폭의 강은 마치 시골 하천 같지만 주위의 수풀과 협곡은 잘 그려진 한 폭의 수채화다. 짙은 청록의 강물색은 그의 시처럼 220㎞에 달하는 대장정의 근원임을 어렴풋이 짐작케 한다.

      ‘도깨비살’이라는 바위 무더기에 대한 문화유산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눈길 잡아채는 갈대를 스쳐지나기를 20여분.
      열차는 기적소리를 길게 토해내며 반환역인 아주 조그마한 가정역에 도착한다. 짧은 기차여행이지만 아련한 ‘그 때 그 시절’로 돌아가기는 충분하다.

      어릴 적 첫 기차를 타던 기억과 섬진강에 대한 상념에서 깨어나면서 영화 ‘박하사탕’의 마지막 장면이 뇌리를 스친다.
      “나 돌아갈래.” 글= 최승균기자 july9th@knnews.co.kr 사진= 김승권기자 skkim@knnews.co.kr

      ▲곡성 기차마을은
      곡성군이 1998년 전라선 복선화 공사로 발생한 구 전라선 19.7㎞를 그대로 보존해 열차테마공원으로 만들었다. 현재 가정역까지 섬진강 협곡을 따라 17㎞ 구간에 관광용 증기열차가 운행된다. 관광용 증기열차는 평일 2회, 토일 공휴일엔 하루 4회 운행된다. (구)곡성역에는 전시용 증기열차. 철로자전거. 미니기차. 열차카페 등이 있어 가족나들이 코스로 좋다. 다만 미니기차는 현재 임시운행중단 상태다. 인근에는 청소년야영장. 자전거 하이킹. 심청마을 등 가볼만한 관광코스가 많다. 먹을거리는 참게매운탕과 은어구이가 별미다. 식당가는 압록유원지에 대부분 위치해 있다.
    (구)곡성역 ☏061-363-7254. 곡성군 문화관광과 ☏061-360-8224.

      ▲가는길
      ★내차 타고 가는 길= 남해고속도로를 쭉 들어가다보면 순천을 지나 곡성IC에서 내려 우회전하면 된다. 10여분 정도 도로를 따라 들어가면 기차마을에 도착한다. 곡성에 들어서면 표지판 안내가 잘 돼 있어 찾기 쉽다.
      ★열차타고 가는 길= 부산 부전역에서 출발하는 경전선이 있다. 곡성까지 가는 열차는 마산역(무궁화호 오전 6시 29분. 오전 9시02분 출발)에서 순천역으로 간 다음 곡성역으로 가는 열차를 갈아타야 한다. 순천에서 30분정도 대기시간 을 포함하면 곡성까지 모두 4시간이 소요된다. 돌아올 때는 곡성역(무궁화호 오후 3시7분 출발)에서 순천역(오후 3시 42분 도착)으로 온 다음 마산행(무궁화호 오후 4시 40분 출발) 열차를 타면 저녁 8시 3분에 마산역에 도착한다.
    기차마을인 (구)곡성역까지 오려면 현재 곡성역에서 내려 10분 정도 마을로 들어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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