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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산청 이갑열 미술관- 백두대간 끝자락 자연속 조각공원

이갑열 관장 산청군 단성면 청계리에 8월 개관
조각품 100여점 전시…전망대·휴게실 등 갖춰

  • 기사입력 : 2007-12-1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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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품 체험학습공간.게스트하우스 건립도 계획

    낙엽이 함박눈처럼 쏟아지던 지난 1996년 깊은 가을 어느 날 저녁.

    48세 열혈 조각가 이갑열(59·경상대 사범대학 미술교육과 교수)은 무엇에 이끌리듯 속세와 동떨어진 산청의 어느 심심산골로 찾아들었다. 작품에 매진하기 위해서였다. 군유지 내 축사를 빌려 개조한 300여㎡ 작업장에서 강의가 없는 날이면 어김없이 창작삼매경에 빠져들었다. 틈틈이 염소와 닭도 기르면서 주렁주렁 매달리는 자연의 선물에 일찍이 느껴보지 못한 경외감도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산 형님댁에서 구십 노모가 오셨다. 어머니는 장엄한 자연에 매료됐는지 “나 여기가 좋다”고 말씀하셨다. 두말 않고 작업실 곁방에서 10여년을 모셨다. 어느덧 어머니가 백수(百壽)에 가까워지면서 생전에 미술관을 지어 기쁘게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주 아파트를 미련없이 처분하고 미술관을 손수 설계해 2005년 11월부터 부인과 함께 짓기 시작했다. 이 교수의 순수한 뜻에 산청군도 군유지 6만여㎡를 선뜻 임대해 주는 등 많은 도움을 줬다.

    2년7개월여를 야외 조각공원 조성과 미술관 건축공사에 매달렸다. 타일 등 내부 자재와 창틀 등은 때마침 철거하던 아파트 모델하우스 자재를 얻어와 비용을 아꼈다.

    백두대간 끝자락. 산세가 가팔라 재주좋은 곰도 떨어져 죽는다는 속설이 있는 ‘곰바위산’ 웅석봉(熊石峰: 1099.3m) 남쪽 해발 500m 중턱에 연건평 480여㎡(약 150평)의 2층 미술관이 이렇게 하여 모습을 드러냈다.

    올해 8월 18일, 지인들을 초청하여 어머니 조원수 여사 백수잔치를 겸해 미술관 개관식도 가졌다.

    산청군 단성면 청계리 125 ‘이갑열 현대미술관’은 이제 산청을 대표하는 조각 미술관으로 자리매김했고, 휴일마다 많은 관람객이 찾아드는 명소가 되고 있다.

    습기 머금은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이 을씨년스런 풍경을 연출하던 지난 10일, 통영~대전고속도로 단성IC에서 내린 취재차는 중산리로 방향을 잡고 남사예담촌을 스쳐 내달렸다. 대략 500여m를 더 가자 청계·입석방향 도로표지판 옆에 ‘이갑열 현대미술관 7㎞’라는 안내판이 반긴다. 곧장 우회전하여 지리산에서 흘러내린 장대한 산, 웅석봉을 향해 속도를 올렸다.

    계곡 옆길을 따라 들어서자 입석마을이 나타나고 입석초등 교정에 선 2m 높이의 선사시대 유적 ‘선돌(立石)’이 시선을 당겼다. 왕복 2차선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따라 2분 남짓 더 달렸을까. 고구려 주몽의 ‘고조선의 영토와 문화를 회복한다’는 다물정신을 승계하고 민족혼 교육을 표방하며 세운 다물민족학교가 좌측으로 보였다. 조금 더 진행하자 좌측으로 탑리마을 입구에 ‘속세와 단절된 절’ 단속사(斷俗寺) 절터가 천년풍상을 견뎌온 석탑과 당간지주만으로 그 흔적을 알려주고 있었다.

    계곡물이 얼마나 맑았으면 ‘청계’라 했고, 골짜기가 얼마나 깊었으면 속세와 인연을 끊는다는 ‘단속’이라 했을까. 포장길 신작로가 뚫려 잘 실감되지는 않았지만, 골은 과연 깊었다.

    이윽고 다다른 미술관은 산 중턱에 자리잡았는데, 2층 현대식 건물로 노모와 함께 생활할 주거공간과 두 개의 전시장, 전망대, 회의실, 자료실, 관리실, 야외조각공원, 휴게실 등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2층 휴게실에서 전방을 주시하니 첩첩의 산봉우리들이 마치 수묵화를 보는 듯 수려하고, 눈 아래 야외조각공원에 배치된 작품들 사이로 보이는 청계댐이 고즈넉한 운치를 보탰다.

    이갑열 교수는 필생의 조각 작품이 약 200점 가량 된다고 말했다. 이 중 60점을 실내전시관에, 40점은 야외조각공원에 전시해 놓았다. 아직도 미술관 조성사업은 진행형이라고 했다.

    “40여년간 초인적인 창작력으로 노르웨이 프로그네르 공원에다 세계 최대의 조각공원을 세운 조각가 비겔란(1869~1943)이 제 예술인생의 표상이지요. 저도 이곳에 훌륭한 조각미술관을 세우기 위해 제 모든 것을 바칠 각오입니다.”

    덧붙여 그는 앞으로의 구상도 들려주었다.

    “앞으로 제2호 미술관과 야외조각공원을 추가로 조성하고,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체험학습공간도 만들 계획입니다. 또 작가들이 숙식하면서 작품을 할 수 있도록 게스트하우스(Guest House)도 지을 생각입니다. 야외 음악무대, 아트숍, 분수조각, 레스토랑, 카페 등의 편의시설도 갖춰 지역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할 생각입니다.”

    회갑을 앞두고 남은 생애를 오로지 지역문화 발전에 바치겠다는 그의 열정이 젊은이 못지않아 보였다. ☏ 972-7924.

    글=이상목기자 smlee@knnews.co.kr

    사진=김승권기자skkim @knnews.co.kr

    ▲이갑열 관장은

    美 피츠버그 주립대 초빙교수 역임

    現 경상대 미술교육과 교수 재직

    1948년 함안군 산인면 운곡리에서 태어났다. 부산에서 초중고를 나와 홍익대 미술대학 조소과와 동대학원을 졸업, 독창적 조각세계를 구축했다. 1980년부터 12차례 개인전을 가졌으며 1988년 서울-세계 오늘의 미술전, 1990년 예술의 전당 개관기념전, 1992~2004년 세계현대미술초대전, 제1회 이탈리아 레냐노국제조각전, 부산바다미술제, 목암미술관개관초대전, 광주비엔날레특별전, 아시아현대조각전, UN세계평화미술대전, GAM국제조각심포지엄 등 약 200여회에 달하는 그룹전 및 초대전 등에 참여했다. 1990~1991년 이탈리아 까라라 국립아카데미와 2000~2001년 미국 피츠버그 주립대 초빙교수를 역임했으며 대한민국미술대전, 부산미술대전, 경남미술대전 등 주요 공모전 심사위원을 지냈다. 지난 6월에는 마산시가 수여하는 제6회 문신(文信)미술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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