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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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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강 시인이 찾은 진해

  • 기사입력 : 2005-11-3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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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에 스친 흑백의 기억들


      빈들에 나갔습니다.
      철탑과 철탑 사이
      전선 위
      검은 새 한 마리
      오래 앉아 있었습니다.
      눈이 시려
      잠시 허공으로 눈길을 내려놓았는데
      한 사람
      천천히 내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말없이
      저수지가 보이는
      한낮의 빈 주점으로 들어갔습니다.
      주인은 우리를 위해
      난로에 일찍 불을 넣었습니다.
      - 김승강. ‘세한도’ 전문

      진해가 눈물겨운 것은 봄날 핀 벚꽃이 질 때의 감상(感傷) 때문이 아니다. 진해가 눈물겨운 것은 진해에서 마산으로 넘어가는 구도로의 터널 아래에 섰을 때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시가지의 착한 지붕들 때문이다. 자신의 몸 위로 내려 꽂히는 햇살을 지붕들은 몸으로 안아낸다. 지중해 연안 국가들의 지붕이 빵을 구워내는 화덕처럼 붉은 색으로 달구어져 햇살을 구워내는 것과 달리 우리의 지붕들은 검은 무쇠솥의 흰 쌀밥처럼 담백하고 순결한 표정으로 햇살을 삶아낸다.

      지붕들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조금 위쪽에 구터널이 뭍으로 방금 잡혀 올라온 물고기의 입처럼 크게 입을 벌리고 있다. 그 입 속으로 바람이 연신 들락거린다. 그 입 속에서 진해의 바람이 시작되는 지도 모른다. 터널은 이미 용도폐기된 지(완전히 용도폐기된 것은 아니지만. 경제적 의미에서)가 오래다. 바람은 이를테면 붓이다. 이맘때면 터널 속에서 찬 바람이 일어난다. 찬바람은 먹을 듬뿍 먹은 붓이다. 바람은 종횡무진 허공을 내달리다가 턱턱 모필(毛筆)에 닿는 사물을 흑백의 담채로 터치한다.

      진해 집들의 지붕이 가장 잘 내려다보이는 곳에 포장마차 칼국수 집이 있다. 늦가을 어느 날 친구가 그 집 칼국수가 맛있다면서 앞장섰다. 칼국수 집에서 칼국수가 나올 때를 기다리며 막걸리를 시켜놓고 마시고 있는데. 포장집 한쪽 벽의 주황색 천막은 늦가을 빛을 투명하게 받아내고 있었다. 남향의 입구 문은 아직 닫을 필요가 없어 열어 놓았는데. 그 입구는 마치 카메라의 앵글처럼 바로 앞 바깥풍경을 담아내고 있었다. 그 풍경 속에는 한 다발의 붉은 열매가 늦가을 햇살을 받아 자글자글 끓고 있었다. 그 붉은 색은 차라리 투명했다. 나는 무슨 생각이 떠오른 사람처럼 급히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러나 그 입구가 담아내었던 투명한 빛의 풍경은 간 데 없었다. 바람의 모필이 그 풍경을 그 순간에 지우고 저만치 달아나고 있었다. 그때부터 겨울이 시작되고 있었을 것이다. 바람이 이미 차져 있었다.

      햇빛이 얇아지는 이맘때면 흑백다방의 존재는 더 귀하다. 바람을 닮아 있는 다방. 흑백다방은 문을 밀치고 들어 가면 먼저 바람이 휙 일어난다. 그 바람 속에는 금속성 소리가 섞여 있다.

      흑백다방의 ‘흑백’을 아무도 흑백논리의 ‘흑백’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은 없다. 그것은 흑백다방이 얼마나 정갈하게 그 자리를 지켜왔는지를 증언한다. 흑백다방의 ‘흑백’은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흑백이 아니다. 빛의 양 궁극이 그렇듯이 모든 것을 받아낸 뒤의 흑이고 백이다. 담백한 수묵의 바람이 그렇듯이. 저 팔십 년대를 새파란 청년으로 살면서 나는 흑백이 흑백논리의 흑백이 아니라는 것에 얼마나 위로를 받았는지 모른다. 흑백다방에 몇몇 친구들과 둥지를 틀고 있었지만(나는 완전히 튼 것은 아니었다) 흑백다방은 우리의 둥지를 거웃거리며 우리의 이야기를 엿듣지도 않았고 우리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거나 충동하려 하지도 않았다. 포스트모던의 시대가 모자라 다시 후기 포스트모던시대라고 하는 이 시대에 여전히 흑백다방이 살아남은 것은(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그 때문일 것이다. 내가 그 폭풍의 시대를 지나 온전히 한 시인이 될 수 있었던 것처럼. 그 시대에 대해 부채감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 시대에 부화뇌동하지 않은 것은 지금 생각하면 다행이었다.

      나는 내 시에서 흑백다방이 골다공증을 앓고 있다고 쓴 적이 있다. 목조건물인 흑백다방의 이층에서 서로 어깨를 대고 있는 목재와 목재가 어긋나면서 나는 소리를 생각하고 그렇게 썼다. 그러나 흑백다방에는 이전에 없던 피아노가 한 대 중앙에 놓여 있는데. 골다공증을 보여주는 엑스레이 사진이 그렇듯이 그 피아노의 건반도 흑백이다. 흑백다방은 스러져가면서 또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바람은 흑백다방에서 속천바다로 달린다. 바람은 해군사관학교 앞 남원로터리를 돌아 왼쪽에서 첫 번째로 마주치는.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고아원으로 쓰였던 이층 일본식 건물과. 지금은 속천 북쪽해안선을 끼고 이동(泥洞)과 연결되는 도로가 난.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오래된 한 집을 크게 터치하고 내해를 빠져 외해로 나아간다. 이때는 봄이 시작되고 있을 즈음일 것이다.

      이 두 집에서 나는 가장 아름다운 목련꽃을 본 듯한데. 목련만큼 흑백의 대비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꽃이 또 있을까? 두 손을 손등을 봉곳하게 하여 합쳐 놓은 것 같은 목련은 착한 시인의 첫시집처럼 깨끗하고 정갈하다. 이와 달리 꽃잎을 활짝 벌리고 있는 목련꽃은 허공에서 눈물이라도 찍어내겠다는 듯 손바닥을 펴고 가운데 손가락을 살짝 올린 여인의 흰 손 같다. 목련이 그 흰 꽃잎을 극적으로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는 그 배경에 깊은 어둠이 받쳐줘야 한다. 바람의 모필은 목련꽃 뒤의 배경을 깊게 터치하는 방법으로 목련꽃을 극적으로 그려낸다. 위의 두 집에서 목련꽃이 가장 아름답게 보였던 것은 그 집들이 내밀하게 숨기고 있는 어둠 때문일 것이다. 일본식 집들의 미궁 같은 깊은 속내가 그 배경일 것이다.

      이때쯤 일어나는 바람이 모필이 터치하는 진해 구터널 밑에서 내려다본 착한 집들의 지붕들과. 흑백 티브이나 흑백사진첩을 연상하게 하는 흑백다방에서 보낸 내 젊은 날의 한철과. 목련을 가장 아름답게 받쳐주던 속천으로 가는 길목의 집과 속천의 그 집이 눈물겨운 것은 이미 내 곁에 겨울이 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김승강 시인은 1959년 마산에서 태어나 진해에서 성장했다. 시인은 ‘문학·판’으로 등단하여 창원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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