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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7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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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준법·윤리의식이 선진사회 지표

  • 기사입력 : 2005-12-0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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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진숙 (논설주간)  

      우리사회 곳곳에서 빚어지고 있는 준법·질서 파괴 현상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서 과연 한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주지하다시피 선진국 반열에 들어서려면 나라가 부강하다고만 해서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제반 분야가 일정 수준 이상 도달해야만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특히 준법정신과 질서의식이 높아야만 한다. 그래서 선진사회를 법과 질서가 지배하는 사회라고들 말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윤리의식의 확립이다. 법에는 저촉되지 않더라도 일반 국민들의 윤리적 잣대에 위반되는 일은 용납되지 않는다.

        서구(西歐) 각 나라들의 국민들은 개인적 자유를 한껏 누리고들 있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자유로움의 향유는 법과 윤리에 벗어나지 않는 범위내에서 이루어진다. 만약 사회와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를 했을 때에는 엄격한 제재와 책임이 따르는 것이다. 민주시민으로의 권한을 누리려면 그것에 앞서서 마땅히 이행해야 할 의무를 먼저 수행해야만 한다. 타인의 권한 침해란 생각지도 못할 일이다. 그것도 사생활과 인권에 관한 것일 때에는 이해하거나 용서하려 하지 않는다고 한다. 만약 그랬을 때에는 피해입은 당사자로부터 즉각 고발과 소송을 당하게 된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남의 프라이버시와 인권을 침해하고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일이 다반사다. 물론 서구와 다른 유교사상을 배경으로 하여 성장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이래서는 안된다. 이제는 모든 분야에 걸쳐서 글로벌 스탠더드(국제 표준)를 준용해 나가지 않으면 국제사회의 웃음거리가 될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됐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의식 가운데 가장 큰 문제가 준법·질서·윤리의식의 미성숙이라는 데에 대체적으로 동의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행동하면 법규에 저촉된다는 점을 알고 있음에도 부득부득 고집을 피우는 일이 항용 있다. 음주운전행위만 해도 그렇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차를 운행하는 것은 법위반에 앞서서 자신은 물론 불특정 상대방에게도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주는 ‘살인 행위’다. 그러함에도 해마다 음주운전자가 증가하고 있다. 연말을 맞아 너도나도 송년회에 참여해 술을 마실 기회가 많아졌다. 음주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가 크게 늘어날 것만 같아 참으로 걱정된다. 범사회적인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여서라도 음주운전 행위는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한다.
    구미(歐美)에서는 여러 범죄 가운데 나라에 내야 할 세금을 탈세(脫稅)하는 행위를 가장 죄질이 불량(不良)한 것으로 치부한다고 한다. 탈세범으로 밝혀질 경우 더이상 정든 고향땅에서 살지 못하고 이사를 해야 할 정도로 이웃의 비난과 냉대가 심하다는 것이다. 탈세하다 적발되면 인간으로서의 대접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그 누구도 감히 그렇게 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세금 내지 않을 방법에 골몰하면서 탈세의 구멍만 찾는 사람들이 부지기수(不知其數)다. 그렇찮아도 과세 대상에서 제외된 항목들이 많은데 정상적인 납세 의무마저 저버린다면 나라 살림은 그만큼 부실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리고 탈세범은 중죄인이 아니란듯이 관용하는 사회적 인식도 큰 문제다.

        지금 사회 곳곳에서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는 각종 불법·과격시위 현상은 또 어떤가. ‘시위 공화국’이란 이름이 붙을 만큼 하루가 멀다하고 여러 행태의 시위가 발생한다. 집단의 의사를 적법하고 정당하게 표출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 사회에서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불법·과격시위만큼은 지양해 나가야 한다. 이것 때문에 공권력이 낭비되고 위협받는다면. 그리고 적법한 절차에 의해서가 아니라 집단의 힘에 의해서 제반 문제가 좌지우지(左之右之)된다면 누가 보아도 정상적인 나라요 사회현상이라고 말할 수가 없지 않겠는가. 오죽했으면 ‘국법’위에 ‘떼법’이 있다는 말까지 생겨났겠는가.

        이제는 우리 모두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 개인의 사사로운 이익에 앞서서 사회와 나라의 공익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악법인줄 알면서도 죽음으로써 법을 지킨 소크라테스가 오늘날 우리에게 던져주는 의미를 바로 새겨야 하지 않겠는가. 법과 윤리가 지배하는 사회를 만들지 못하면 선진국 진입의 꿈은 한갓 구두선(口頭禪)에 그친다는 점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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