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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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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기준

  • 기사입력 : 2007-09-05 09: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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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은 예전과 비교가 되지 않는 부유함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넘치는 문화와 향락. 그리고 각종 편의 시설들이 바로 그런 부유함을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풍요 속의 빈곤이라고. 전보다 별로 행복해 보이지가 않는다. 예전 우리는 명절 때 아버지가 시장에서 사다 주시는 운동화 한 켤레로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이 행복해 했다. 하지만 요즘 부유한 집 자식에게 고급 외제 승용차를 사 줘도 예전 운동화 한 짝보다 그다지 행복해하지 않는 것을 보면 행복의 기준이란 물질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나라별 행복지수를 봐도 경제적으로 부흥하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지수가 그에 비례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경제적 지표보다 행복지수가 많이 낮다. 별로 행복해 하지 않다는 것이다. 왜일까? 그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행복이라는 것을 상대적인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행복의 상대성’은 인간의 본성에서 출발한다. 석기시대부터 인간은 더 많은 것을 원했다. 각종 도구가 발명된 것과 전쟁과 국가가 발생한 것 역시 인간의 이런 본성 때문이다. 자신이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진 사람에게 복종하고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자신에게 복종시켜왔던 인간은 일찍부터 ‘행복의 상대성’이라는 개념에 따라서 살아왔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지금 이 세상을 사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인 것이다. 바로 ‘행복의 부재’인 것이다.

    일전에 수십억대의 재산을 가졌다는 부동산 중개업자를 상담한 일이 있었다. 사주를 보니 지난 30년간은 그야말로 재운(財運)이 왕성하게 힘을 받았음을 알 수 있었고 이제부터의 운세는 아주 좋지 않았다. 그래서 “운이 좋지 않으니 지금까지 벌어놓은 것으로 무리하지 말고 관리에 들어가라”고 상담해주니 이 사람은 펄쩍 뛰면서 하는 말이 “무슨 말씀합니까? 이제 조금 벌었으니 지금부터 돈을 많이 벌어야 됩니다”라고 하였다. 두말 하지 않고 그냥 돌려보냈다. 말을 해봤자 우이독경(牛耳讀經)일 것이다. 히딩크 전 축구감독의 말처럼 이 사람은 아직도 배가 고픈 것이다. 아무리 채워도 배가 고플 것이다. 욕심은 끝이 없으니까.

    예부터 전해오는 잠언 중 ‘물잔 이야기’라는 것이 있다. 절반이 들어있는 물 컵을 보고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느낀다는 것인데 물이 반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람과 물이 반이나 남았다는 사람의 차이. 바로 이런 차이가 우리 주변의 행복을 만드는 차이인 것이다. ‘행복의 상대성’과 ‘행복의 부재’가 모두 이렇게 관점의 차이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자신 안에서 행복을 찾아가는 모습도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자신의 일에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사람의 모습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고 봉사하면서 남이 웃는 모습을 보면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행복을 자신의 마음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은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행복을 마음속에서 찾지 못한다면 ‘행복의 부재’ 상태는 계속되는 것이다. 사소한 것에서 행복을 찾아가는 모습이야말로 진정으로 행복을 만들어 가는 모습인 것이다.

    상대적인 박탈감이나 빈곤감을 뛰어넘어 자신의 마음속에서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어야 하고 사회와 국가는 이런 행복을 유지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줘야 한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이다.
    몇 십억을 가진 사람 다음에는 몇 백억을 가진 사람이 있을 것이고 또 그보다 더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내가 지금 가진 것이 적어서 더 가져야 행복하다고 느낀다면 영원히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행복은 물질로 기준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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