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7월 16일 (목)
전체메뉴

심재근의 우리땅 순례 (25) 섬진강 3-전북 진안군~임실군

  • 기사입력 : 2007-07-09 09:43:00
  •   
  • 데미샘서 솟은 물 적성강에 닿아… 


    굽이쳐 흐르는 듯하는 산줄기와 주름진 계곡들이 주는 오묘한 자연의 아름다움이 있어 길을 떠나는 여정은 항상 마음을 설레게 한다. 지난해 영국 여행길에 산이 없이 끝없이 펼쳐지는 평원을 바라보고 있는데. 관광 안내원은 영국이 우리나라보다 크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나는 A₄종이를 한 장 구해 구겨놓고 이것이 당신이 알고 있는 한국이다. 다시 구겨진 종이를 펴놓고. 우리나라 산을 펼치면 이처럼 영국보다 더 크다고 객기를 부려보았다. 우리나라의 70%가 산지라고 하여 쓸모가 없다던 산들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고 더욱 아름답게 보인 것은 그리 많지 않은 외국 여행을 하고 난 후이다. 진안군 백운면 데미샘에서 발원한 섬진강의 또 다른 상류가 있는 임실로 가는 길은 그래서 더욱 즐거움이 가득하였다.

    [사선대]
    섬진강 상류 임실 용암리 석등으로 가는 길에 큼직한 이정표를 보고 찾아 들어갔다. 섬진강 옥정호로 흘러가는 오원천변 넓은 강턱 사이로 열려있는 오솔길은 한 편의 영화의 무대가 되어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강변에 있는 사선대는 네 신선이 놀았다는 전설이 있다. 옛날 마이산의 두 신선과 임실면 운수산의 두 신선이 이곳 강변에 모여 놀았다. 그런데 어디선가 까마귀 떼가 날아와 함께 어울렸다. 나중에 홀연히 네 선녀가 내려와 네 신선들을 호위하며 사라졌다고 하여 그 후 이곳을 사선대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사선대에는 가족단위의 사람들이 나와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사선대 주변은 기암절벽과 수풀. 맑은 물이 어우러져 승경을 연출하며. 축구경기장을 비롯한 체육시설과 편의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었다. 사선대 위쪽의 작은 산등성이 울창한 숲속에는 운서정(전북유형문화재 135호)이라는 정자가 있어 정취를 더 돋운다.

    [임실 용암리 석등]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관촌에서 49번 군도를 따라 들어서니. 임실군 신평면 호암리 오원천 주변 넓은 들판은 농사일을 하는 농부들의 손길이 분주해 보였다. 작은 언덕위에는 시골 작은 교회 종탑이 정겹기만 하다. 벼가 무럭무럭 자라는 들판 사이로 길을 재촉하니 마을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용암리 석등이 반겨준다. 석등의 높이는 5.18m로 우리나라에서는 큰 석등에 속한다. 가운데 받침돌을 제외한 각 부분 모두 신라시대 석등의 기본 형태인 8각을 이루고 있다. 절터 발굴이 끝나고 잘 정돈된 절터에는 하얀 토끼풀 꽃이 은하수를 뿌려놓은 것처럼 꽃밭을 이루고 있었다.

    임실문화원장을 지냈다는 홍동운(78)씨는 사진동호회 일행들과 석등의 사진을 찍으면서. 원래 이곳에 큰 사찰이 있었는데 스님들의 횡포가 너무 심해 나라에서 왕명에 의해 불을 질렀다고 했다. 그러나 안내판에는 절의 이름도 알지 못하고 있는 듯 지명을 따서 석등을 부르고 있었다. 여덟 면에 모두 창을 낸 것으로 보아. 호남지방 석등의 특색을 보여 주고 있다. 인근 보호각에 1900년경 약 30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어 옮겨온 2기의 좌대가 있다.

    [임실 사곡리 남근석]
    옥정호로 강을 따라가면서 만나는 마을 이름이 까치덤. 월평. 새터. 웃마실 등으로 정겹다. 지방도로 745번을 따라 학암교를 지나 굽이굽이 산길을 내려서니 남근석이 있는 사곡리 마을이다. 남근석은 민족 고유 신앙인 성기숭배사상에서 다산(多産)과 풍년을 기원하고 질병이나 악으로부터 보호해준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높이 200㎝. 둘레 113㎝의 원추형 사각꼴로. 이곳의 민심이 흉흉하고 돌림병이 심하여 그 원인을 알아보니. 마을의 형상이 여성의 성기 모양을 하고 있는 탓이라 하여 땅의 기운을 누르고자 남근석을 세웠다고 한다.

    [옥정호]
    국도 27번을 따라 율치고개를 넘어서니 풍광이 아름다운 옥정호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강변을 배경으로 지어진 별장들이 즐비한 운암교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옥정호를 따라가는 749번 지방도로로 접어들면 마암초등학교 마암분교가 있다. 예전에 섬진강 시인 김용택이 근무하면서 아이들에게 시심을 심어준 곳이다. 자그마한 운동장과 화단에는 계절 따라 형형색색 꽃들이 피어나고. 고개를 들면 옥정호의 아름다움이 학교로 들어온다. 학교를 나와 다시 길을 한참 재촉하면 육중한 섬진강댐이 반겨준다. 20년간 섬진강댐 관리소에서 근무했다는 양영근(52)씨는 유역면적 763㎢. 만수면적 25.5㎢. 총 저수량 4억3000만t에 달하는 다목적 댐이라고 하면서. 운암대교. 벼락바위. 댐 주변의 경관이 수려하고. 특히 가을철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새벽 풍광은 몽환적 분위기를 연출한다고 자랑했다.

    [만일사]
    조원천으로 이름을 바꾼 섬진강을 옆에 두고 국도30번을 따라오다 회문리에서 방향을 바꾸면 회문산에 있는 만일사가 반겨준다. 회문산 휴양림 입구에서 돌에 새겨진 이정표를 보고 계곡을 건너면. 숲에 가려 반쯤 모습을 드러낸 외로운 일주문이 반겨준다. 한참을 걸어 들어가면 백제 무왕(673년)때 처음 세워진 사찰로 조선 초기 이성계가 임금이 되기 전 무학대사에 의해 중건되었다는 아담한 만일사가 반겨준다. 절의 명칭은 무학대사가 이성계를 임금의 자리에 오르게 하고자 만일 동안 이곳에서 기도하였다는 데에서 유래되었다. 이러한 내용과 순창고추장을 대궐에 진상하게 된 내력이 적혀있는 빛바랜 비석이 절집 입구에 세워져 있다. 만일사는 6·25전쟁으로 완전히 소실된 것을 1954년에 다시 세웠고 1998년에 일주문. 대웅전. 요사채 각 1동씩을 건립하였다. 절 아래로 산안 마을과 무직산. 성미산 등 수려한 연봉이 바라보인다. 깊은 산속 만일사에는 바람과 구름도 자고 가는지 적막과 고요함속에서 스님 혼자 일을 하다가 인기척에 반겨주셨다.

    [순화리 삼층석탑]
    다슬기 잡기가 한창인 강을 지나 순창여자중학교 뒤쪽에 있는 3층 석탑을 찾아갔다. 원래 기단(基壇)이 2층이었을 것이나 지금은 아래층 기단이 땅속에 묻혀 위층 기단만 땅위로 드러나 있다. 얇고 널따란 지붕돌은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 단아한 느린 곡선을 그리고 있다. 각 지붕돌 윗면 꼭대기에는 윗돌을 괴기 위한 높은 단을 두고 있어 통일신라 후기의 양식이 보이며. 백제 양식 특유의 우아한 곡선미가 느껴진다.

    [어은정]
    저무는 해를 바라보며. 강을 따라 순창군 적성면 구남리 어은정으로 차를 몰았다. 섬진강이 적성강으로 이름이 바뀌어 오수천과 만나는 곳에 있는 어은정은 어은 양사형(1547∼1599)이 조선 명종 22년(1567)에 분가하면서 지은 정자이다. 양사형은 조선 선조 21년(1588)에 문과에 급제하여 영광군수. 병조정랑을 지냈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웠다. 건물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금 있는 건물은 1919년에 고쳐 지은 것이다. 인근에 있는 어은정 가든(☎ 063-652-4731)에서 매운탕을 시켜놓고 흘러가는 강물에 시름을 실어 보내며. 강바람을 친구 삼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노라면 시인이 따로 없었다.

    [맛집]
    ▲새집식당: 한정식 전문. ☎ 063-653-2271. 전북 순창군 순창읍 남계리. 1인분 1만4000원으로 떡 벌어진 교자상에는 30종의 찬이 접시가 포개져 나온다. 손때가 곱게 묻어 윤기 나는 마루와 안온한 빛의 미닫이창이 정겨운 한옥 식당이다.
    ▲은제식당: 다슬기 전문. ☎ 063-643-6752. 전북 임실군 강진면 강진리. 다슬기탕 6000원. 다슬기 수제비 6000원. 식당은 60년대 허름한 슬레이트 집이지만 섬진강에서 잡은 다슬기로 음식을 만들기 때문에 항상 사람들이 붐빈다. (마산제일고등학교 학생부장. 옛그늘문화유산답사회장)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이상목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