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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키우는 역사논술] (3) ‘외눈박이 역사’ 이제는 끝낼 때

지도와 전쟁으로 본 역사

  • 기사입력 : 2008-05-2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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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는 역사를 좋아했다. 그래서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역사책은 있는 대로 읽었다.
     시간이 흐르자 그의 '역사공부'에는 몇 가지 성향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첫째, 영토에 관한 '애정'이었다. 둘째, 군사력에 관한 '집착'이었다.


     역사책을 보면 항상 지도가 나온다. 특히 설명이 복잡한 고대사의 경우 자주 등장한다. 대부분 지도에서 표시된 영역이나 세력권은 비슷했다. 그런데 자세하게 보면 책마다 조금씩 다른 것을 알았다. 역사책을 있는 대로 보지 않으면 볼 수 없는 미세한 것들이었다. 책들을 모아서 정리해보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경우 지도의 형태가 동일했다. 그런데 일부 책들의 경우에는 조금 더 넓은 경우도 있었다. 책들을 더 찾아보기로 했다. 서점에 가서 역사 관련 지도를 '수색'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사람들의 책에서는 영역이 통상 영역보다 2배 이상 넓은 것도 나왔다. 백제 영토가 중국 동해안까지 장악한 지도도 있었다.


     '사람들은 새로운 생각을 다만 새롭다는 이유만으로 배척한다'는 말이 있다. 물론 어른들에 한해서다. 새롭다는 이유만으로 기존의 것들은 던져버리는 존재가 바로 아이들이다.


     아이는 빠르게 새로운 것들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아하, 이래서 영토가 이렇게 넓었고, 이런 점들이 기존 학자들은 모르고 있었구나. 아, 이들은 진실을 말해주기 위해서 얼마나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는가? 아, 기성 역사학계에 막혀 이들은 이렇게 배척당하고 있구나.


     아이는 보수적인 학계에 분노를 터뜨리며 지도를 모았다. 군사력에 대한 집착도 놀라운 수준이었다. 군사력에 대한 자료들을 또 있는 대로 모아봤다. 그중에서 아이는 수천명과 수천명이 싸운 시시껄렁한 전투는 던져버렸다. 수만명과 수만명이 싸운 전투도 재미없었다. 적어도 양국끼리 전쟁이라 함은 수십만명과 수십만명이 붙는 대규모 스펙터클한 전쟁이어야 했다. 혹은 달랑 수천명이 수십만 대군을 물리친 기적 같은 전투도 소년을 자극했다. 아이는 전쟁에 동원된 군사력을 줄줄 꿰기 시작했고, 그 과정과 결과도 줄줄 외우고 다녔다. 큰 전쟁에는 사람이 많이 죽는 법, 전사한 숫자도 줄줄 외우고 다녔다.


     아이는 지도와 전쟁으로 역사를 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듣는 이의 입장에서도 지켜보는 입장에서도 재미난 것이었다. 듣는 입장에서는 사회경제사, 정치사, 문화사에 대해 들어주는 것보다는 훨씬 덜 지루한 일이었다. 잘난 척하는 입장에서도, 잘난 척을 애써 받아주는 입장에서도 서로 윈윈 하는 내용이었다. 한동안 어린 필자에게 역사란 '전쟁과 영토가 낳는' 산물이었다.


     그러면서 잊혀져간 것들이 있었다. 그 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그 시대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했는지, 그 시대의 정치·사회 시스템은 어떠했는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물론 전쟁사를 공부하다 보면 약간은 그런 것을 배우기 마련이다. 아이는 '전쟁사'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정도의 정치·사회·문화적 지식만 익혔다.


     아이의 머릿속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아이는 마치 전쟁을 하듯이 어른들에게 대들기 시작했다. 인터넷이 있었다면 인터넷에서 신나게 대전을 벌였겠지만, 인터넷이 없던 당시, 아이의 눈에 보이는 가장 뛰어난 역사적 지식을 가진 사람은 '국사 선생님'이었다. 아이는 국사교과서를 찢어버리고 당당하게 선생님에게 대들기 시작했다. 선생님들은 제자가 용하다 생각했는지, 아니면 귀찮았는지, 아니면 자신의 실력이 들통 날까 두려웠는지 모르겠지만 '네 말이 일리가 있다'는 식으로 물러서곤 했다. 아이는 이를 두고 '새로운 진보된 지식이 기성의 낡은 지식을 깨는 승리'라고 자축했다. 친구들도 미친놈처럼 책만 보는 아이가 이상했지만, 적어도 역사실력만은 인정해주기로 하였다. 그렇게 아이는 새로운 '역사'를 완성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외눈박이 '역사'였다.


     어떤 나라를 보면 그 나라가 최전성기를 구가한 직후, 순식간에 무너지는 나라가 있었다. 몽고 제국이 그러했고, 티무르 제국이 그러했다. 무너지는 이유는 '기초가 부실'하기 때문이다. 필자도 그러했다. 기초가 부실한 외눈박이 역사는 오래가지 못했다. 필자의 외눈박이 역사는 스스로 무너져갔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시사를 공부한 것이다. 고2부터 신문과 월간지들을 보면서 필자는 시사에 대한 관심을 넓혀나갔다. 시사는 우리 시대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정치·사회·경제·문화 관념들이 서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우리의 삶을 구축해 나간다. 아이는 시사에 나오는 우리의 삶처럼, 과거 조상들의 삶도 복원해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전혀 복원할 수 없었다. 전쟁과 지도는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을 말해주지 않았다. 아이는 자신의 무지함에 스스로 놀랐다.


     영토가 넓다는 것은 그만큼 치러야 할 전쟁이 많다는 것이다. 전쟁의 규모가 클수록 대량 살육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전쟁터에 끌려가는 병사들은 처자식을 남겨두고, 자신이 가꿔야 할 땅들을 남겨주고 떠난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 다행히 그 병사가 살아남는다고 하더라도, 처자식은 굶어죽지 않았을지, 자신의 땅은 잡초만이 무성히 자라고 있지 않을지, 또 언제 다시 끌려갈지, 두려운 마음으로 귀향할 것이다.


     고구려 을지문덕은 수나라 대군을 막기 위해서 청야전술을 펼쳤다. 수나라 군대의 전진방향에 위치한 모든 마을을 폐허로 만드는 것이 그 전술의 핵심이다. 사람들은 모두 다른 곳으로 끌려 나가고, 곡식들은 모조리 불태워지고, 곡식이 자라고 있는 땅은 모두 짓밟혔다. 심지어 집도 헐어버렸다. 수나라 군대는 식량이 떨어졌지만, 고구려 땅에서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고, 비가 오지만 비를 피할 곳이 없었다. 그렇게 수나라 군대는 지쳐갔고, 고구려 군대는 지친 수나라 군대를 손쉽게 상대했다. 전쟁사에서는 을지문덕을 매우 높게 평가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서 수십, 수백만의 백성들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자신이 애써 키운 논밭은 폐허가 되고, 집은 사라졌다. 고향으로 돌아오니 고구려 백성들도 수나라 군대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들은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땅에서 다시 시작해야만 했다. 청야전술은 고구려의 국력을 갉아먹으면서, 백성들의 피눈물을 감수해야 하는 비상수단이었다. 돌아온 백성들의 한숨소리와 피눈물을 아이는 알지도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었다.


     그 시대 사람에게 그 나라의 영토가 넓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아무것도 없다. 한평생 자신의 터전에서만 살아야 하는 사람에게 영토가 넓어지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새 영토를 얻으면 그 영토는 모두 귀족들의 손에 떨어진다. 영토가 넓어지면 그 영토를 다스릴 사람이 필요하고, 더 많은 군대가 필요하다. 되레 세금만 오르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지도의 영토 경계선은 그저 경계선을 나타낼 따름이다. 그 경계선 안의 모습은 말하지 않는다.


     외눈박이 역사는 이렇게 무너져갔다. 역사는 사람들의 삶을 토대로 구성되어야 한다. 영토니 전쟁이니 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내가 외눈박이를 벗어날 무렵, 또 다른 외눈박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고조선의 영토가 수천 킬로미터이다.", "당시 이런 무기들이 조선의 승리를 가져왔다.", "실제 조선의 영토는 중국대륙이다."
     물론 역사적 사실을 따지기 전에 우리 민족의 영토가 넓었다면 기분 좋은 것이다. 전쟁은 국운이 걸린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거기서 그들은 멈춘다. 왜 그럴까? 나도 그랬고, 그들도 마찬가지이다. 단 하나의 이유다. 어제와 오늘에 대한 피해의식 때문이다.


     늘 외침을 받고, 손바닥만 한 한반도 언저리에서 맴돈 우리의 역사, 중국의 지도와 로마의 영역, 하물며 지금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경제력이 뒤떨어지는 몽고조차 한때는 세계를 지배했었다. 영국은 본토가 손바닥만 했지만, 식민지는 본토의 100배도 더 되었다. 심지어 일본조차 태평양 전쟁 당시 한때 전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오세아니아 인근 지역까지 진출했었다.


     외눈박이들은 여기에 분노했다. 그래서 기를 쓰고 한 치라도 더 영토선을 넓게 긋기 위해서 문헌을 뒤적이고, 강대국에 부끄럽지 않은 군사력을 가졌다고 강조하며, 우수한 무기로 일당백으로 싸우는 조상을 그려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한반도의 반쪽도 못 가지고 있는 우리의 답답한 현실에 비난을 퍼붓는 것이다. 조상들의 영토가 커지면 커질수록 자긍심은 강해지고, 현실에 대한 공격도 강해진다. 자긍심과 비난이라는 두 약물은 두뇌에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그렇게 외눈박이들은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이 외눈박이들은 단순한 피해의식의 결과일까? 아니다. 근원을 따지면 성과 중심주의, 결과 중심주의 사회가 나온다. 사람들은 내용이나 과정은 늘 생략하고, 타이틀과 결과만을 보며 사물을 판단한다. 외눈박이들은 우리 사회의 기준선을 그대로 따라서 역사를 본 것에 불과하다. 확실히 영토니 전쟁이니 하는 것은 눈에 선명하게 보이는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어린 시절부터 아이들에게 두 눈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다. 그래서 대통령이 자기 말을 안 들어줘서 숭례문에 불을 지른 외눈박이, 부도덕하고 무원칙해도 경제만 살리면 그만인 누군가에게 표를 준 외눈박이들이 무수히 널렸다. 당신은 외눈박이가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는가?


     먼 훗날, 우리 후손들은 우리보다 훨씬 뛰어날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 후손들은 두 눈으로 세상을 고르게 볼 것이며, 역사를 볼 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의 후손들은 21세기 초반의 역사를 배우면서 우리의 국력보다는 우리의 삶, 우리의 생각에 더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우리 후손들은 우리를 어떻게 볼까?


     1945년부터 시작된 대한민국 외눈박이들의 역사. 이제는 끝낼 때가 오지 않았는가? '쪽팔린다'는 것을 안다면 말이다.
     임종금(뿌리깊은 역사논술 저자)

    <사진 설명=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원들이 지난 21일 서울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침탈행위 규탄 기자회견을 가진 뒤 ‘일본 중학교 학습지도요령 해설서’ 모형을 부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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