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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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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마니아를 찾아서] (4) 향수 마니아 김용숙씨

향기로운 ‘향수병’ 앓고 있죠
20살 때부터 수집 시작 7년간 200여종 모아

  • 기사입력 : 2008-07-1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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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숙씨가 수집한 향수를 설명하고 있다. /전강용기자/


    집이 물에 잠기거나 불에 탈 때, 당신은 가장 먼저 무엇부터 챙길 것인가.

    2003년 태풍 매미로 도심이 물바다가 됐던 그때, 방에 물이 차오르자 부랴부랴 향수부터 싸들고 나온 이가 있다.

    7년간 ‘지독한 향수병(?)’을 앓고 있는 김용숙(27·마산시 산호2동)씨.

    보물 1호로 망설임 없이 ‘향수들’을 꼽는 김씨는 현재 창원 대동백화점 잭니콜라우스점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직업도 전공도 향수와는 아무 연관 없어 보이는 김씨가 7년 전부터 모으기 시작한 향수는 약 200여 종, 돈으로 환산하면 1000만원이 훨씬 넘는다.

    “AB형이라서 그런지 어릴 때부터 모으는 걸 유난히 좋아했어요. 20살 때 우연히 아는 언니 집에 놀러가게 됐는데, 화장대 위에 놓인 향수 미니어처가 너무 예뻐서 한눈에 반했죠. 그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향수를 사모으기 시작했고요.”

    처음에는 호기심이었다. 예쁜 향수를 갖고 싶다는 단순한 소유욕이기도 했다.

    김씨는 방과 후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이 들어오는 족족 향수를 사는 데 쏟아부었다. 향수 가게를 들르는게 하루의 낙이었고, 국내에서 시판되지 않는 향수를 위해, 해외를 오가는 지인들에게 구매를 부탁하기도 했다. 주위에서는 그런 김씨를 이해 못 한다는 반응이었다.

    “친구들은 미쳤다고 했고, 향수를 싫어하는 가족들은 진저리를 쳤죠. 부모님께 야단도 많이 맞았어요. 그래도 멈출 수가 없더라고요. 밥도 굶고, 옷도 안 사입고 그렇게 2년 정도 정말 악착스럽게 향수만 사 모았죠.”

    그렇게 그녀의 방 진열대에는 70여 종의 향수가 놓이게 됐고, 웬만한 향수 가게 부럽지 않을 정도의 모양새를 갖췄다.

    그리고 향에 대한 지식과 감각도 향수 전문점 직원 못지않게 깊어졌다.

    이제 그녀는 향수의 개수보다는 향기에 더 집착한다. 향수를 살 때도 꼭 샘플을 통해 시향해 본 뒤 구입한다. 모든 것이 그렇듯이 향기에도 호불호가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향수는 에티켓이라고 주장한다. “사람이 때에 맞춰 옷을 입듯이 때에 맞는 향수를 뿌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

    때문에 외출시에는 꼭 향수를 뿌리고, 매일 매일 일정에 따라 다른 향수를 선택한다. 귀찮을 법도 하건만, 김씨는 이로 인해 삶에 활력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내 자신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갖게 해주거든요. 눈을 뜨자마자 진열된 향수를 보면서 오늘은 무슨 향수를 뿌릴까 생각해요. 그러면 오늘 내가 뭘 입고,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까지 생각이 미치는 거죠. 정신 없는 아침시간에 짧지만 내 자신을 위한 사색의 시간이라고 할까요?(웃음)”

    하루종일 자신을 감싸고 있을, 자신을 드러낼 향을 선택하는 일이기 때문에 마구잡이식으로 선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렇듯 향수에 대해서도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있는 김씨는 주위에서 이미 향수 조언가로 통한다.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친구들은 향수를 구매할 때 꼭 김씨에게 도움을 청한다. 지인들에게 어울리는 향수를 추천해주고, 얼굴도 모르는 친구 애인의 향수를 골라주는 것도 일상이다. 일하는 매장에도 계절에 맞는 향수를 갖다놓기 때문에 손님들과 다른 매장 직원들에게 인기다.

    “좋은 향을 나눌 수 있다는 게 기뻐요. 좋은 향기는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까지 행복하게 해주거든요.”

    김씨는 앞으로도 계속 좋은 향기를 간직하고, 좋은 향기로 기억되고, 좋은 향기를 전해주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인터뷰 내내 기분 좋은 설렘으로 들떴던 건, 그녀에게서 은은하게 배어 나오는 좋은 향 때문이 아니었을까. 조고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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