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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강보의 논술탐험] (60) 중학3학년 학생이 쓴 ‘양성평등’ 글 짚어주기

  • 기사입력 : 2008-06-3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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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술용으로 쓴 글이 아니라면, 체험을 현실문제와 접목하라 

    요한: 안녕하세요? 창원 반송중학교 3학년 박요한입니다. 양성평등을 주제로 글을 한 편 써 봤는데, 뭔가 부족한 느낌이에요. 그래서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할지 글샘의 조언을 듣고 싶어요.

    글샘: 요즘 중학생들은 대입 정시모집에서 논술시험을 안 치른다니까 글쓰기에 소홀해지더구나. 그래도 요한이는 이렇게 습작글을 보내와 첨삭을 받으려는 걸 보니 논술에 관심이 많은 것 같구나.

    요한: 아뇨. 논술시험에 대비한다기보다 내 주장을 자신 있게 글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싶어서요.

    글샘: 맞아. 그게 중요하지. 자, 요한이의 글을 살펴볼게. 전체적으로 역사적인 측면과 도덕적인 측면에서 양성평등의 필요성을 잘 지적해 놓았어. 중학교 3학년생의 글 치고는 구성(얼개)이 탄탄하고, 사례 인용 등 논설문의 구성 요건을 잘 갖추고 있구나.

    요한: 칭찬해 주셔서 고마워요. 그래도 부족한 부분을 많이 지적해 주세요.

    글샘: 좋아. 글을 보며 의견을 나눠 보자.

    최근 많은 사회적 문제들이 우리들의 마음과 몸을 지배하는 듯하다. 끊임없이 닥쳐오는 국가 간 사회 간 개인 간 문제들은 과거와 현재, 동서양을 막론하고 쉴 새 없이 우리 앞에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독도 영유권 문제와 중국의 과거사 왜곡문제, 북한의 대남협박 등 굵직굵직한 문제들과 맞닥뜨리지만 일부에서는 인간의 삶의 질 향상으로 다소 배부른 걱정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나는 이 많은 문제 중에서도 ‘양성평등’이라는 용어가 우리에게 매우 섬세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믿고 있기에 그 논란과 문제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무엇보다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우리 앞에 드러난 과거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의 오류이다. 과거 여러 세대에 걸쳐서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각국에서 양성평등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이하 생략 - 원문은 뒷부분에 수록)

    글샘: 언뜻 보면 그다지 흠잡을 곳이 없어. 그러나 첫 문장을 다시 보거라. <우리들의 몸과 마음을 지배하는 듯하다>라는 대목이 어색하구나. 그냥 수필 형태로 쓴 느낌 글이라면 괜찮지만, 논설문이라면 문장을 다듬어야 할 것 같아. ‘~지배하는 듯하다’라는 표현도 ‘지배하고 있다’ 식으로 서술해야겠지. 첫 문장은 빼버리는 게 더 낫지. 뒷부분의 <우리에게 매우 섬세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믿고 있기에>란 구절도 불필요한 미사여구야. 또 <그 논란과 문제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식으로 중계방송형 표현은 논설문에서 피하는 게 좋아.

    요한: 쓸 때는 잘 몰랐는데 이제 보니 정말 그런 것 같네요.

    글샘: 본론 부분에서 당나라 여황제 측천무후와 영국 엘리자베스 1세, 여성 과학자 등 고정관념을 깬 사례를 다루며 양성평등을 강조한 단락은 잘 썼더구나. 또 <우리는 왼손과 오른손 모두 ‘손’이라고 부른다. 손이 아플 때 오른손이 다쳐서 더 아프다거나 왼손이 다쳐서 덜 아프다거나 하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남자와 여자 모두 소중한 존재이다.>라며 표현한 대목도 참신하다고 할 수 있어.

    요한: 제가 가장 쓰기 어려운 부분이 결론이었어요. 어떻게 마무리하는 게 좋을까요?

    글샘: 결론 마지막 문장을 <왼손과 오른손을 모두 손이라 부르고 이에 걸맞은 역할을 부여하고 행할 때, 남자와 여자를 평등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동등한 기회 부여를 통한 능력 추구를 꾀할 때 비로소 민주주의사회는 발전을 향한 큰 걸음을 시작할 것이다.>라고 썼더구나. 본론에서 지적한 내용을 다시 재강조하면서 대안을 잘 제시했다고 볼 수 있어.

    요한: 행여 제가 기죽을까봐 일부러 좋은 쪽으로만 조언해 주시는 것 아니에요? 다음번에 글을 쓸 때 참고하게끔 부족한 게 뭔지 얘기해 주세요.

    글샘: 그렇다면 이 글을 논설문 형식이 아닌 ‘양성평등 글쓰기’에 응모한 작품이라고 가정하면 조언할 얘기가 달라지지. 시각을 달리 해서 이 글을 평가해 볼까. 글이 딱딱하기 때문에 읽는 이(심사위원)의 공감을 얻기 어려운 게 약점이야. 밋밋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얼마전 교육과학기술부가 주최한 제8회 전국 양성평등 글짓기 대회 입상작을 살펴보면 글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단다. <배지수 아니라 이지수로 불러주세요>라는 작품이 고등부 최우수상을 받았어. 호주제가 폐지된 이후 여전히 남아있는 근본적인 현실의 문제들을 체험을 통해 예리하게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단다. 그리고 초등학생 최우수작은 이라크 자이툰 부대에 있는 고모에 대해 쓴 <특전사 우리 고모>가, 중학생 최우수작은 동화 ‘종이 봉지 공주’에 등장하는 공주와 ‘유리천장’에 대해 쓴 <엘리자베스에게 박수를>이 차지했지.

    요한: 자기 주변 이야기나 책에서 읽은 내용을 글감으로 해서 사회현상과 연결시켰다는 건가요?

    글샘: 바로 그거야. 우수상이나 장려상을 받은 작품도 대부분 그런 유형이더구나. 입상작 제목을 몇 개 소개하면 <멋진 남자가야금 연주자를 꿈꾸며>, <오빠도 ‘빌리’가 될 수 있어>, <아버지의 앞치마>, <우리 가족이 달라졌어요!>, <아침밥 하는 남자>, <골리앗 크레인의 여기사와 병실의 남자 천사>, <삼촌의 당당한 직업, 미용사> 등이 있어. 제목만 봐도 어떻게 글을 써나갔는지 짐작할 수 있겠지. 심사위원장을 맡은 소설가 신경숙씨가 “글 쓰는 일을 일상화시킬 줄 아는 세대가 등장한 것 같다”고 평했을 정도였으니까 말이야.

    요한: 무슨 말씀을 하려는지 잘 알겠어요. 어쩌면 그동안 제가 겉멋에 치우친 글을 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글샘: 꼭 그런 건 아니야. 논설문에선 주관적인 느낌을 어느 정도 객관화시켜 써야 하기 때문에 굳이 생활접목형 글을 고집할 필요는 없어. 다만 생활문을 쓸 때 이런 유형의 글쓰기가 공감을 얻을 수 있단다. 아 참, 글샘이 앞에 언급한 입상작품 글은 교육과학기술부 홈페이지(www.mest.go.kr)에 실려 있어. 다운받아서 꼭 읽어 보거라. 글감의 중요성에 대해 잘 알 수 있을 거야. 오늘 논술탐험이 요한이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 (편집부장)

     

    # 양성평등과 생활- 박요한(반송중학교 3학년)
     
    최근 많은 사회적 문제들이 우리들의 마음과 몸을 지배하는 듯하다. 끊임없이 닥쳐오는 국가 간 사회 간 개인 간 문제들은 과거와 현재, 동서양을 막론하고 쉴 새 없이 우리 앞에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독도 영유권 문제와 중국의 과거사 왜곡문제, 북한의 대남협박 등 굵직굵직한 문제들과 맞닥뜨리지만 일부에서는 인간의 삶의 질 향상으로 다소 배부른 걱정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나는 이 많은 문제 중에서도 '양성평등'이라는 용어가 우리에게 매우 섬세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믿고 있기에 그 논란과 문제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무엇보다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우리 앞에 드러난 과거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의 오류이다. 과거 여러 세대에 걸쳐서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각국에서 양성평등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여성은 가정을, 남성은 바깥 활동을 책임져야했다. 그러다보니 남성들이 세상을 이끌어가게 됐고 지금에도 그러한 고정관념은 우리 마음속에 과거의 흔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여자여서 안 된다' 또는 '남자여만 한다'는 이러한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현대는 말할 것도 없고 과거에도 여러 역사적 인물들이 증명하고 있다. 중국 당나라의 여황제 측천무후는 중국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황제 중 한 명이며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역시 뛰어난 리더십으로 영국함대를 세계 최고의 함대로 만들어 대영제국의 밑바탕을 닦았다. 요즈음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육해공군 사관학교와 경찰대 등 특수 국공립대학에서의 여성생도 수석졸업, 지금까지 남성이 더 뛰어나다고 알려져 온 과학계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치고 있는 여성 과학자들을 보면 우리 인간이 오래도록 가져온 고정관념의 허구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성 역할은 인간의 진화과정을 통해 변화해온 것으로 이는 인간의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지 하늘이 그렇게 정해준 것은 아니라고 의학계는 주장한다. 즉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인 발달은 역사 속 인간진화의 산물이며 흔적인 셈이다. 또 그마저도 생존의 가장 효율적인 길로서 성 역할이 달라졌다고 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라. 지금같이 기본적 의식주가 해결된 상황, 생존의 의미가 의식주의 해결에서 경제적 이윤 추구의 의미로 바뀐 21세기에 실용적이지 못한 장애물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그러한 논리대로 따져야 한다면 오히려 경제적 이득과 나라 전체의 이익에 맞추어 성별에 관계없이 능력중심의 역할이 중요하다. 어디까지나 목표는 생존의 효율성 증대이기 때문이다.
     도덕적인 측면에서도 양성평등은 타당한 이론이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국민은 평등하다'고 배우면서 선입견과 편견으로 선을 긋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 성별에 따른 편견으로 우리가 뱉어내는 비판과 험담은 근거 없는 말일 때가 많다. 이러한 타성에 젖어 생활하다보면 우리는 매사에 부정적이고 집단 심지어 개인의 이익을 저해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여성이 건축 관련 일을 하거나 비행기에 타면 재수가 없다,남자가 어떻게 간호사나 디자이너가 될 수 있느냐 등 근거 없는 시각이 우리 사회를 한때 지배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어떠한가? 여성이 건축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 국가에 큰 기여를 하고 대부분의 항공사가 스튜어디스로 여성을 고용했음에도 항공기 사고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남성이 간호사나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해 국격을 높이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와 같은 사례를 통해 우리는 자기중심적인 생각에 갇혀 제한된 성 역할론을 부르짖는 것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지를 깨달을 수 있다.
     끝으로 이러한 사례들을 살펴보면서 아직도 우리사회에  여러 가지 후진국적 잔해들이 남아있음을 보게 된다. 우리는 왼손과 오른손 모두 '손'이라고 부른다. 손이 아플 때 오른손이 다쳐서 더 아프다거나 왼손이 다쳐서 덜 아프다거나 하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남자와 여자 모두 소중한 존재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어느 한 손이 다쳤을 때 불편함은 느낀다. 왜? 우리가 평소 특정한 손에 특정한 일을 맡겼으니까. 마찬가지로 고정관념에 의한 습관은 평소에는 편리한 평가의 기준이 될지 모르지만 위기가 닥쳤을 때 여태까지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또한 인간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주어진 역할만 하도록 하는 것은 인간의 자주성과 개성을 침해하는 행위이다. 우리가 그렇게 비난하고 있는 사회주의의 계획경제 체제는 바로 개인을 무시하고 고정관념에만 집착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러한 오류를 보았다. 그리고 충분히 배워왔다. 하지만 진정한 민주주의의 완성은 많이 본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이나마 실천함으로써 시작된다. 왼손과 오른손을 모두 손이라 부르고 이에 걸맞은 역할을 부여하고 행할 때, 남자와 여자를 평등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동등한 기회 부여를 통한 능력 추구를 꾀할 때 비로소 민주주의사회는 발전을 향한 큰 걸음을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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