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5월 06일 (월)
전체메뉴

손영희 시인이 찾은 진주 월아산

  • 기사입력 : 2006-07-24 00:00:00
  •   
  • 당신을 밟고 오르다 뒤돌아보니…


    당신은 내게 어떤 책이었을까. 첫 문장부터 내 호기심을 잡아끄는 당신은 나에게 속삭인다. 나를 읽어봐. 주저하지 말고 나를 읽어봐. 당신을 읽는다는 것은 어디론가 방향도 없이 새처럼 날아가는 일이고 무료했던 내 지난날들에게 화려한 장정의 표지를 달아주는 것이다.

    당신 속에는 정말 많은 것들이 있다. 하지만 당신은 나를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만일 나를 가르치려 했다면 나는 갓길의 위험스런 절벽으로의 행로를 택해 당신의 음흉스런 속마음에 일침을 가했을지도 모르지만. 당신의 문장은 수려하고 달콤해서 이 세상 길들의 시작점인 당신의 첫 페이지를 열고 들어간다.

    진성에서 금산으로 넘어가는 월아산 고갯길, 질매재. 아래로부터 순식간에 당신을 타고 올라가 뒤돌아보면 어디선가 불쑥 나타난 것 같은 외진 길들이 내 감각을 마비시킨다. 내가 저 순진무구한 시간들을 밞고 왔는가. 이것들이 다 무엇인가. 왜 당신은 나를 이곳까지 불러들이는가, 하는 의문들에 매이게 한다. 내면으로부터 끊임없이 솟아나는 삶의 공허함을 채우려는 몸부림일터이다. 당신을 건널 때마다 우울한 관념들이 조금씩 희석되어지고 과거의 추억에 사로잡혀있던 내 몸이 조금씩 환해져간다. 풍경이 풍경으로만 존재하지 않고 나와 결합하여 하나의 질서로 재결합하는 것이리라.

    작고 앙증맞은 상환호 미술관을 지나 길가는 나그네에게 들깨 수제비를 끓여주는 찻집을 지나 어둑어둑해진 길에 붉은 십자가가 이정표처럼 서있는 전원교회를 지나오며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들, 내면으로부터 만발하는 삶의 환희와 고통 속으로 들어가 저들과 어울려 하나가 되고 싶은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

    봄, 여름, 가을이 다르고 겨울이 다른지, 당신 어디에 독자적인 상상력을 발휘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재 탄생시키는 그런 열정을 숨겨두고 있는지, 서글프도록 아름다운 이곳의 풍광은 누구의 그리움으로 꽃핀 것인지. 당신 몸의 솜털인 나무들은 이제 영아기의 아이들처럼 재잘대며 꽃을 피우고 한낮의 광폭한 여름햇볕을 피해  당신의 배꼽인 저 연못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당신은 이제 멋을 부릴때가 된 숙녀처럼 의젓해져서 다소곳하게 내 앞에와 무릎을 끓는다. 어쩌자고, 내 허허한 가슴을 어쩌자고 또 눈은 내려서 당신은 출입금지 팻말을 가슴에 달고 냉정해져선, 내 몸은 빛을 잃은 별처럼 어두워지고 …, 또 한 생애가 꾸벅꾸벅 흘러간다. 그렇게,

    조변석개하는 당신을 해석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내가 당신을 읽는게 아니라 당신이 나를 읽는다. 나는 안에 있고 당신은 밖에 있다. 당신이 문장 속에 교묘하게 숨겨놓은 죽음의 냄새를 맡는다. 이유도 없이 영혼이 공명하는 소리 들리고 거기, 내 뼈들의 둔덕으로 인식되는 커다란 둠벙, 그 둑위에 차를 세워놓고 등성이로 넘어가는 저녁 해를 바라보노라면 죽음도 잠시 무의식의 날개를 펴 내 기억의 골짜기에 깊은 주름을 새겨놓는다. 저 검푸른 당신의 배꼽 속으로..

    나를 죽음으로 이끄는 것이 당신인 것처럼 나를 또 다른 길 밖으로 내 모는 것도 당신이다. `죽음은 단순히 생물적 소멸이 아니라 심리적인 재 탄생의 의미를 갖는'(배홍배)다고 했던가. 길은 허공에도 나있고 하늘에도 나있다.

    질매재를 넘어 상처받은 내 영혼이 내려선 곳은 달(月)과 나(我)와 봄산에 흐드러진 진달래가 만들어내는 또 다른 풍경 속이다. 하지만 청곡사를 품고있는 월아산은 지금 신록이 한참이다. 비속에서 읽어 내려가는 행간에는 돌과 이끼와 계곡의 물소리가 원추리 꽃그늘에 묻히고 하늘은 흘러내려 푸른 단청마다 물소리를 얹어놓는다.

    천년고찰인 청곡사는 진주에서 지척이다. 1200년전, 남강에서 청학이 날아와 제 몸의 서기를 내려 도선국사가 이를 보고 절을 지었다는데 어디에도 옛스런 건물들은 찾아볼 수 없고 선명한 단청색깔이 이질감을 드러내고 서있을 뿐이다. 6.25전란에 소실되어 지금의 주지스님이 다시 중추했다고 한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돌담은 조금씩 느슨해지고 햇볕 한 가닥 들지 않았을 것 같은 깊은 골짜기는 음습하다못해 무력감마저 느껴진다. 절 입구의 아름드리 나무들과 골짜기를 흘러온 검은 돌들은 한 시절의 절정을 폐허로 옮겨놓은 듯 빗속에서 장엄하다.

    이 절 어디엔가 있다는 국보 302호인 영산회괘불탱을 찾아 나서보지만 며칠 전부터 시작된 장맛비속에 사람 그림자라곤 없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특별대접을 받으며 전시되고 있는 영산회괴불탱! 높이가 10m에 넓이가 6m 37㎝이니 용산국립박물관에도 그만한 자리가 없어 2층과3층의 아래위로 뚫린 공간에 걸어놓아, 불화를 감상하려면 2층과3층을 오르내려야 한다는 것을 나중에야 당신을 통해 알게된다.

    삼신각 돌계단을 내려오면서 누군가 쌓아놓은 돌탑에 돌을 하나 얹어 본다. 지금 내게 무슨 소망이 있을것인가. 그저 무심한 하나의 몸짓이고자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보아온 것들이 다 헛것이며 선연한 울림으로 다가오는 그림자일 뿐이라는 것을 당신이 내게 일깨운다. `길이 시작되자여행은 끝났다'(루카치, `소설의 이론')라고 하지 않았던가.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실패하기 마련이라고, 신이 떠나버린 세계, 본래적가치가 시장가치로 전락되고, 선험적 고향상실의 형식으로 나타나는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란 결국 아무것도 찾지 못하고 제자리로 돌아오고 마는 과정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당신 속에서 자유인이다. 어느 곳에도 뿌리 내리지 않고 , 되돌아 가는 길을 문제삼지 않으며 풍경 속을 거니는... 
     

    손영희 시인은= 매일신문 신춘문예. 열린시학 신인상. 『서정과 현실』 편집부장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