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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7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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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생명과학의 윤리

  • 기사입력 : 2005-11-1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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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승훈 (정치부 차장대우)

        30대 이상의 나이라면 어릴 때 ‘다리 밑에서 주워온 아이’라는 고모·삼촌이나 형·누나의 이야기를 듣고 한 번쯤은 자신의 출생 비밀로 우울했던 적이 있을 것이다. 결국 엄마 품에서 자신이 가족의 혈연적 일원임을 확인하는 것으로 끝나는 이 오래된 장난은 일종의 통과의례였다.

        황우석 박사팀이 난자기증 문제로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학자가 난자기증 등 연구과정의 문제로 구설수에 오르는 것 자체가 안타깝다. 특히 미국의 과학자들이 사전에 모의라도 한 듯이 황 박사팀에 문제를 제기하며 결별을 선언하는 것은 국가적 오만함마저 풍긴다. 그러나 인간의 난자와 정자가 ‘생명’ 그 자체라는 것에 대해서 좀 더 강한 윤리적·사회적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문제 제기의 측면에서 이번 사건의 기여가 없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의 발전이 이미 신의 영역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는 현대에서 생명과학과 윤리의 문제에 대한 경고는 벌써 오래 전에 우리 사회 곳곳에서 제기되어 왔다.

        소설이긴 하지만 2016년 미래를 배경으로 독일의 17살 소년 카알 마이베르가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추적해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 ‘1999년생(샤를로테 케르너 지음)’은 충분히 충격적이다.
        출생 직후 입양돼 자란 카알은 체외수정 아기였다. 추적 끝에 카알은 학비가 없어 정자를 판 24살 의학도와 연구용으로 난자를 과학자한테 기증한 32살 불임 여자가 ‘유전적 부모’임을 확인한다. 그러나 카알은 아홉달 동안 자신을 품었던 ‘대리모’를 찾기 위해 추적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찾은 ‘대리모’는 놀랍게도 1999년 정부의 지원을 받아 한 생식 실험실에서 비밀스럽게 개발된 인공자궁 기계 ‘1 KG/AU’였다. “그것은 받침대에 걸려 있는 플라스틱 자궁. 부화 용기. 또는 인공 자궁이라고도 이름 붙여진 그런 것이었다.” ‘나의 어머니는 한낱 기계였다’라고 외치며 카알은 절규한다. 카알의 정체성 붕괴와 실존의 위기를 통해 작가는 ‘인간을 위한 생명과학’의 길에 우리가 얼마나 조심해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해 준다.

        기증받은 정자로 시험관 수정을 통해 태어난 미국의 15세 소년이 ‘합법적 방법’으로 자신의 ‘유전적 아버지’를 찾은 실제 이야기도 있다. 소년이 ‘유전적 아버지’를 찾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소년은 입 안을 면봉으로 문질러 얻은 세포를 인터넷 족보 사이트인 패밀리트리DNA닷컴(FamilyTreeDNA.com)에 보냈다. 이 사이트는 보유 중인 데이터베이스의 Y염색체와 이 소년의 Y염색체를 비교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의뢰한 지 9개월 만에 소년은 Y염색체가 비슷한 남자 2명을 찾아냈다는 연락을 받았다. 소년은 두 남자의 성(姓)과 자신이 태어난 불임클리닉에서 알아낸 정자 기증자의 생년월일을 또다른 사이트(Omnitrace.com)에 보내 검색을 의뢰했다. 두 남자 중 한 사람이 소년의 ‘유전적 아버지’로 밝혀졌다. 미국에는 벌써 수백만명의 유전자 정보를 갖고 있는 유료 사이트들이 영업을 하고 있는 형편이다. 정자 기증 등에 따르는 생명과학과 관련된 법률 보완이 시급함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이 자신의 다음 세대를 갖고 싶어하는 것은 거역할 수 없는 하늘의 윤리로 존중받아야 한다. 또 질병 치료를 위한 생명과학의 연구도 잠시도 멈출 수 없는 우리 시대의 과제이다.
        그러나 사회적 부모. 유전적 부모. 대리모 등 출생과 성장에 관한 문제를 한 개인의 실존적 입장에서 보면 전혀 다른 차원에서 볼 수도 있다. 자식이 부모를 선택할 수 없듯이 부모도 자식을 선택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회 속에서 자아를 확보해 가며 살아가야 하는 한 인간에게 자신이 ‘선택’되어졌다는 것은 참기 어려운 혼란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과학의 발전과 도덕률. 인간의 실존은 어느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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