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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8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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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순이의 통장/이문재기자

  • 기사입력 : 2006-11-08 10: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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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해순양. 12살 소녀로 초등학교 6학년이다. 꿈도 많고 또래들과 재잘거리며 해맑은 미소를 지을 나이다. 그러나 해순이는 다른 아이와는 조금 다르다. 정신지체 2급으로 특수학교인 경남혜림학교에 다닌다.

      간단한 인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무거운 물건도 들어올리지 못한다. 하기 싫은 일은 하지않고, 신체발달도 비장애인보다 한참 느리다.

      자신의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해순이가 큰 상을 받았다. 지난달 31일 열린 제43회 저축의 날 기념식에서 재경부장관 표창을 수상했다.

      해순이는 지난 2003년부터 지금껏 1천400여만원을 저축했다. 물론 부모님의 도움을 받았고, 학교에서도 장려한 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해순이 자신이 좋아하고 원했기에 가능했다. 해순이를 은행으로 이끈 사람은 다름아닌 부모님들이다. 부모들은 해순이가 앓고있는 장애가 하루 아침에 씻은듯 낫지 않는다는 걸 어렵지만 받아들였다.

      대신 해순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했고, 저축을 택했다.
      지금이야 해순이를 곁에 두고 키우면 될일이지만, 남겨줄 유산도 없는 궁핍한 살림살이를 생각해 내린 결론이다.

      언젠가 훌쩍 떠나버리면 해순이를 뉘라서 돌봐줄까. 현재도 그렇지만, 시간이 많이 흘러도 일상생활조차 제대로 한다는 보장이 없는 아이를 위한 부모의 가슴아픈 사랑의 선택이었다.

      부모들은 그래서 한푼두푼 쪼개 아낀 돈을 해순이의 손에 쥐어줬고, 해순이는 스스로 은행에 달려가는 습성을 가지게 됐다. 부모들은 간혹 이 적은 돈이 얼마나 해순이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포기할 생각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저축이 해순이에게 돈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알고 마음을 다잡았으며 결국 꽤 큰 돈을 모으게 된 것이다.
      혹 해순이는 아직 돈이 뭔지, 저축이 뭔지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은행에 가고 통장에 숫자가 자꾸 늘어나는 것이 마냥 즐겁고 기쁘다.

      해순이의 통장은 바로 자신의 아픔을 극복해나가는 `예쁜 일기장' 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봤다. 이문재(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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