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5월 06일 (월)
전체메뉴

수필가 허숙영씨가 찾은 남해 다랭이마을

  • 기사입력 : 2006-08-28 00:00:00
  •   
  • 생긴대로 일군 땅 굽이굽이 인생사 

    시간이 정지된 곳이 있다기에 찾아 나섰다. 잃어버린 고향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초가 몇 채가 머리를 맞대고 오수에 졸고 있을 거야. 돌담에 손을 짚어가며 고샅길을 돌아 나오면 마을 어귀쯤 깊디깊은 우물이 있을 거야. 차가운 우물 한 두레박 퍼 올리면 폐부까지 서늘해지는 맛을 볼 수 있을 거야. 다랑논 다닥다닥 하늘까지 쌓아올린 언덕배기에도 올라 보아야 하리. 맑은 눈으로 보면 노란 떡고물 같은 벼꽃들의 수줍은 모습도 볼 수 있을 거야.

    봄이면 하늘에서 내려주는 빗물 가두고 누렁소 앞장세워 써레질을 했겠지. 산마루 거꾸로 내려와 아른 아른 논바닥에 어리면 다랑논에 모내기를 했을 거야. 때맞추어 들려오는 `펴­고 펴­고' 하는 뻐꾸기의 장단에 `허리 펴란다' 하며, 모내기 하는 촌부들은 엉거주춤 하늘을 올려다보는 거야. 지금도 애절한 그 소리 환청으로 들려올 것 같아.

    백로 한두 마리 소나무에 앉아 준다면 더 없이 아름다운 풍경일 텐데. 산자락 휘감아 내리는 계곡의 널찍한 멍석돌 위에서는 발이라도 담그고 친구들과 노닥거려야지.

    빨래 몇 가지 담아 이고 집을 나서면 설핏한 산 그림자 내려앉아 온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을 때에야 물에서 나왔던 때가 있었지. 개울 옆 밭두렁에는 꼬맹이들이 오를 만한 감나무도 있을 거야. 빨래하고 멱 감다 시들해지면 감나무에 올라앉아 노래도 불러야 하거든.

    어둑해지면 맨드라미, 분꽃이 가득 핀 마당가에 모깃불 놓고 애호박, 감자 덤벙 덤벙 썰어 넣어 구수한 칼국수를 한 솥 그득 끓여야지. 모깃불 잦아들면 평상위에 모기장 치고 그 안에 들어, 내 어릴 적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밤새도록 이야기꽃을 피울 거야. 친구들도 맞장구치며 나를 따라나서길 잘했다고 웃음꽃 피울 거야.

    성에 낀 유리창을 통해 아름다운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듯 아련히 떠오르는 고향을 그리며 마음속으로 주문을 왼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는 창선대교를 지나 해안도로 300km를 달려, 남면 가천의 다랭이 마을에 발을 디뎠다. 등허리에 업힌 아이처럼 설흘산 중허리에 마을이 다소곳이 자리 잡고 있었다. 포대기 끈이 조금만 풀리면 그대로 주르륵 바다에 미끄러질 듯 위태로워보였다. 시선이 닿는 곳, 드넓은 바다에 작디작은 통통배 하나 과거와 현재를 가르는 듯 지나간다.

    난바다 수평선과 하늘의 경계가 사라지고 없다. 뒤돌아서 치어다보니 산과 하늘의 경계도 구름을 사이에 두고 이마를 맞대고 있다. 내려다보면 논두렁과 논바닥도 온통 초록물결로 눈이 시려 구분하기가 힘들다. 하늘과 산과 바다가 하나로 이어지는 곳, 그 연결고리에 다랭이 마을이 있었다.

    그래야 하리. 바람처럼 지나가는 세월, 팽팽하게 경계선을 그어놓고 신경전을 벌일 때인가. 노동자와 사용자가, 시위대와 경찰이,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화해의 악수를 청해야 하리. 살면서 한번쯤은 마음속에 품었음직한 반목과 불신과 원한의 감정들도 이곳에서만은 허물어지리.

    설흘산 너덜겅 돌을 골라내고 생긴 대로 만든 농토는 그대로 굽이굽이 우리네 인생사만 같다. 높은 곳에 있으나 낮은 곳에 있으나 똑같이 닮았다.

    잠시 쉬려고 삿갓 얹어놓고 `내 논, 내 논'  하고 찾는다는 삿갓배미. 밭 한 뙈기 일구면서 갈매 빛 바다만을 하염없이 바라보았으리. 이들에게도 바다 너머 희망이 얼비쳤을까. 집도, 골목도 농토도 모두가 비탈에 있다 보니 자칫 발만 헛디뎌도 비틀하고 낭떠러지 바다에 곤두박질 칠 것 같다.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그들도 수평선 너머 이상향을 꿈꾸었을까.

    안마당에도 집채 같은 돌이 버티고 앉아있고, 손바닥만 한 논 한가운데도 고래 등 같은 돌이 박혀있다. 그 위에 올라서니 명치끝에 바위하나 얹힌 듯 가슴이 옥죄인다. 

    치마폭을 펼친 듯 드넓은 앞바다를 거느리고도 통통배 하나 댈 만한 부두가 없다. 그렇다고 다랑논 몇 마지기에 농촌이라 이름 붙이기도 뭣하다. 남들이 코앞에 그물을 놓아도 보고만 있어야 하고, 상황이 이러하니 밥상에 올리는 생선조차 사다먹어야 한다.

    이 기막힌 현실에서도 풍농과 마을 안녕을 비는 `밥 무덤'이라는 것이 있어 매년 제사를 지낸단다. 마을 중앙에 있는 거대한 선돌 `암수바위' 또한 풍요와 다산을 가져다줄 미륵불로 여길 만큼 동리인의 신망을 받고 있다. 경배물 앞에서 나도 슬그머니 비손이 된다. 다랭이 마을이 옛 모습 그대로 평화롭게 남아있기를. 마음속으로 빌다보니 이것 역시 나의 이기심이다.

    관광객의 입맛에 맞춰 현대식 건물을 지어 민박이라도 하고, 모심고 타작하는 농촌체험을 시켜서라도 그들이 기원하는 풍요를 얻을 수 있다면 나의 기원도 방향을 바꾸어야 하리.

    마을의 빈터를 차지하고 헤벌쭉 피어있는 외래종 기생초가 가슴을 가시처럼 찔러 온다. 농촌 전통 체험마을로 지정되면서 전망 좋은 땅들을 하나 둘씩 점령해갈 외지인들이 생각나서일까.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빼앗긴, 내 유년의 뜰에 줄지어 서서 손을 흔들어 주던 미루나무들이 씁쓸하게 떠오른다.

    이곳에서 고향의 그림자라도 찾으려 했던 내가 어리석었는지도 모른다. 동네 가운데 지워지지 않는 흉터처럼 자리한 얕은 우물은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나 보다. 부유물들이 둥둥 뜨고 줄 끊어진 도르래는 나의 추억을 싹둑 잘라놓았다. 퍼내도 퍼내어도 마르지 않던 내 기억속의 우물도 혹, 처음부터 이 같지 않았을까. 온 몸 풍덩 던지고 싶었던 맑은 개울도 찾기는 힘들 것 같다.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중간쯤에 다랭이 마을은 안간힘으로 버티고 있었다. 8월의 염천 때문만은 아니었다. 포클레인의 육중한 완력에 속수무책 당하고만 있었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면서 현대식 숙박업소가 군데군데 졸속으로 들어섰다. 지금도 공사는 진행 중인지 싯누런 황톳물이 도랑을 메우고 바다로 흘러들었다.

    내가 찾던 빨래터가 될 법도 한데 바닥은 누렇게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았다. 안타까운 마음에 물줄기를 따라가 보았다.

    흙탕물이 바닷물과 합수되는 곳에서 불과 한 뼘도 지나지 않아 푸른 바닷물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안겨들고 있다. 아무리 바다의 품이 넓다하지만 이렇게 쉽게 포용할 수 있다니. 우리가 사는 세상도 이처럼 되면 좋으련만. 

    서러움이 뚝뚝 흘러내릴 것 같은 설흘산 자락 한 모롱이에 터 잡고 사는 사람들. 하늘 향해 신단을 쌓듯 정성들여 생명의 시원을 만들어 놓았다. 하늘과 교신하며 자연의 법칙을 따르며 살아간다.

    부족한 것은 조금씩 천천히 채워가며, 넉넉한 품으로 살아가는 촌로들. 그을린 그들의 얼굴에서 고향 내음과 정서를 담아간다.

    *진주시 지수면 출신 수필가 허숙영(48)씨는 2002년 ‘한국수필’로 등단했으며 현재 경남 여류문학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