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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3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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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훈의 청와대 이야기-연말 썰렁한 청와대

  • 기사입력 : 2005-12-2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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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 교수 파동'으로 내부 판단 혼란

    농민 시위 구속 사태 등도 `마음 고생'

      호남과 충청지역의 폭설과 온 나라를 엄습한 한파로 서울은 연일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추위를 겪고 있다. 북악산 아래 위치한 청와대는 요즘 썰렁하다. 날씨 때문이기도 하지만 황우석 교수 파동과 농민 시위 때문이기도 하다.

      부산 APEC의 성공적 개최와 말레이시아 동아시아 정상회의의 참석 이후 비교적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야 할 노무현 대통령은 황교수 파동과 농민시위 등으로 별로 편치 못한 연말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노 대통령이 황 교수와 관련해 지난 5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황우석 교수팀의 연구 성과에 대한 검증문제는 이 정도에서 정리되길 바란다”고 말한 후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 그 때는 “줄기세포가 없다”고 한 노성일 미즈메디 이사장의 폭탄발언이 있기 전 얘기였다. 그러나 23일 ‘맞춤형 줄기세포는 조작됐다’는 서울대의 발표로 황 교수 사태의 진실이 거의 확실해졌다.

      황 교수 문제와 관련. 노 대통령이 상당 기간 정작 사태의 본질과 진실을 꿰뚫고 있지 못하고 있었던 시기가 있었던게 아닌가 하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박기영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이 ‘복제줄기세포가 수정란 줄기세포로 바뀌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사태가 불거지고 나서 밝혔는데 대통령에게 일찌감치 그런 중요한 보고는 하지 않은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하긴 바뀌었다는 주장도 이제는 믿기 어렵게 되었다. 이런 상황이 황 교수 문제와 관련해 노 대통령과 청와대가 내부적으로 상당한 혼란과 판단 곤란을 겪게 했을 가능성이 이야기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연말의 노 대통령을 힘들게 하는 것은 농민시위와 시위농민의 사망. 그리고 홍콩에서 시위를 벌이던 농민들의 구속사태 등이다. 노 대통령은 지난 21일 농민시위와 관련해 “세계화라는 흐름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어려운 숙제를 가져다주는지.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을 벼랑으로 몰아붙이고 있는지 잘 알지만 거역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100년 전. 200년 전에도 공장을 부순다고 산업혁명이 진행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고. 우리가 컴퓨터를 두드려 부순다고 정보화 혁명이 진행되지 않은 것도 아니었고. APEC 회의를 안한다고 세계화 흐름이 중단되는 것도 아니다”며 “그것이 옳든 그르든 그것은 이미 시대의 대세”라고 강조했다.

      차가운 12월 서울의 아스팔트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50~60대 농민들이 듣기에는 너무도 야속한 대통령의 말이다. 세계화의 본질에 대한 정권의 책임자로서 당연한 인식을 표현한 것이지만. ‘소외된 삶’을 거부하는 농민들의 입장에서는 당장 섭섭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말이다.

      영하 10도의 기온에도 서울에는 노숙자들이 지하도 등에서 한뎃잠을 잔다. 기자가 출근하는 길목인 경복궁 동쪽 동십자각 아래의 지하도에도 노숙자가 있다.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구석자리에서 이불과 물통을 소유하고 있는 ‘부자 노숙자’이고. 또 한 사람은 과일박스 3장만 지닌 ‘가난한 노숙자’이다. 날씨가 추워지니까 가난한 노숙자는 보이지 않는다. 과일박스만으로는 한밤의 추위를 도저히 견딜 수 없었나 보다. 출근길에서는 만나던 이 두 사람의 노숙자 중 한 사람이 없어지니 그의 근황이 궁금하다.

      해가 진 오후에 퇴근하면서 기자는 청와대 인근에서 농성 중인 농민시위대를 막기 위해 하루 종일 추운 골목길에 10~20명씩 대오를 이루고 서 있는 전투경찰들을 본다. 갓 스무 살을 넘긴 젊은이들이 청와대를 지키기 위해 추운 겨울에 아버지 같은 농민들을 막고 있다. 박승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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