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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키우는 역사논술] (1)역사는 사실인가? 해석인가?

  • 기사입력 : 2008-03-1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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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 하나.

    100년 전, 이 땅에 일본 제국주의가 들어왔다. 제국주의는 그들이 말하는 방법으로 근대적인 역사학을 뿌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를 ‘실증주의 역사학’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물었다. 역사는 무엇인가?

    그들은 스스로 답했다. 과거의 사실이다.

    사람들은 물었다. 과거의 사실을 밝히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들은 답했다. 아주 철저히 냉정하고 객관적이며, 과학적으로 과거의 사실을 밝혀내야 한다. 특히 역사는 정치적·종교적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의 말을 정리하자면 역사는 냉정한 이성으로 ‘사실’ 그 자체로서만 투명하게 기록되고, 밝혀져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얼음과도 같이.

    이 땅에 많은 젊은 학자들이 이 새로운 생각에 동의했다. 그리고 냉정하고 투명하게 얼음장 같은 마음으로 우리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기록이 정확하지 않은 고조선과 고대의 우리 역사는 지워지기 시작했다. 명확하고 확실한 근거가 없다고 생각되면 가차 없이 날려버렸다. 반면 어느 정도 객관적이고 확실한 근거가 있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냉철한 마음으로 만든 책이 바로 ‘조선사’였다. 조선사 편수회에서 만든 이 책에서는 당시 실증주의 역사관이 그대로 나타나 있었다. 고조선은 사라지고 ‘한사군’이 한반도 반 이상을 지배하고 있다. 냉정하게 분석한 결과 우리의 역사는 남에게 영향을 받고 의존하면서 성장해온 결과였다고 여러 곳에서 말하고 있다.

    그들은 이를 ‘과학적이고 냉정한 기록’이라고 주장한다. 시간이 흘러 그들이 키운 제자들은 ‘냉정히’ 말한다. “식민주의 사학이다.”

    그들은 주관을 버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객관적인 자료, 근거가 없는 자료’를 판단하면서 이미 그들의 ‘주관적 견해’가 개입되어 버렸다. 그들은 눈곱만큼도 정치적인 의도를 포함시키지 않고 얼음장 같은 냉정함으로 기록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이 있던 조선사 편수회는 총독부 산하의 기관이며, 그들이 연구하던 경성제국대학은 일본이 조선 통치를 위해서 만든 대학이었다.

    # 이야기 둘

    100년의 시간이 흘러 이 땅이 아니라 저쪽 일본 땅에 새로운 역사학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들은 스스로를 ‘자유주의 역사학’이라고 이름 지었다. 그들은 말한다. 하나의 사실이라도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사람들이 다시 묻는다. 어떻게 하나의 사실이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가?

    그들은 예를 들었다. 미국의 건국 대통령인 워싱턴은 미국인의 입장에서는 ‘건국 영웅’이다. 반대로 영국인의 입장에서는 ‘반란군의 대장’이다. 이런 식으로 마치 하나의 사물을 보더라도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이듯이, 역사도 다양한 각도와 시선으로 해석할 수 있다.

    많은 일본의 역사학자들이 순식간에 그들의 주장에 동의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역사를 새로 해석해 나갔다.

    “한국의 병합은 동아시아를 안정시키는 정책으로서 구미열강의 지지를 받았다. 그리고 그것이 실행된 당시로서는 국제관계 원칙에 따라 합법적으로 이루어졌다. 태평양 전쟁은 아시아 민중을 해방시키기 위한 전쟁이며, 일본은 이 전쟁에서 패전했다는 이유로 과도한 국제적 처벌을 받았다.”

    중국과 한국, 일본의 양심적인 학자들은 즉각 반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유, 다양성’이라는 단어를 방패막이 삼아 반발을 무시하고 있다. 그들에게 이 반발은 그들을 반대하는 세력이 억지로 자신들의 관점을 바꾸려는 시도로 비쳐졌다. 그렇게 그들은 스스로 극우주의의 길로 나아갔다.

    앞에서 말한 두 이야기는 역사를 바라보는 양쪽 극단을 다뤘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그들은 ‘역사는 있는 그대로의 과거 사실’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신이 아닌 이상 역사를 있는 그대로 온전히 복원할 수는 없는 일이다. 또한 역사를 복원해가는 역사학자들도 사람인 이상 그들의 주관과 가치가 개입될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그들은 ‘역사는 다양한 시각 아래 현재적으로 해석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시각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많은 과거 사실들을 임의로 지워버렸고, 결국엔 극우주의 성향에 맞는 것만을 새로 끼워 맞춘 것뿐이었다. ‘역사는 있는 그대로의 과거 사실’, ‘역사는 해석의 산물’. 둘 중 하나는 정답이어야 하지만 사람들의 상식과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버렸다.

    유명한 역사학자 카(E.H. Carr)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정리하였다. 여기서 과거란 ‘있는 그대로의 과거 사실’을 말하며, 현재란 ‘역사를 바라보는 역사가의 관점’을 말한다.

    그러나 이 또한 사람들의 논란을 잠재우지 못했다. 이도 저도 아닌 모호한 중립적인 설명일 뿐이다. 지금도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역사는 사실이다’, ‘완벽한 과거의 사실도 없지만, 과거의 사실만 있으면 뭘 하는가? 그것을 제대로 해석하여 미래를 여는 것이 역사다’, ‘역사를 해석하기 시작하면 모두 자기 마음대로 역사를 해석하고 왜곡해 버릴 텐데, 그것이 무슨 의미인가?’, ‘그러면 기껏 밝힌 과거의 사실을 신주단지처럼 가만히 모시고만 놔두면 무엇 때문에 억지로 과거의 사실을 밝히려 드는가?’라는 등 말의 순환고리만이 난무한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역사는 사실인가? 아니면 해석인가?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또 다른 무엇인가? 아니면 역사란 무엇인지 따지는 것조차 무의미한 일인가?

    *필자 : 임종금(자유기고가, ‘뿌리깊은 역사논술’ 저자)

    <사진 설명= 중국 지린성(吉林省)에 있는 고구려 고분 무용총 ‘수렵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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