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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4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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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주 시인이 찾은 밀양 영남루

  • 기사입력 : 2006-02-1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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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한다 - 언제나 소리없이 그자리에 머물러 있는 너를

      사랑한다 - 너를 품고 있는 밀양강과 강에 걸린 철교까지

      사랑한다 - 누 아래 황금 돛배 피우는 오솔길 가로등 불빛도…


    이윽고 계집애들은
    가로등 한 송이씩을 따 들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여윈 추녀 불 밝히는 불빛도 차츰 깎이어
    홀로 깊어가는 고전(古典)의 밤.
    추회(追懷)의 그림자를 안고 흐르는 남천강
    어둠 깊을수록 강물은 살아서 오고. 그 위에
    한 채의 전설로 떠오르는
    잘 풍장되어 빛나는 촉루.
    깊은 아름다움은 풍장처럼 깎이는 것.
    풍장처럼 깎이어 비로소
    맑은 가얏고 소리로 울리는 것.
    맑은 가얏고 소리 울리어
    깎인 달 하나 띄우는 것.

    둔치 체육공원 민속그네를 올라
    가얏고 같은 마흔다섯 이자옥(李慈玉) 선생은
    달빛 깎인 열아흐레달 하나 붙였다.

    - 이승주 <영남루> 전문

      영남루. 단도직입적으로 나는 영남루를 사랑한다. 그가 부르면 나는 어떠한 일이라도 달려가지 않을 수 없다. 인간들과 달리 그는 늘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그가 보고 싶으면 언제라도 나는 그를 만날 수 있다. 밤이면 조명 불빛 아래 시내를 에둘러 흐르는 밀양강에 커다란 한 척의 유람선을 띄우는 영남루. 누에 올라 바라보는. 밀양교 위의 보석 귀고리를 단 가로등을 사랑하고. 누 아래 황금 돛배를 띄우는 강변 오솔길의 가로등 불빛을 사랑하고. 강에 걸린 철교를 사랑한다. 탑이라면 경주의 감은사지 삼층탑이듯이. 영남루가 없는 밀양을 나는 생각할 수 없다.

      오늘도 나는 집을 나와 게으른 걸음으로 강둑길을 따라 영남루로 향한다. 바람이 지나가는 자취도 없이 포근한 날씨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화살추위에 두껍게 창문을 닫았던 밀양강이 아이들이 와서 두드리고 발을 굴려도 열지 않던 창을 반쯤 열어놓았다. 행인들과 차량들이 한가롭게 지나는 밀양교의 중간쯤. 아치형의 난간에 기대어 강을 내려다본다. 강 한가운데의 커다란 얼음판 위로 작은 새 두어 마리가 종종걸음으로 얼음을 지치고. 멀리 철교 쪽으로 수십 마리의 청둥오리들이 잠든 듯 점점이 무리 지어 떠 있는 사이로 몇 마리는 길게 물그물을 끌고 있다. 어느새 나는 산문(散文)과도 같이 끝내 다리를 놓을 수 없는. 설명과 이해만큼의 대안(對岸)에 서서 묻어둔 시간을 꺼낸다. 미열처럼 이는 물이파리들. 잠시 흔들리다 쓸리어 다시 물로 돌아가고. 물잎새마다 새겨지는 사념의 무늬. 이웃들의 발자국을 거두어 돌아보지 않고 멀리 흘러가는 강은 예로부터 각자(覺者)들의 스승. 그러나 스승은 지금 휴강중이다.

      나는 다시 주위의 일상적인 삶과 풍경을 완상하며 걸음을 옮긴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모든 것이 귀하다. 되도록이면 천천히 걸음을 아껴 걷는다. 익숙한 거리의 표정에 새삼스레 애정의 눈길이 가 닿고. 나뭇가지 하나에도 시선이 머문다. 눈 속에. 귓속에 다 담는다. 저마다 제 가지의 동파(凍破)를 막기 위에 잎겨드랑이의 수문(水門)을 굳게 잠가 잎을 다 지워버린 저 나무들. 아. 자연은 스스로를 의미 부여하지 않는데. 미혹한 인간은 어찌하여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을 가하는지.

      이윽고 나는 조선 16경(景)의 하나인 누에 이르러 먼저 한말의 명필 성파(星波) 하동주의 현판에 눈 맞추고 누에 오른다. 도도한 기개와 필세의 현판들을 올려다본다. 헌종 9년(1843년 癸卯年). 당시 밀양부사 이인재가 이 건물을 중수할 때 그의 열한 살 난 큰아들(이증석)과 일곱 살 난 둘째아들(이현석)이 각각 썼다는 ‘영남제일루(嶺南第一樓)’와 ‘영남루(嶺南樓)’의 서기(書氣)도 찬탄하지 않을 수가 없거니와. 누에 올라 벼랑 아래 강물에 비치는 아름다운 달빛을 보니 마치 금가루를 뿌려 놓은 듯하다 한. 그 이름도 너무나 시적인 ‘용금루(湧金樓)’ …. 어디 다른 데서도 본 적이 있었던가. 머리에 고아한 단청을 두르고 나란히 들보를 떠받친 기둥들을 어루만지며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멀리 바라본다. 좋은 풍경은 좋은 약. 좋은 음악과 같아 언제라도 팍팍한 세상살이의 근심과 번민을 치유해준다. 풍경. 풍경 그 자체는 비록 타자적(他者的)이나 그것이 우리네 삶의 프리즘을 통과할 때. 무상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비로소 기억으로 인화된다.

      지금부터 십오륙 년 전 겨울 방학. 나는 혼자서 처음으로 영남루에 올랐다. 어느 누야 풍경이 좋지 않은 곳에 위치한 것이 있으랴만. 안내표지판에 평양 대동강의 부벽루. 진주 남강의 촉석루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3대 명루라 하였으니 조금도 과장이거나 허언이 아닌 줄 알았다. 그러나 그때는 뒤로 보이는 산 -훗날 그 산 이름이 아북산인 줄 알게 됨- 중턱의 희고 커다란 학교가 밀양여고인 줄도 몰랐거니. 곧이어 신학기에 어찌하여 그 학교로 발령받아 오게 되고 그리고 지금까지. 앞으로도 밀양사람이 될 줄이야 어찌 알았으리. 그때 나는 잠깐 다분히 낭만적인 어떤 동경으로 이곳에서의 소박하고 전원적인 삶을 꿈꾸었지만. 정작 이곳으로의 부임은 자의에 반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세상이 그저 정의로만 돌아가지 않는다는 비정함과 순정이 가슴 아픈 건 그것이 패배로 끝나기 때문이라고 스스로의 상처를 달래며 위로하던 날들이었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 보면. 산소가 결핍될 때 산소의 존재를 자각하듯이. 삶이 지난하고 행복이 결핍될 때 우리는 인생과 행복이 무어냐고 절박하게 묻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결핍이 인식을 눈뜨게 하고 부재를 통해서 우리가 존재를 인식하게 되는 것이라면. 어쩌면 삶이 도대체 무어냐고 묻지 않고 지냈을 때가 행복한 때는 아니었을까? 또 한편으로. 오히려 부재와 결핍의 그때야말로 진정 치열한 생의 정수라는 말에도 동의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나는 사람들도 그렇거니와 화려하고 번다한 것보다는 인생과 철학. 예술 등에 대해 조용히 담론하거나 혼자서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천성이라서. 나만의 얼마간의 즐거운 사색의 한때를 보내고 아랑사(阿娘祠) 옆 가파른 계단을 내려와 강 앞에 선다. 강물 속으로는 어김없이 또 한 계절이 소리 없이 흘러가고 흘러오고. 맑은 거울 속으로 쏟아져 내리는 빈 언어의 분분(紛紛)을 바라보며 약간의 보충설명과도 같은 날들을 잊지 못하는데. 세월 속으로 녹아드는 흰 가루약 같이 불현듯 흘러간 날들을 다시 불러 세우는 이 기억의 물기. 이 기억의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
    아름다운 행성 밀양 영남루에 천 년을 두고 석화(石花)가 피고 있다.


      이승주 시인은 밀양여고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대구가 고향이지만 1991년 밀양으로 와 15년 동안 살고 있으며. 이곳에서 등단(1995년 시와시학)도 했다. 시집 ‘꽃의 마음 나무의 마음’이 있다. 이 시인은 물 맑고 공기 좋고 자연이 아름다운 밀양이 제2의 고향이라고 한다.

      밀양교 밑을 흐르는 강물 만큼이나 맑고. 영남루의 선비들처럼 올곧고 온화한 느낌을 주는 이 시인. 영남제일루에서 강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이 또 다른 풍경이 된다. 이종훈기자 leejh@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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